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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택의 고백과 ‘야구 덕목상’

베이스볼라운지

by 야구멘터리 2013. 12. 1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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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천고마비의 계절이다. 봄·여름을 거치며 농익은 것들을 거두는 수확의 계절이다. 야구에서 수확의 계절은 겨울까지 이어진다. 뜨거웠던 한달간의 포스트시즌이 끝나면 겨울, 시상식의 계절이 찾아온다.


벌써 2년째, 겨울은 박병호의 계절이다. 정규시즌 MVP로 2000만원을 받았고, 홈런·타점·득점·장타율 등 4관왕에 오르며 상금 1200만원을 또 받았다. 선수들이 뽑은 ‘플레이어스 초이스 어워드’에서도 올해의 선수로 500만원, 최고의 선수로 300만원을 더했다. 언론사 주최 시상식에서 받은 상금이 4000만원이고 일구회 최고 타자상도 받았다. 중계방송사 주최 시상식에서도 상금 1000만원을 얹었다. 어림잡아 1억원에 육박하는 금액이다. 야구를 잘하면 겨울이 따뜻하다.


야구는 던지고, 치고, 달리는 종목이지만 단순히 잘 던지고, 치고, 달리기만 해서는 안된다. 복잡한 수와 계략과 판단이 더해진다. 그러니 잘 던지고, 치고, 달리는 이에게만 상을 주는 건 못내 아쉽다. 야구 철학서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를 보면 “미국인들은 야구란 게임의 발단부터 도덕적 특성을 부여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이 보기에 야구는 미국의 도덕적 이미지를 불러내는 마법이었다”라는 대목이 있다. 훔치고 속이는 것은 허용된 범위 안에서만 이뤄진다. 이를 벗어나면 ‘도덕적’으로 ‘응징’이 허용되는 종목이다. 야구는 ‘도덕’의 게임이기도 하다. 자, 그래서 ‘2013 야구 덕목 상’이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MLB.com)는 지난 5월16일 ‘어린이들을 위한 교훈’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실었다. 같은 장면을 두고 미국 CBS스포츠는 ‘방망이를 던질 때 중요한 교훈’이라고 기사를 썼다. 조금 이른 세리머니를 통해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김칫국 금지’의 교훈을 준 롯데 전준우는 ‘교훈상’을 받아 마땅하다.지난 9월21일 삼성 마무리 오승환은 8-6으로 앞선 9회 1사에서 넥센 박병호를 맞았다. 초구 150㎞에 이어 이후 8개의 공을 모두 직구로 승부했다. ‘정면 승부’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야구. 꼼수가 판치는 세상을 향한 묵직한 ‘돌직구’였다. 오승환에게는 ‘꼼수 금지상’이 어떨까.



“야구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요기 베라의 말은 ‘연애용’이 아니다. 롯데 손아섭은 시즌 최종전, 첫번째 타석 볼카운트 3-0에서 홈런을 때렸다. 앞서 시즌 내내 쏟아진 791개의 홈런 중 3-0에서 나온 홈런은 최형우(삼성)·김태균(한화)이 각각 때린 2개뿐이었다. 타격왕은 멀어졌어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스윙. ‘므찐아’ 손아섭에게 ‘포기 금지상’을 준다. 한화가 개막 13연패를 끊던 날, 응원석에서 “매일 져도 계속 응원할게요”라고 울먹인, 그래서 코끼리 감독의 눈가에 이슬 맺히게 한 그 팬에게도 ‘포기 금지상’ 추가.


LG 박용택은 페어플레이상 수상 자리에서 “2009년엔 솔직히 어리석었다”고 고백했다. 옆구리로 날아드는 150㎞ 속구에 대처하는 것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한 고백이었다. 박용택은 2009년 홍성흔과 타격왕을 결정짓는 마지막 경기에 출전하지 않았고 ‘비겁한 타격왕’이라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박용택은 “이후 더 모범적인 선수가 되려고 노력해왔다. 앞으로도 지켜봐 달라”고 덧붙였다. 고백과 반성, 그리고 앞으로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 2013년 겨울, 누군가는 절대로 하지 않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가장 부족한 덕목이다. 박용택에게는 ‘안녕들 하십니까상’이 제격이다.


이용균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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