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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저스와 GPS

베이스볼라운지

by 야구멘터리 2016. 6. 2.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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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호가 뛰고 있는 피츠버그는 1992년을 마지막으로 20년 동안 가을야구에 오르지 못했다. 20년의 한을 푼 것은 ‘시프트’ 덕분이었다. ‘올드 보이’였던 클린트 허들 감독은 “메이저리그가 120년 동안 경험을 완성한 수비 포지션을 무시하는 일”이라고 화를 내기도 했지만, 오히려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성공했다.

투수들은 땅볼을 유도할 가능성이 높은 투심 패스트볼을 적극적으로 던졌고, 내야수들은 수비 위치를 옮기며 타구를 잡아냈다. 2008~2012년 경기당 평균 4.82점을 내주던 피츠버그는 시프트를 적극 활용한 2013시즌 경기당 실점을 3.52점으로 줄였다.

야구통계학자들은 내야 시프트의 효용성에는 동의하지만 외야 시프트에 대해서는 대개 부정적이었다. 성공했을 때 얻을 수 있는 효과보다 실패했을 때 부작용의 크기가 더 크기 때문이다.

올해 초 미국 야구통계학회 총회에서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땅볼 유도가 많은 투수들은 외야 타구를 허용하더라도 타구의 발사각이 낮고 비거리가 짧은 타구가 많다’는 것이다. 정상적인 수비 위치라면 내·외야 사이에 떨어지는 ‘바가지 안타’가 많이 나온다. 데이터와 통계, 변화에 민감한 피츠버그는 이를 적극 수용하고 나섰다. 피츠버그 허들 감독은 시즌 초반 “올 시즌에는 외야수들이 조금 더 내야 쪽으로 다가가서 수비하게 된다”고 말했다. 피츠버그 외야수들은 ‘전진 시프트’를 쓰는 중이다. 팬그래프닷컴의 수비 지표에서 피츠버그 외야수는 지난해 13위에서 올 시즌 5위로 높아졌다.

다저스는 한 발 더 나아갔다. 2015시즌을 앞두고 교체된 다저스 구단 수뇌부는 통계를 다루는 데 능하다. 외야 시프트를 더욱 세밀하게 다듬었다. 상대 타자들의 타구 방향과 타구 거리를 계산했고, 이를 효과적으로 잡아낼 수 있는 ‘범위’를 설정했다. 문제는 외야수가 그 자리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외야수 3명의 포지션을 일일이 수신호로 정해주는 것은 부정확할 뿐만 아니라 시간도 오래 걸린다.

다저스는 GPS와 레이저를 이용했다. 이를 이용해 각 수비 포지션, 좌익수·중견수·우익수 자리에 색깔로 표시를 했다. 외야수들은 이 기준점을 바탕으로 수비 위치를 잡는다. 뒷주머니에는 상대 타자에 따른 수비 위치를 적은 종이를 넣어뒀다. 마치 보물섬 지도처럼, 동쪽으로 몇 걸음, 남쪽으로 몇 걸음. 2루수지만 가끔 외야로 나서는 하위 켄드릭은 수비 때 이 종이를 꺼내 쳐다본 뒤 수비 위치를 잡았다. 외야에서 한 팬이 이를 휴대전화로 촬영했고, ‘경기 중 휴대전화를 사용해 수비 위치를 지시받는다’는 오해를 샀다.

문제는 원정경기 때다. 다저스는 지난 28일부터 시작한 뉴욕 메츠 원정 때 ‘외야 표시’ 가능성을 타진했다가 퇴짜를 맞았다. 메츠와는 지난해 디비전시리즈 때 체이스 어틀리의 거친 슬라이딩으로 앙금이 남은 터였다. 메츠의 샌디 앨더슨 단장은 되레 메이저리그 사무국에 ‘다저스 수비 위치 표시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항의했다. 다저스는 31일부터 시카고 컵스 원정을 간다. 데이터 사용에 적극적인, 게다가 앤드루 프리드먼 다저스 사장과 탬파베이 시절 호흡이 잘 맞았던 컵스 조 매든 감독은 “새로운 시도는 언제든지 환영”이라며 다저스의 수비위치 표시를 흔쾌히 허용했다.

130년 넘은 메이저리그는 여전히 변하고 있다. 안 해 본 것 없이 지금까지 모든 걸 다 해 봤겠지만 여전히 새로운 시도는 남는다. 길은 아직 무수히 열려있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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