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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 감독, 강을 건너다 깨닫다

한국야구

by 야구멘터리 2012. 6. 14.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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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 제공


 조선 후기 실학자 연암 박지원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다. 요동 땅에 들어서기 직전 강을 만났다. ‘시뻘건 물결이 산처럼 일어나서 건너편 언덕이 보이지 않을 정도’라고 했다. 물을 건널 때 사람들은 모두 하늘을 보았다. 기도를 하는 게 아니라 물을 보지 않기 위해서다. 물을 보면, 현기증이 나서 물에 빠질지도 모른다. 그 위험 속에서 ‘강물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고 했다.


 길을 더 지났다. 이번에는 한 밤 중에 강을 건넜다. 낮의 도하와 밤의 도하는 공포의 정도가 다르다. 밤중에 강물을 건너니 눈은 위험을 보지 못한다. ‘위험한 생각이 오로지 귀만으로 쏠리고 귀가 벌벌 떨면서 두려운 마음을 이기지 못한다’고 했다. 보이지 않는데 들리는 소리는 공포를 키운다. 연암은 게다가 마부가 발을 다쳤다. 뒷수레에 태우고 스스로 말 위에 올라 강을 건너야 했다. 말에서 한 번 떨어지면 곧장 강물이다. 연암은 ‘강물로 땅을 삼고, 강물로 옷을 삼으며, 강물로 몸을 삼고, 강물로 성정을 삼으리라’고 마음 먹었다. 연암은 ‘마음속으로 각오하자 내 귀에는 강물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날 밤 강을 아홉 번 건너며 깨달은 바를 ‘열하일기’ 중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에 적었다. 


 강을 건너며 도를 얻었다. 연암은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자는 귀나 눈에 얽매이지 않고, 귀나 눈을 믿는 자는 보고 듣는 것이 자세하면 할수록 더욱 병이 되는 법’이라고 했다. 


 LG 김기태 감독은 12일 SK전에서 역전패 했다. 5-2로 앞서던 경기를 8회초에 6점을 내주며 뒤집혔다. 8회에 봉중근을 미리 준비 시키지 않은 것도, 앞선 공격에서 대타를 미리 쓰는 바람에 9회말 기회에서 움직일 수 없었던 것도 모두 아쉬움으로 남았다. 믿었던 셋업맨 유원상이 4실점한 것도 뼈아팠다. “모두 내 탓”이라고 김 감독은 말했다. 이날 모처럼 구단주도 야구장을 찾았더랬다.


 김 감독은 13일 SK전을 앞두고 “강을 건널 때 마다 바람이 다르게 느껴진다”고 했다. 구리에 사는 김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잠실 철교를 건넌다. 김 감독은 철교 위에서 “어느 날은 바람이 선선하고, 어느 날은 바람이 후끈하다”고 했다. 그 ‘다름’은 바람의 다름이기도 하지만, 감독의 마음이기도 하다. 마음에 따라, 바람이 달라진다. 김 감독이 덧붙였다. “어제는 바람이 고요하더라”라고 했다. 집에 도착했고, 하이라이트도 보지 않았다. 복기도 미뤄뒀다. 귀나 눈에 얽매이고, 자꾸 전날 경기에 얽매이면, 더욱 병이 되는 법이다. 연암이 230년전 한 밤 중 강을 건너며 그랬던 것처럼, 김 감독도 역전패 뒤 강을 건너며 하나를 얻었다. 


 야구는 마음에 달렸다. LG는 이날 SK에 10-6으로 이겼다. LG 선발 이승우는 11번째 등판에서 시즌 첫 승을 따냈다. 7-4로 쫓겼을 때 바로 1점을 도망갔고 8-5로 쫓기자 바로 또 2점을 도망갔다. LG의 신바람이 다시 살랑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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