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후기]① 양학선의 비닐하우스

2012 런던 올림픽

by 야구멘터리 2012. 8. 22. 11:45

본문

내려가는 길에는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서해안 고속도로 위가 강이 된 듯 했다. 고창까지 가는 길이 험했다. 고속도로를 내려서도 바깥의 날씨를 살피랴, 네비게이션의 안내를 살피랴 정신이 없었다. 4시간 30분이 걸려 전북 고창군 공음면 석교리에 내려갔을 때, 양학선의 어머니 기숙향씨는 집에 없었다. 마을회관 앞에서 전화를 걸었을때 어머니는 "동네 어른들을 모시고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효자 학선을 키운 것은 동네 어른들을 모시는 효녀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장화를 신고 있었다. 논두렁 사이 좁은 길을 흔들림없이 걸어나갔다. 도마에서 날아올라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건, 어머니를 닮아서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뒤를 따라가면서 잠깐 들었다. 

비닐하우스라는 얘기를, 양학선으로부터 들은 적이 있었다. 집안 식구 중에도 비닐하우스에서 사시던 분이 있었다. 비닐하우스 주택이 어떤 곳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 비닐하우스가 널찍한 풀밭 사이에 있었다. 방 안 벽에는 온통 양학선의 메달과 사진이 그득했다.



어머니는 식사를 권했다. "바깥 양반이 약을 먹을 시간이라 밥을 먹어야 한다"며 작은 소반에 수저 한 벌을 더 놓았다. 한사코 마다했지만, 그 마다하는 손과 말이 부끄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머니는 삼겹살을 구웠고, 아버지는 반주를 들이켰다. 양학선의 어린 시절 얘기가 쏟아져 나왔다.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아버지의 주름살이 펴졌다. 어머니가 말했다. "웬일로 이 양반이 이렇게 얘기를 많이 해"라며 웃었다. 아들의 비상은 고생많았던 부모의 삶에 기운을 얹었다. 

어머니는 "인터뷰를 고사했었다"고 했다. "집안 꼴이 이래놔서"라고 했다. 그런데 양학선이 말했단다. "어머니, 저는 하나도 부끄럽지 않아요" 부끄러운 건, 잘못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의 몫이다. 자신의 이름을 딴 기술로, 세계최고의 자리에 오를 만한 자격을 가진 이에게 부모님은 자랑스런 존재지 부끄러운 존재일리 없다. 

많은 얘기가 오고갔다. 아버지의 웃음과 어머니의 미소에서 양학선이 겹쳤다. 천장이 낮고 둥근 그 방안에서 나눈 얘기들이 켜켜이 쌓였다. 가슴 한 켠이 아렷해졌다. 학교를 졸업하고 13년만에, 기자생활을 시작한지 10년만에 '어쩌면 시를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가 되지는 못했지만, 그 아렷함을 다 담아내지 못했지만, 런던의 프레스센터 책상에 앉아,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쏟아냈다. 생각이, 느낌이, 아렷한 단어들이 키보드 위에 쏟아졌다. 


지면 사정상 그때 그 글이 모두 들어가지 못했다. 아래는 초고다. 기사를 쓰면서 양학선이 꼭 금메달을 따기를 빌고 또 빌었다. 스포츠 기자를 하면서 누군가의 결과를 이렇게 바랐던 것은 처음이었다.



 어머니, 金으로 집을 지을게요.

 어머니는 아이를 가졌을 때 꿈을 꿨다고 했다. 사람만큼 커다란 붕어가 도랑을 헤엄치고 있었다. 신기해 붕어를 따라가니 곧 넓은 바다가 나타났다. 바다를 만난 붕어는 금세 화려한 비단 잉어로 변했다. 어머니는 “그런데, 그 비단 잉어가 갑자기 뛰어 올라 재주를 넘더니 품에 안겼다. 그걸 보던 사람들이 막 박수를 쳐 주더라”고 했다. 아이는 자라서 정말로 재주를 넘는 소년이 됐다. 그 재주로, 세계를 제패하려 한다. 金을 만들어, 집을 짓는게 꿈이다. 양학선(20·한국체대)의 꿈이다.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석교리. 20가구가 채 안되는 이들이 모여 산다. 마을 끝에 있는 양학선의 집은 비닐 하우스다. 허리를 펴기 힘든 높이의 하우스 안 단칸방에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산다. 벽에는 양학선의 사진과 메달이 들어찼다. 어머니는 한사코 “사는 게 이래서 안된다”고 했다. 오히려 양학선이 어머니를 위로했다. “어머니, 전 하나도 부끄럽지 않아요”라고 했다. 어머니의 얼굴에서 그제야 미소가 피었다. 

 어머니는 “학선이가 뜀틀에서 뛰어 오르면, 난, 그게 꼭 화려한 꽃이 하늘에서 날면서 샤라락 도는 것 같아. 얼마나 멋져”라고 했다. 어머니는 그때마다 웃었다. 주름이 펴졌다. 

 아버지, 金 가지고 형이랑 같이 낚시하러 가요.

 아버지는 말을, 웃음을 잃었다. 공사장에서 미장 기술자였던 아버지는 수년 전 어깨를 다쳤다. 인대가 모두 끊어졌다. 일을 놓았고, 삶도 놓았다. 광주 살림을 파하고 석교리로 들어온 게 2년 전. 비닐 하우스를 짓고 살면서 아버지는 자꾸만 침울해졌다. 그해 여름 폭우가 쏟아졌다. 하늘은 하루에 450㎜를 내리 퍼 부었다. 비닐하우스만 빼고 모든 게 다 비에 쓸려내려갔다.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는 ‘우울증’ 진단을 내렸다. 아버지는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후로 매일 우울증 약을 입안에 털어 넣는다. 그 아버지를 웃게 만든 건, 아들의 재주넘기다. 

 아버지는 “볼 때마다 조마조마하다”고 했다. 손을 들고 서 있다가 힘차게 달린다. 발판을 구르고 뜀틀을 짚어 하늘을 날면, 아버지는 손으로 눈을 가렸다고 했다. 아버지의 마음이다. 제대로 착지한 걸 확인한 뒤에야 마음이 놓였다. 그때 아버지는 웃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지 혼자 컸다. 기특하다”고 했다. 팍팍한 삶은 여유를 없앴다. 지금껏 단 한 번도 가족여행을 떠나 본 적이 없다. 아버지는 “학선이가 돌아오면 제 형이랑 같이 세 부자가 바닷가로 낚시를 하러 가고 싶다”고 했다. 

 어린 시절부터 남달랐다고 했다. 기묘한 태몽만이 아니었다. 어머니 기숙향씨(43)는 “학선이가 원숭이 띠다. 원숭이가 제일 많이 움직인다는 오전 10시에 태어났다”고 했다. 지고는 못 살았다. 세계최난이도 기술 ‘양학선’도 그래서 태어났다. 아버지 양관권씨(53)는 “2년전 세계선수권때 프랑스 선수한테 지고 4위 하고 난 다음에 엄청 씩씩댔다. ‘아무도 트집 잡을 수 없는, 신기술을 만들어야겠다’고 하더라”라고 했다. 양학선은 정말로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신기술을 완성시켰다. 하늘로 날아올라 한바퀴 돌면서 세바퀴를 비틀었다. 한국 올림픽 체조 사상 첫 금메달을 위한 최고의 무기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양학선은 金으로 집을 짓고 싶다. 비닐하우스를 뜯고, 번듯한 집을 짓는 게 꿈이다. 석교리에 집터는 마련해 뒀다. 어머니는 “해준 것도 없는데, 참 효자다”라고 했다. 태릉선수촌 훈련비가 하루에 4만원 안팎. 안쓰고 차곡차곡 모으면 80만원 안팎이다. 그나마 대회라도 참가하면 훈련비가 안 나온다. 그 돈을 모아서 매달 10일이면 어머니 통장에 넣는다. 아버지는 “매달 10일이면 돈 잘 들어왔냐고 전화를 한다”고 했다. 

 효자 학선의 도전이 곧 시작된다. 힘차게 뛰어, 힘껏 구르고, 힘껏 날아올라, 착지에 성공하면, 金으로 집을 짓는다. 아버지와 형과, 낚시 여행을 갈 거다. 어머니는 “다치지만 말고 와라”라고 했다. “네가 제일 좋아하는 제육볶음과 김치찌개를 준비할 거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