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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저스 목소리로 67년…굿바이 스컬리

베이스볼라운지

by 야구멘터리 2016. 9. 27.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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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저 블루라 불리는 파란색에 다저스가 아닌, ‘빈(vin)’이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은 팬들이 다저스타디움 앞에 줄을 섰다. 그 장면을 배경으로 지난 67년 동안 한결같았던 목소리가 이어졌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드디어 다저스의 야구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지난 25일(현지시간)은 다저스의 2016시즌 마지막 홈경기였다. 4시즌 연속 지구 우승을 향한 매직 넘버가 1로 줄어 있던 경기이기도 했지만, 이날은 조금 더 특별한 경기가 됐다. ‘다저스의 목소리’ 빈 스컬리(사진 왼쪽)의 마지막 홈 중계 경기였다.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다저스의 목소리’는 그대로다. 1950년 브루클린 다저스 시절 CBS 라디오에서 다저스 중계를 시작했고, 1957시즌을 끝으로 LA 다저스가 된 뒤에도 스컬리는 다저스 경기를 중계했다. 특유의 차분한 목소리로 67번째 시즌이자 마지막 시즌을 치렀다.

 

 

우리 나이로 아흔 살, 여전히 4~5시간짜리 중계를 거뜬하게 해낸다. 마지막 홈경기도 4시간 가까이 걸렸다.

올 시즌 마지막 홈 시리즈, 콜로라도와의 3연전은 스컬리를 위한 시리즈였다. 지난 23일 첫 경기 때 심판진은 경기 시작 직전 마운드에 모여 선 뒤 빈 스컬리를 향해 모자를 벗어 경의를 표하는 세리머니를 치렀다. 이날 경기는 ‘스컬리 감사의 날’로 이름 붙었다. 마지막 홈경기였던 25일, 애드리안 곤잘레스는 2회 첫 타석에 들어서기 전 백스톱 위 중계 부스의 스컬리를 향해 헬멧을 벗어 인사했다. 모든 타자들이 첫 타석에서 그를 향해 헬멧을 벗었다. 67년을 한결같이 지켜온, ‘목소리’를 향한 감사의 뜻이었다.

 

팬들의 마음도 같았다. 이날 경기 초반 이제 막 돌이 지났을 법한 아기 팬은 ‘Win for Vin(빈을 위한 승리)’이라고 쓴 셔츠를 입고 응원했다. 스컬리는 “16명의 우리 손자 손녀들이 야구장을 찾았다”고 소개했다. 7회 스트레치 타임이 끝나고, 팬들은 중계 부스의 빈 스컬리를 향해 기립박수를 보냈다.

 

차분함의 대명사 ‘다저스의 목소리’는 마지막 홈경기라고 다르지 않았다. 2-3으로 뒤져 패색이 짙던 9회말 2아웃 코리 시거의 극적인 동점 홈런이 터졌을 때, 스컬리는 샤우팅 대신 “타구가 오른쪽 담장 위로 솟았다. 넘어갔다”는 말로 멘트를 마쳤다. 이어진 1~2분 동안 대단한 플레이라는 것을 역설하는 대신 자신의 목소리를 닫은 채 구장의 환호성으로 현장의 분위기를 그대로 전했다. 연장 10회말 찰리 컬버슨의 우승 확정 끝내기 홈런이 나왔을 때도 “타구가 날아갑니다. 다저스가 4년 연속 지구 우승을 확정지었습니다”라 하고는 제 말을 멈췄다. 세리머니가 진행되는 동안 “(이 극적인 홈런이) 컬버슨의 올 시즌 첫 홈런이라는 게 믿어지나요”라고 말한 게 전부였다.

 

67년 동안 꾸준할 수 있었던 것은 나를 내세워 화려함을 치장하는 대신 가장 중요한 순간 자신을 낮추고 가림으로써 현장을, 실제를, 어쩌면 진실을 더 잘 나타나게 하는 그 방식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장내 마이크를 통해 “이 우승은 당신을 위한 거예요, 친구여”라고 했다. 스컬리는 팬들을 향해 “여러분이 나를 원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내가 여러분을 원했다. 여러분이 내게 전해주는 열정과 감동이 나를 젊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야구는 승리의 결과에 기뻐하는 종목이 아니라 그 결과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함께 공감하고 즐기는 종목임을, 스컬리가 67년 동안 전해줬다.

 

마지막 홈경기, 선수들은 그에게 우승을 선물했다. 스컬리는 중계 부스에 아내 제시카와 함께 자리했다. 그리고 아내를 위해 자신이 직접 불렀던 노래 ‘wind beneath my wings’를 팬들과 선수를 위해 바쳤다. 새를 날게 하는 것은 날개 밑을 받쳐주는 바람 덕분이다. 누구도 저 혼자의 힘으로 날 수 없다고, 67년의 중계가 혼자의 힘으로 가능하지 않았다고, 마지막 순간 가장 멋진 방식으로 보여줬다. 굿바이 스컬리.

 

로스앤젤레스에서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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