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17년차 포수 LG 심광호의 포수론

한국야구

by 야구멘터리 2012. 3. 29. 14:56

본문

LG 심광호는 17년차 포수다. 천안북일고를 졸업하고 1996년 한화에 입단했다. 2008년 삼성으로 이적한 뒤 방출됐고 2011년 LG 유니폼을 입었다. 17년째를 맞는 동안 1군에서 뛴 경기 수는 469경기다. 한 번도 규정타석을 채운 적은 없다. 

심광호의 가장 화려했던 순간은 2006년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때다. 3차전, 1-3으로 뒤지고 있던 8회말 2사 1루에서 오승환으로부터 대전구장 가운데 담장을 넘어가는 극적인 동점 홈런을 때렸다. 2006시즌 심광호의 스탯은 0.234, 5홈런 15타점이었다. 짜릿한 홈런이었다. 심광호는 "이후 삼성으로 옮겼을 때 삼성 선수들이 많이 기억하더라"라고 했다. 다음 타석에서도 심광호는 2루타를 때렸다. 1사 뒤 3루에 서 있었다. 심광호는 "다음 타자들이 데이비스, 김태균이었다. 끝내기 득점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솔직히 3루에 서서 '인터뷰 때 뭐라고 말할까'를 생각하고 있었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벌써 6년전 얘기다. 심광호는 지금 LG 포수 경쟁 중이다. 그리고 그 경기에서 심광호는 결국 인터뷰를 하지 못했다. 경기는 결국 무승부로 끝났다.

17년째를 맞는 심광호는 LG의 개막전 포수로 결정됐다. LG의 1선발인 벤자민 주키치와의 호흡 덕분이다. 지난 시즌에도 주키치의 전담 포수 역할을 많이 했다. 심광호는 "그해 스프링캠프 때 이상하게 내가 받을 때마다 주키치의 공이 좋았다. 다른 불펜 포수들이 받을 때는 좋지 않다가도 나랑만 하면 괜찮았다. 덕분에 주키치가 던질 때 자주 앉았다"고 했다. 


LG 심광호는 20세 선수들과 주전 자리를 경쟁하는 17년차 포수다. 그의 야구는 이제 다시 시작이다.


17년차 포수에게는 특별한 게 있다. 주전 포수 자리를 맡지 못한채 17년째 포수를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특별'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다. 심광호는 "투수들 공을 잘 잡아주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투수의 성격에 따라 맞춰주는 포수다. 심광호는 "리즈는 자꾸 웃겨줘야 한다. 그래야 안정감을 갖는다. 반대로 다혈질인 주키치는 같이 화를 내줘야 한다. 그래야 주키치가 조금 편해진다"고 했다. 심광호는 3월28일 광주 KIA 시범경기에서 마스크를 썼다. 경기 막판 리즈와 배터리를 이뤘다. 심광호는 "리즈를 위해 '아메리칸 스타일'로 앉았다"고 했다. 두 다리를 넓게 벌리고 엉덩이를 낮춘 채 앉는, 메이저리그 포수들의 스타일을 따라했다. 심광호는 "리즈에게 '유노? 아메리칸 스타일?'이라고 물으니 엄지를 세워주더라"라고 했다. 리즈는 4-2로 앞선 9회 마운드에 올라 3타자를 가뿐하게 처리하고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

심광호는 "리즈가 좋지 않을 때는 마운드에 올라가서 같이 웃고, 농담하고 떠든다. 그럼 리즈가 웃고, 그 다음에 괜찮아진다. 반대로 주키치가 흥분할 때는 대개 심판 콜 때문이다. 그럼 그때 마운드나 덕아웃에서 그러지 말라고 하면 안된다. 오히려 같이 흥분해 줘야 한다. 솔직히, 같이 심판 욕한다. 그러고 나서 포수 자리에 앉으면 심판 분들한테 환하게 웃는다. 심판이 알면 안되니까"라고 말한다. 

심광호의 도루 저지율은 높은 편이 아니다. 그 부분이 약점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특히 리즈가 편하도록 '아메리칸 스타일'로 앉으면 도루 저지 송구가 더 어려워진다. 하지만 심광호는 "나 좋다고 나 편한대로 하면 그건 포수가 아니다. 제일 중요한 건 투수가 편해야 한다. 도루를 내 주면 내가 욕먹는다. 그런데 내가 욕 먹지 말자고 자꾸 직구 요구하고, 자꾸 움직이고 하면 투수가 욕먹는다. 포수는 투수가 욕 먹게 하면 안된다. 차라리 주자를 포기하고 타자에 집중해서 점수 안 주면 투수가 칭찬듣는다. 그게 포수의 역할이다"라고 했다. 심광호는 "솔직히 도루 내준다고 해서 다 점수 나는 것 아니다"라고 했다.

주키치와 호흡이 잘 맞는 것은 다른 이유도 있다. 심광호의 미트질 덕분이다. LG 이상열과 고교시절 배터리였다. 한화에도 함께 입단했다. 심광호는 "고등학교 때부터 왼손 상열이 공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심광호만의 특별한 노하우가 있다. 왼손 투수가 던지는 오른손 타자 몸쪽 공을 잡을 때 일반적으로 포수들은 공의 좌우 움직임을 커버하기 위해 미트를 가로로 눕히는 반면 심광호는 미트를 세로로 세워 받는다. "공끝 움직임이 좋을 때 미트를 세우면 파울 팁이 나왔을 때 갑자기 떠오르는 공을 미트 안으로 넣을 수 있다"고 했다. 주키치의 컷 패스트볼이 타자 방망이에 스치고도 심광호가 잡아내는 이유다. 심광호는 "높은 쪽 공에도 미트를 세워 받을 경우 파울 뒤 커버할 수 있는 미트 안에 공간이 생긴다"고 했다. 

물론 쉬운 자세는 아니다. 엄지 손가락이 위쪽으로 가기 때문에 손목에 부담이 생긴다. 공을 받을 때 팔에 오는 부담도 크다. 심판이 공을 잘 볼 수 있도록 어깨를 집어 넣으면서 잡아야 한다. 심광호는 "그래도 투수가 편해야 하니까"라고 했다.

심광호를 '포수'로 만든 것은 한화 시절 '전설의 3인방' 덕분이다. 심광호는 "그 선배들로부터 많이 배웠다"고 했다. 송진우, 구대성, 정민철이다. 

송진우와 배터리를 할 때 무시무시한 제구력을 배웠다. 심광호는 "바깥쪽을 던진 뒤 '하나만 더 빼봐라'한다. 글러브 조금 움직이면 그곳으로 정확하게 던진다. 그럼 '하나만 더 빼봐라' 하고, 그만큼 바깥쪽으로 정확하게 던진다. 그러고 나면 뭐라는지 아나. '신기하냐?'라고 웃으며 묻더라. 정말 신기했다"고 했다.

구대성은 무섭도록 대담한 배짱을 보여줬다. 심광호는 "구대성 선배는 만루에서도 슬라이더 원바운드짜리 연속해서 5개를 던져서 삼진을 잡아내더라. 나로써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볼배합이었는데, 대성 선배는 정말 대답했다. 나중에 물어보니 '그 상황에서는 타자가 (방망이가) 나올 수밖에 없어. 야구 그렇게 하는 거야'라고 웃더라"라고 했다.

정민철의 직구는 심광호가 받아 본 공 중 최고였다. "특별한 변화구 없이 직구만으로 타자들을 잡아나갔다. 특별한 직구는 다른 변화구가 거의 필요없게 만든다"고 했다.

심광호는 LG 개막전 선발 포수다. 그리고 아직 주전 포수도 아니다. 17년째를 맞는 2012시즌에도 심광호는 여전히 주전 경쟁을 펼쳐야 한다. 그러나 올해만큼 주전 포수의 문이 열렸던 적도 없었다. 한화 시절에는 조경택, 신경현 삼성 시절에는 진갑용 등 쟁쟁한 주전들이 버티고 있었다. LG의 포수자리는 비어있다.  서른 여섯, 야구는 지금 부터 다시 시작이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