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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균의 가을야구]③ 2019 준PO2-반복(repeat, again)

이용균의 가을야구

by 야구멘터리 2019. 10. 8.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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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희극으로, 한 번은 비극으로. 

 

칼 마르크스가 헤겔의 말을 인용해 적은 글이다. 야구도 반복(repeat, again)된다. 다만 야구의 희극과 비극은 상대적이어서 편을 가르기 어렵다. 한 쪽 팀에는 희극이, 다른 팀에는 비극이 된다.

 

LG 좌완 차우찬은 ‘미스터 옥토버’다. 10월이면 특별해진다. 지난해 10월3일, 15패를 당한 두산을 상대로 시즌 마지막 등판에 나섰다. 전패 수모를 혼자서 막아냈다. 이를 악물고 134개를 던져 완투승을 따냈다. 완투승이 확정되는 순간 자신을 향해 뛰어오는 포수 유강남을 향해 “오버하지 말라”고 했다. “우리는 15패 뒤 이제 겨우 1승을 한 거다”라며 굳은 표정을 풀지 않았다.

지난해 10월3일, 134구를 던지며 팀을 16전 전패에서 구해낸 차우찬은 이날도 팀을 구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이석우 기자

정확하게 1년 뒤 야구는 반복됐다. 2019년 10월3일, 차우찬은 NC와의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불펜 등판해 1.1이닝을 퍼펙트로 막고 3-1 승리를 지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딱 3일만 쉬고 7일 키움과의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 선발 등판했다. 시즌 팀 타율 1위(0.282) 키움 타선을 꽁꽁 틀어막았다. 145㎞ 언저리의 빠른 공 보다 100㎞가 조금 넘는 커브가 더 위력적이었다. 5회까지는 안타 1개, 볼넷 1개로 틀어막았다. 6회 무사 만루 위기도 1점으로 막았다. 

 

차우찬이 가장 빛났던 장면은 박병호와의 3차례 대결에서 나왔다. 전날 끝내기 홈런을 얻어 맞은 박병호를 모두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같은 장면의 반복, 반복, 반복. 결정구는 모두 원바운드 커브였다. 1년 전 그랬듯, 완벽한 투구였지만 이닝이 끝날 때마다 그저 덤덤히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차우찬의 호투를 도운 것은 포수 유강남이었다. 유강남은 박병호를 3연속 삼진으로 잡을 때 원바운드 커브를 온 몸으로 막아냈다. 7회 실점을 막은 것도 원바운드 투구를 몸을 날려 블로킹한 덕분이었다. 프레이밍도 열심이었다. 구석구석을 찌르는 차우찬의 공을 하나하나 팔을 쭉쭉 뻗어 잡아내며 스트라이크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홈플레이트 뒤 뿐만 아니라 타석에서도 펄펄 날았다. 이날 오전 LA 다저스 포수 러셀 마틴이 보여준 타석의 반복, 데자뷔였다. 유강남도 결정적인 적시타를 때렸다. 2-0으로 앞선 3회초 좌익수 왼쪽을 향하는 2루타로 타점을 올렸고, 7회초에는 2사 뒤 키움 한현희로부터 벼락같은 쐐기 좌월 솔로 홈런을 때렸다. 6회초와 말, 두 팀이 서로 만루 기회에서 아쉬운 결과를 남긴 터여서 7회초 유강남의 한 방은 승부의 흐름을 바꾸는 결정타로 여겨졌다.

첫 3타석에서 커브에 모두 삼진을 당한 박병호는 4번째 타석 슬라이더에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속구를 기다렸다. 전날 끝내기 홈런을 빼다 박은 듯한 결정적 투런 홈런이 나왔다. 이석우 기자

7회까지의 희극은, 8회, LG에게 비극으로 반복됐다. 마치 판에 찍어낸 듯한 반복의 기시감. 또 박병호였다.
8회 마운드를 이어받은 LG 김대현은 힘있는 속구를 던졌다. 제리 샌즈를 삼진으로 돌려세울 때만 해도 기운이 넘쳤다. 1사 1루, 박병호. 앞선 차우찬과의 승부를, 전날 고우석과의 승부를 고려해 초구는 슬라이더였다. 2구도 슬라이더, 3구도 슬라이더의 반복이었다. 방망이를 내지 않은 박병호는 공 1개를 노렸다. 4구째 첫 속구(146km)에 방망이가 돌았다. 전날 끝내기 홈런을 빼다박은 ‘반복 홈런’. 경기의 흐름이 확 바뀌었다. 

 

LG 류중일 감독은 1점차 리드, 전날 끝내기 홈런을 맞은 마무리 고우석을 9회 다시 마운드에 올렸다. “투수는 맞으면서 큰다. 당당하게 던져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리고 LG 마무리 고우석은 다시 맞았다. 안타와 번트, 땅볼로 만든 2사 3루, 키움 서건창은 고우석의 154km 속구를 때려 동점 좌전 안타로 만들었다. 4-1이 4-4로 되는 순간, 사실상 경기는 끝났다. 10회말 LG 진해수의 2루 견제 실책은 다시는 반복되면 안되는 일이다. 주효상의 끝내기 땅볼은 KBO 포스트시즌 사상 첫 기록이었다.

이틀 연속 끝내기 승리가 반복됐다. 키움으로서는 이 끝내기 승리가 2013년 준플레이오프의 반복이어서는 안된다. 이석우 기자

키움이 전날 끝내기 승리를 반복했다. 2승0패는 압도적 승률이다. 하지만 역사의 반복은 때로 희망의 근거가 된다. 2013년 준플레이오프, 당시 넥센이었던 키움은 홈구장에서 열린 1·2차전을 모두 이겼다. 이번과 똑같이 ‘2연속 끝내기 승리’였다. 이택근과 김지수가 1·2차전 끝내기의 주인공이었다. 플레이오프 진출이 당연하게 여겨졌지만 두산에 리버스 스윕을 당했다. LG는 역사의 반복을 기대한다. 2차전 MVP로 선정된 서건창은 “그때 기억이 있기 때문에 반복되지 않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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