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왕년의 강속구 배영수, 부활의 투구

잡지에 보내다

by 야구멘터리 2010. 3. 30. 14:43

본문

ㆍ팔꿈치 수술 후 부진 딛고 올 시범경기서 재기 가능성

 

지난 3월 17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0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시범경기에서 삼성 선발 배영수가 역투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속구를 잃은 투수에게 야구공은 차라리 공포다. 사람들이 눈으로 보고 글씨를 읽으며 세상을 이해한다면 투수는 마운드에서 팔과 손으로 공을 던지면서 세상을 인식하고 이해한다. 세상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방식도 공을 던짐으로써다. 공을 던지는 투수가 속도를 잃는다면, 150㎞ 넘게 던지던 공이 더이상 140㎞도 넘기지 못한 채 포수 미트를 향해 날아간다면. 삼성 라이온즈의 에이스이던 배영수(29)의 존재 이유는 사라진 듯 보인다.

지난 3월 17일 두산 베어스와의 시범경기. 배영수가 이날 5이닝을 던지며 기록한 최고구속은 137㎞였다. 강속구는 완전히 사라졌다.

2006년, 팔꿈치 수술
2006년 11월. 우연히 인천국제공항에서 만난 배영수의 얼굴에는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왼쪽 어깨에 가방을 짊어지고 있었다. 불과 보름 전에 한국시리즈에서 150㎞짜리 ‘씽씽투’를 던지던, 그래서 삼성의 세 번째 우승을 이끈 자신감 넘치던 에이스의 표정은 사라졌다. 걱정과 근심이 가득했다. 수술을 위해 미국으로 떠나던 중이었다.

아픈 팔꿈치로 잘도 던졌다. 2006년 삼성과 한화 이글스가 맞붙은 한국시리즈. 배영수는 뛰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선발을 포함해 4경기에 등판했다. 150㎞가 넘는 직구를 씽씽 뿌려댔다.

방어율은 겨우 0.87. MVP급 활약이었다. 우승도 이끌었으니 미련은 없었다. 이제 수술을 통해 더 건강한 팔로 돌아오는 일만 남았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그랬다.

재활의 괴로움
배영수가 받은 수술은 일명 토미 존 서저리 수술. 팔꿈치의 손상된 인대를 다른 부위의 인대로 묶어서 건강하게 만드는 수술이다. 높지 않은 확률이지만 이 수술을 받은 뒤 구속이 더 빨라지는 경우도 있었다. 일본 프로야구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임창용이 그랬고, 2006년에 괴물처럼 등장한 한화 괴물투수 류현진이 그랬다. 공은 더 빨라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느려질 수도 있었다. 배영수는 “자다가도 깜짝 깜짝 놀라서 깨곤 했다”고 말했다. 꿈속에서 배영수는 공을 던지지 못했다. 팔꿈치 상태는 심각했다. 인대가 너덜너덜해졌다. 미국의 의사는 배영수의 인대를 살펴보고 나서 “이 인대로 어떻게 150㎞를 던질 수 있는지 불가사의하다”고 말했다. 수술은 잘 끝났다. 재활은 지루하고 길었다. 꼬박 1년을 재활 프로그램에 매달렸다.

재활을 하는 동안에도 불안감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배영수는 “수술한 이튿날 작은 손가방을 하나 들려고 했지만 그걸 들지 못하고 놓쳤다”고 했다.
150㎞를 던지던 그 오른팔이 이제 작은 손가방 하나도 들지 못하는 팔로 바뀌었다. 그 오른팔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 주던 팔이었다. 배영수는 “그건, 정말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고 했다.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스의 배영수가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 훈련하고 있는 모습. (안승호 기자)

재활은 지독하게 힘들었다. 훈련 과정이 혹독하고 힘들었다는 뜻이 아니다. 배영수는 끊임없이 불안과 싸워야 했다. ‘내가 공을 다시 던질 수 있을까’ ‘못 던지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배영수는 “수술을 했으니 이제 잘 던지겠지? 라고 묻는 질문이 가장 싫었다”고 대답했다. 토미 존 서저리의 수술 성공 확률은 90%가 넘는다.

원래 어려운 수술이 아니었다. 그러나 성공 확률이 모든 것을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군에 입대해서 제대할 확률은 사실상 100%나 다름없다. 그러나 제대를 한다는 사실이 군 입대를 즐겁게 해 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재활 1년은 지독한 고독과의 싸움이었다. 배영수는 “공부하는 사람이 눈으로 보고 글씨로 쓰면서 세상을 대한다면 나는 마운드에서 공을 던짐으로써 세상을 마주한다. 그런데 공을 던질 수 없었다. 공부하는 걸로 친다면 눈이 보이지 않는 거와 똑같다. 나는 1년 동안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잃어버린 강속구
공을 던질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재활을 마친 뒤 2008시즌에 배영수가 돌아왔다. 그러나 강속구가 사라졌다. 2008시즌 초반에 배영수의 구속은 최고 147㎞까지 나왔다. 조금만 더 훈련하면 150㎞를 던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2년 전의 배영수로 돌아갈 수 있을 듯 보였다.

구속은 계속 떨어졌다. 전광판의 숫자가 줄어들수록 배영수의 심장도 조금씩 떨어져 나갔다. 강속구를 던지지 못하는 투수는 글을 쓰지 못하는 작가와도 같았다.

2008시즌 성적은 9승8패, 방어율 4.55. 2009시즌 성적은 1승12패로 곤두박질쳤다. 방어율은 7.26이었다. 배영수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배영수는 수술 뒤 세 번째 시즌을 맞는다. 토미 존 서저리 수술을 하고 나서 2년이 지난 뒤부터 구속을 늘리는 경우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배영수는 수술을 받은 지 4년째다. 구속이 예전처럼 돌아올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삼성 선동열 감독은 “이제 과거를 잊고 새로운 투수로 태어나야 한다”고 토닥거렸다. 투구가 140㎞를 넘지 않더라도 배영수 정도의 투수라면 타자와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는 게 선 감독의 생각이다.

배영수도 변신을 꾀하고 있다. “여전히 구속을 끌어올리고 싶은 마음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던질 수 있는 공으로 타자를 잡아내는 게 우선”이라고 했다. 배영수에게 더 절실하고 중요한 것은 구속이 아니라 마운드에서 던질 수 있다는 사실 자체다.

강속구를 잃은 대신 겨우내 투심 패스트볼을 갈고 닦았다. 공은 빠르지 않지만 손끝의 움직임으로 공 끝의 변화를 줄 수 있다. 공은 타자의 몸쪽과 바깥쪽으로 조금씩 흘러나간다.

새 공은 배영수에게 자신감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 일단 시작은 그리 나쁘지 않아 보인다. 배영수는 시범경기 첫 2경기에 등판해 합계 9이닝 동안 10안타 1실점을 기록했다. 그 1실점도 수비 실책 때문이어서 배영수의 방어율은 ‘0’이다. 2010시즌, 강속구를 잃은 투수는 부활을 준비하고 있다. 배영수의 말처럼 중요한 것은 빨리 던지는 것이 아니라 ‘던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