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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를 모르는 남자 커크 깁슨, 올해의 감독이 되다.

미국야구

by 야구멘터리 2011. 11. 17.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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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크 깁슨은 왼쪽 허벅지 햄스트링, 오른쪽 무릎을 다쳐 제대로 걸을 수 조차 없는 상태에서 끝내기 홈런을 때렸다. 그야말로 포기를 모르는 남자였다. mlb 캡처


 이보다 더 극적인 홈런이 또 있을까. 1988년 월드시리즈 1차전. LA 다저스 토미 라소다 감독은 3-4로 뒤진 9회말 2사 1루, 대타로 커크 깁슨을 내세웠다. 모두들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다. 커크 깁슨은 앞선 챔피언십시리즈에서 왼쪽 허벅지 근육과 오른쪽 무릎을 다쳤다. 게다가 바이러스성 장염에 걸렸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깁슨은 다리를 절룩이며 타석에 들어섰다. 상대 오클랜드의 마무리 투수는 그해 45세이브를 거둔 당대 최고의 마무리 데니스 에커슬리였다. 오클랜드는 승리를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볼카운트 2-0에서 볼 2개를 골랐다. 볼카운트 2-2에서 깁슨은 힘겹게 공 하나를 파울로 걷어냈다. 볼을 하나 더 골라 2-3. 메이저리그 사상 가장 극적인 홈런이 나왔다. 제대로 걷지도 못한 커크 깁슨은 에커슬리의 바깥쪽 백도어 슬라이더를 걷어 올려 끝내기 홈런을 만들었다. 깁슨은 절뚝거리며 베이스를 돌면서도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라소다 감독은 홈플레이트 근처까지 두 손을 흔들며 뛰어나왔다. 그 한방에는 ‘깁슨의 홈런’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다저스는 4승1패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따냈다.



 23년이 흘렀다. 깁슨(54)은 애리조나 감독이 됐고, 첫 해 또 한 번의 극적인 역전을 일궈냈다. 지난 시즌 97패로 꼴찌였던 애리조나는 깁슨의 지휘 아래 올시즌 94승으로 지구 1위에 올랐다. 깁슨은 17일 내셔널리그 ‘올해의 감독’에 선정됐다. 스타 출신 감독은 실패하기 쉽다는 메이저리그의 속설을 보기 좋게 깨 버렸다. 걷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홈런을 때리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뜨렸던 23년전과 똑같았다.

 선수 시절 부터 감독으로서 자질을 보였다. 1988시즌을 앞두고 자유계약선수(FA) 자격으로 디트로이트에서 다저스로 팀을 옮긴 깁슨은 스프링캠프부터 카리스마를 드러냈다. 자신의 모자에 장난을 친 팀 동료 제시 오로스코와 한 판 붙었고 직전 시즌 지구 4위에 그친 다저스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야구는 이겨야 한다. 그게 프로다”라는게 깁슨의 주장이었다. 깁슨은 팀의 리더가 됐고, 그해 MVP를 따낸 것은 물론 ‘깁슨의 홈런’으로 팀을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깁슨은 지난 시즌 중반부터 성적 부진으로 물러난 A.J. 힌치 감독의 뒤를 이어 ‘감독 대행’에 올랐고 2010시즌이 끝난 뒤 애리조나의 감독이 됐다. 깁슨을 비롯해 애리조나의 코칭스태프는 화려한 스타 군단이었다. 앨런 트럼멜 벤치 코치, 돈 베일러 타격코치, 맷 윌리엄스 3루코치, 에릭 영 1루코치 등은 1235홈런을 합작하고 8개의 골드 글러브, 2개의 MVP를 따낸 걸출한 인물들이었다.

 그러나 화려한 코치가 곧 좋은 성적을 이끌어 낸 것은 아니었다. 
 스프링캠프부터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깁슨 감독과 코칭스태프는 새벽 6시 훈련을 만들었다. 메이저리그 팀으로서는 이례적이었다. 베이스러닝, 중계플레이 등 ‘기초훈련’ 위주였다. 주변에서는 “그러면 오후 훈련이 맥 풀린다. 애리조나는 올시즌이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열혈 감독의 선언만으로 선수들이 움직이지는 않는다. 깁슨 감독과 코치들은 선수보다 더 이른 새벽에 그라운드에 나와 훈련을 준비했다. 앨런 트럼멜 벤치 코치는 “선수시절 잘 했다고 좋은 감독, 코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절대 선수 시절 성공담을 늘어 놓으며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고 말하는 것은 절대 안된다”고 했다. 에릭 영 1루코치 또한  “선수들이 도착하면 이미 준비를 하고 있는 코치들을 볼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젊은 선수들로부터 행동으로 ‘존중’을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애리조나는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5월16일 샌디에이고에 패하면서 꼴찌로 떨어졌지만 이후 역전 드라마가 펼쳐졌다. 그때 깁슨은 선수단을 모아놓고 말했다. “(야구는)모두 우리가 스프링캠프에서 죽도록 열심히 한 것들이다. 우리는 이걸 경기에서 잘 하기만 하면 된다. 자 훈련하러 나가자”. 애리조나는 이후 14경기에서 13승1패를 거두며 지구 1위에 올랐다. 

 8월하순 6연패로 2위에 1경기 차로 쫓기자 이후 9연승 포함 21경기 18승3패로 되갚았다. 이언 케네디는 “시즌 막판 우리가 승률이 높았던 것은 역시 경기 후반이 될 수록 더욱 타오르는 감독의 영향이다”라고 말했다.

 포기를 모른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 깁슨은 명쾌하게 정리했다. “자, 1사 만루에서 타자가 삼진을 당했다고 치자. 그렇다고 이닝이, 경기가 끝난 게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공격을 하고 있고, 여전히 상대와 싸우고 있는 중이다”라고 말했다. 야구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자, 장면이 겹친다. 김성근 감독의 제자 김재현이,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고관절 부상 상태로 대타로 나와 2루타성 타구를 때린 뒤 절룩거리면서 1루까지 갔던, 2007 한국시리즈 MVP에 올랐던 김재현. 깁슨은 이날 자신의 감독상 수상을 2명의 멘토, 스파키 앤더슨과 짐 릴랜드에게 바쳤다. 김재현이 감독이 돼서 우승을 한다면, 비슷한 분위기가 될 수 있을 듯. 김성근 감독 스타일 대로 빡세게 시작한 스프링캠프, 기본기를 중심으로 한 훈련. "이기는 것이 최고"라는 신념. 세이버메트리션들로부터의 비판. 깁슨은 라인업에 대한 비판을 두고 "숫자도 중요하지만 누가 오늘 가장 좋은 선수인지 아는 것은 감독"이라고 말했다.

단, 한가지 중요한 것 하나. 김재현은 케빈 타워스 같은 (나름) 좋은 단장을 만나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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