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균의 가을야구

⑬미끄러지다(slide)-2014 KS5차전

야구멘터리 2014. 11. 10. 10:02

잠실 시리즈가 시작됐다. 앞선 구장과 달리 천연 잔디였다. 넥센 외야수 유한준은 “넓어서 많이 뛰어다녀야 하지만, 천연잔디라 충격이 덜해 몸을 날리기는 쉽다”고 했다. 슬라이딩(slide)이 가능한 구장이었다. 유한준의 말대로 ‘명품 외야수비전’이 펼쳐졌다. 2회말 2사 1·2루, 나바로의 타구가 우중간을 향했지만 유한준이 끝까지 따라가 펜스에 부딪히며 잡아냈다. 3회초 유한준의 동국대 선배 박한이는 박헌도의 우중간 타구를 몸을 날리며(slide) 걷어냈다. 3회말 다시 후배가 날았다. 유한준은 1사 1루 최형우의 우선상 타구에 온몸을 던졌고(slide) 역시 걷어냈다. 연이은 명품 수비에 감탄과 박수가 쏟아졌다.

삼성 선발 밴덴헐크는 무시무시한 공을 던졌다. 1회 3타자를 삼진 2개, 2루땅볼로 끝냈다. 결정구 3개는 모두 150㎞넘는 속구가 아닌 슬라이더(slider)였다. 5회까지 내야 안타 1개가 전부였다. 그런데, 넥센 선발 소사가 진짜 ‘헐크’였다. 2차전과는 완전히 다른 ‘두 얼굴의 투수’가 됐다. 포크볼이 방향 바뀐 슬라이더(slider) 처럼 뚝 떨어졌다. 6.1이닝 동안 삼진 7개를 잡았다. 명품 수비가 더해진 팽팽한 투수전이 이어졌다. 

6회초 점수가 났다 안타와 번트, 1사 2루. 서건창의 타구가 1·2간을 향했다. 1루수 채태인이 타구를 향해 걸음을 뗐다가 포기하고 1루로 돌아왔다. 슬라이딩(slide)이 아쉬웠다. 1루로 돌아올 필요가 없었다. 몸을 날렸더라면, 그래서 타구를 막아냈더라면 점수를 주지 않을 수도 있었다. 서건창이 1루 덕아웃을 향해 두 팔을 휘두르고 있었다. 

넥센이 1-0으로 앞선 8회, 조상우의 슬라이더(slider)가 이승엽의 다리에 맞았다. 무사 만루가 됐다. 깊숙한 외야 뜬공 2개면 역전이 되는 상황, 마무리 손승락이 올라왔다. 손승락의 고속 슬라이더(slide)가 춤을 췄다. 박석민을 인필드플라이로 처리했다. 다음 타자 박해민은 슬라이딩(slide) 때 손가락을 다쳤지만 류중일 감독은 밀어부쳤다. 손승락의 고속 슬라이더(slider)를 견뎌내지 못했다. 141㎞짜리 슬라이더를 때려 1루 땅볼로 물러났다. 이흥련 역시 143㎞ 슬라이더에 2루 땅볼로 아웃됐다. 무사 만루를 무실점으로 막았다. 경기가 끝났다고, 많은 이들이 생각하고 있었다.

오래되고, 식상했지만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야구는 끝날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9회말 1사 나바로의 타구를 강정호가 미끄러뜨렸을(slide) 때, 채태인의 방망이가 부러지면서 맞은 타구가 1·2간을 빠졌을 때, 야구의 신은 ‘방심’을 허용하지 않았다. 넥센 배터리는 최형우를 맞아 슬라이더-속구-슬라이더-속구-슬라이더의 뻔한 패턴을 가져갔다. 5구째 144㎞ 슬라이더(slider)는 이날 가장 빨랐지만 노림수까지 이겨낼 수 없었다. 역전이 아닌 동점 방지에 집중한 1루수 박병호는 선상을 비워뒀고, 몸을 날렸지만(slide) 잡아낼 수 없었다. 서건창의 중계플레이 송구는 2바운드가 된 뒤에야 포수 박동원의 미트에 들어갔다. 대주자 김헌곤이 슬라이딩(slide)을 마치는 순간, 역사에 남을 짜릿한 역전승이 완성됐다. 삼성의 우승 가능성이 치솟았고, 넥센의 우승 가능성은 미끄러져(slide)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