⑭4, 4중주(quartet)-2014 KS6차전

전날 끝내기 2루타를 때린 삼성 최형우는 경기 전 부터 자신감이 넘쳤다. “오늘 충분히 끝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넥센 덕아웃은 어딘가 모르게 기운이 빠져 있었다. 전날 끝내기 패배의 여운이 감돌았다. 경기 전, 염경엽 감독은 잠실 외야에서 선수들을 모았다. 준우승의 아픔을 물었다. 선수는 물론, 코칭스태프 누구도 준우승을 겪어보지 못했다. 오직 염 감독만 1994년 태평양에서, 1996년 현대에서 맛봤다. 염 감독이 선수들에게 준비한 우승 세리머니를 물었다. “일단 몸 풀기 전에 그거 부터 연습하자”며 웃었다. 선수들이 둥글게 모여 두 손을 번쩍 들었다. 검지 손가락 1개씩을 하늘로 찍었다. 1이 4개(quartet) 모인 날이었다. 11월11일. 삼성은 4년(quartet) 연속 통합 우승이 눈앞이었다.

승부는 초반에 갈렸다. 벼랑 끝이라는 긴장감이 넥센의 수비를 무너뜨렸다. 김상수의 번트를 투수 오재영이 놓쳤다. 이번 시리즈, 삼성은 상대의 실책을 놓치지 않았다. 경기 전 류중일 감독은 “1번과 3~6번에게는 번트 없다”고 했지만 1번 나바로는 3구째 희생번트를 댔다. 오재영과 박한이의 승부에서 초구, 2구가 모두 볼이었다. 흐름이 급격히 기울었다. 박한이가 볼넷을 얻었고, 채태인이 초구를 때려 우전 적시타를 만들었다. 4번 타자 최형우는 파울 3개를 때린 뒤 우중간 깊숙한 타구를 날렸다. 무너진 넥센 수비는 중계 플레이마저 엉망이 됐다. 이 4(quartet)점은, 사실상 승부를 끝냈다. 넥센이 4회 서건창의 안타와 이택근의 2루타로 1점을 따라붙은 뒤 3~5번이 침묵하면서 승패는 갈렸다. 삼성은 이후 7점을 더 냈다. 임창용이 박병호를 잡아내는 순간 선수들이 마운드 주변에 모였다. 임창용을 가운데 두고 손을 번쩍 들었다. 손가락이 4개(quartet)씩이었다.

11월11일, 안타 11개, 득점 11개. 1이 4개 모인 날 삼성은 4년 연속 통합 우승을 완성했다. 강팀을 증명하는 숫자는 이날 삼성이 기록한 희생번트 4개(quartet)였다. 번트로 상대의 균형을 무너 뜨린 뒤 장타로 카운터 펀치를 날렸다. 11점 중 10점이 번트에서 시작됐다. 4번(quartet)의 우승을 만들어가면서 삼성의 야구는 ‘이기는 야구’에서 ‘이길 줄 아는 야구’가 됐다. 상대가 약점을 보이면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3차전, 5차전). 상대가 약점을 드러내지 않으면 번트로 틈을 내 파고들었다.

삼성이 최강팀이 된 것은 4중주(quartet) 같은 조화였다. 자신감 넘치는 선수단과, 팀의 역사를 너무 잘 아는 코칭스태프, 현장과의 유기적 연결이 능한 프런트, 여기에 모그룹의 지원이 더해졌다. 이날도 역시 사실상의 구단주인 (캔자스시티 승리 요정 이성우씨를 뛰어 넘는) 이재용 부회장이 잠실구장을 찾았고, 삼성은 이겼다. 

PS. 불꽃놀이가 터졌고, 종이 꽃가루가 날렸다. 손승락은 1루 덕아웃에서 세리머니와 행사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 고통, 슬픔, 그리고 이 세리머니 다 눈에, 머리에 넣어서 꼭 다음에 이기는 힘으로 삼겠다”고 했다. 그 구석에서 박병호는 주저앉아 있었고, 유한준은 입을 다문 채 가슴에 뭔가를 꾹꾹 억누르고 있었다. 그리고, 염경엽 감독은 기자회견장에서 끝내 울었다. 준우승 팀의 덕아웃에는 매년 그렇듯, 야구에서 가장 슬픈 4중주(quartet)가 떠나니고 있었다.

넥센 선수들은 6차전을 앞두고 '우승 세리머니'를 연습했다. 준우승을 아픔을 뼈저리게 겪은 그들이 저 세리머니를 현실로 만드는 날이 그리 멀지는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