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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가 익어가는 계절

베이스볼라운지

by 야구멘터리 2014. 3. 1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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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의 시 ‘청포도’를 빌리자면 ‘내 고향 3월은 야구가 익어가는 계절’이다. 해마다 3월이면 새로운 얼굴들에 대한 기대가 넘친다. 스프링캠프와 시범경기는 그들을 맞이하러 나온 팬들의 기대로 뜨겁다. 그 기대는 팬들이 누릴 수 있는 권리다.

LG 김기태 감독은 16일 대전 한화와의 시범경기를 앞두고 더그아웃 앞을 지나가던 내야수 백창수를 불러세웠다. 2008년 신고선수로 입단한 백창수는 1군에서 35경기 48타수를 기록했다. 백업 내야수로 기대를 모으는 중이다. 김 감독은 백창수에게 “지금이라도 풀타임 자신 있지?”라고 물었다. 백창수는 “예, 물론입니다”라고 씩씩하게 답했다.

백창수의 어깨를 두드려준 뒤 들여보낸 김 감독은 “누구나 자신감이 넘치지만 선수는 잘 익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병규(9번), 이진영, 박용택 등 베테랑들에 대해 “어찌 보면 대충 하는 것 같지만 시즌이 끝나고 나면 400타석 이상 뛰고 타율 3할을 기록한다. 이게 경험의 힘”이라고 설명했다.

기대를 모으는 신인 임지섭을 2군에 내려보낸 이유가 이어졌다. 김 감독은 “이제 19살인 선수다. 대학 1학년도 4학년 선배랑 같이 생활하면 어쩔 줄 몰라 한다. 여기 있는 아저씨들과 같이 생활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 그 마음을 잘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좋은 김치가, 구수한 장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제 막 열매가 맺힌 과일에는 거센 비바람이 아니라 거름과 햇빛이 필요하다.


넥센의 강지광은 시범경기 홈런 3방으로 단숨에 주목을 받았다. 등번호 66번은 LA 다저스 야시엘 푸이그와 같은 번호다. 펄펄 날고 있지만 넥센 염경엽 감독은 “2군 경험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타석이라도 더 들어서보고, 외야 타구 1개라도 더 잡아보는 게 낫다”는 게 이유다. 시 ‘청포도’처럼 나중에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기 위해서’다. 그렇게 익고, 그렇게 전설이 된다.

이육사는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온다’고 노래했다. 누구나 처음부터 끝까지 화려할 수는 없다. 막내구단 KT는 지난 14일 고양 원더스와의 연습경기에서 3-12로 완패했다. 마운드는 흔들렸고, 타자들은 긴장했으며, 수비에서 매끄럽지 않은 플레이가 이어졌다. 신생팀이 겪는 고달픈 경험일 수 있다. 김광수 고양 수석코치는 “실전 타구의 회전은 연습 때 회전과 다르다”고 했다. 수없이 벌어지는 상황들을 하나씩 겪어보면서 경험이 쌓여 나간다. KT 조범현 감독은 그래서 “하루하루 있었던 일을 밤에 자기 전에 생각하고 성찰하는 야구”를 얘기했다.

그리고 다음날, KT는 고양에 10-4로 이겼다. 2차 드래프트로 다시 한번 기회를 잡은 김사연(전 넥센)이 3타점 3루타를 때렸고, 김주원(전 SK)이 3이닝 2실점(비자책)으로 호투했다. 고달팠던 몸이 쌓여 ‘청포’를 입을 날을 기다리는 중이다. 어쩌면 야구는 기다림의 종목이다. 야구가 익어가는 3월의 밤, 감독들에게는 ‘식탁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수건을 마련’하는 인내의 밤이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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