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 밖 두 명의 루키…김정준, 이숭용
27일 잠실구장 본부석. 왼쪽 부터 김정준, 이효봉, 이숭용 해설위원. 이숭용 위원의 입모양은 "초상권, 초상권"이다.
야구를 보는 재미는, 시즌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단언컨대, '루키'들 때문이다. 내가 응원하는 팀에 새로 가세한 루키들이 얼마나 활약을 해 줄지 기대하는 마음은 봄을 기다리는, 얼른 꽃을 피우기 원하는 꽃망울 만큼 크다.
여기는 그라운드 밖. 2명의 루키가 있다. (가운데 있는 이효봉 해설위원은 이제 베테랑이다). 27일 잠실 두산-넥센전을 찾았다. 이날은 SBS ESPN(김정준 위원)도, XTM(이숭용 위원)도 중계가 없었다. 둘은 시즌을 준비하기 위해, 시범경기를 치르는 선수들처럼, 일종의 연습을 위해, 정보를 쌓기 위해 야구장을 찾았다. 둘은 '루키'다.
재능이 뛰어난 루키다. SK 전력분석팀장 출신의 김 위원은 야구를 보는 눈이 탁월하다. 흐름을 읽고 그 흐름에 맞춰서 벤치의 움직임을 예측하는데 능하다. 선수의 작은 동작 하나를 놓치지 않는다. 뭐, 일단 그분(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의 아들이다. 3경기 해설을 했는데 '역시 김정준'이라는 평가와 '무난했다'는 평가가 함께였다. 아직 순발력은 떨어지지만 경기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한 분석은 탁월했다.(는 평가다.) 준비를 철저하게 했다. 아버지를 닮아서 어쩔 수 없는 완벽주의자다. 해설을 앞두고 일주일에 두번씩 스피치 학원을 다녔다. 가고시마 캠프에서 함께 지냈는데, 그때 거리를 걸어다니면서도 입술 운동을 했다. (솔직히 좀 창피하기도 했다. ㅋ) 자기 스스로 만든 선수 분석 데이터가 산처럼 쌓여있다. 스카우팅 리포트를 함께 쓸 때도 아주 큰 도움이 됐다.
김 위원은 이날 SK 전력분석팀장 시절 쓰던 커다란 전력분석용 기록지를 들고 왔다. 자신이 팀장 시절 직접 고안한 형태의 기록지다. 투수의 공 하나하나를 모두 체크하며 경기를 지켜봤다. 넥센 선발 나이트의 구속이 너무 떨어졌다고 평가를 했고, 두산 김현수의 타격 밸런스가 많이 무너졌다고 평가했다. 함께 가고시마 캠프에 갔었는데, 그때 김 위원은 "김현수가 4할 가까이 칠 지도 모르겠다"고 했었다. 김현수가 약간 지쳐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숭용 위원 또한 재능이 뛰어난 루키다. 선수 시절의 성실함을 그대로 가져왔다. 이날 나도 어떤 기자보다 빨리 야구장에 왔는데, 벌써 야구장에 와서 두산 선수들의 훈련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지켜보는 것 뿐만 아니라 뭔가를 적고 있었다. 마치 고등학생처럼 말이다. '숭캡' 이미지와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그게 18년을 뛰게 한 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덩치에 걸맞지 않게 굉장히 '팬시'한 노트에 '취재내용'을 적고 있는 이숭용 위원. 차마 사진을 찍지 못했지만 갖고 다니는 '소녀취향'의 필통과 형광펜은 정말 오글의 극치다.
이 위원은 선수들의 마음가짐, 심리상태 분석에 탁월하다. 현대 유니콘스의 야구는 단지 좋은 투수들과 좋은 타자들이 일궈낸 야구가 아니었다. 현대는 2000년 대 후반 SK 못지 않게 세밀한 야구를 했던 팀이었다. 이날 두산은 0-2로 뒤진 2회말 대거 4점을 뽑으며 경기를 뒤집었다. 그러나 3회초 선두타자 박병호가 볼넷을 골라나갔고 강정호가 동점 2점홈런을 터뜨렸다. 이 위원이 설명한다.
수비가 길었다. 4점이나 줬으니까. 강정호 홈런이 어떻게 나오게 됐을까. 그게 다 박병호 덕분이다. 박병호가 초구, 2구를 지켜보고 있었다. 4번타자니까 초구부터 쉬운 승부 안 들어온다. 공 2개를 지켜본 뒤 결국 2-3까지 갔고 좌전안타를 칠 수 있었다. 그 흐름이 좋았던 거다. 오재일이 중견수 뜬 공으로 물러났지만 강정호가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공도 많이 볼 수 있었고 집중할 여지를 줬다. 그래서 강정호가 초구에 홈런을 때렸다.
8회에도 기막힌 타이밍에 분석이 나왔다. 본부석에서 함께 보고 있었는데, 8회초 넥센이 4-4 동점에서 상대 실책과 대타 강병식의 적시타로 2점을 도망갔다. 이어진 1사 1,3루. 서건창이 볼을 잘 골라 볼카운트 1-3가 됐다. 이 위원이 말했다. "서건창이 야구를 잘 하는 것 같다. 타율은 떨어지지만 1회 히트 앤드 런도 정확히 성공시켰다. 지금 타이밍에 기습 푸시 번트를 댈 수 있으면 감독에게 확실하게 어필할 수 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서건창이 푸시 번트를 댔다. 비록 투수 쪽으로 공이 약간 몰렸고, 타구의 힘이 떨어지는 바람에 3루주자 김민우가 홈에서 아웃됐지만, 흐름을 잘 읽었다. 경기가 끝난 뒤 서건창은 "초이스는 좋았는데, 힘에서 조금 밀렸다"고 했다. 이 위원이 어깨를 으쓱 했다.
재능있는 루키 두 명이 그라운드밖에서 새로운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기대 만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