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의 준비’
시카고 컵스의 조 매든 감독은 탬파베이 감독 시절 라커룸에 ‘태도가 결과를 만든다(Attitude is a decision)’고 적었다. 결과를 만드는 것은 실력과 운에 앞서 그 결과를 준비하는 태도다.
일본 야구 대표팀의 고쿠보 히로키 감독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스즈키 이치로와의 일화를 소개하며 “경기에 나설 준비를 하기 전에, 그 준비를 한다는 의미인 ‘준비의 준비’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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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KT WIZ 파크 운동장을 관리하는 김상훈 소장(55)은 여름이면 경기 시작 12시간 전에 그라운드에 나선다. 잔디가 쑥쑥 자라는 여름, 1주일에 3번씩 잔디를 깎아야 한다. 잔디의 길이와 이를 깎는 방향은 타구의 속도와 방향에 영향을 미친다.
김 소장은 “잔디가 자라 눕기 전에 관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야 타구는 빠져야 안타지만, 외야 타구가 뒤로 빠지면 장타가 된다. 김 소장은 “외야 잔디는 야수들의 수비 방향을 고려해 깎는다”고 말했다. 현대 유니콘스가 있던 때 인천 도원구장에서 운동장 관리를 시작해 올해로 18년째를 맡는다.
메이저리그에서 ‘그라운드 키퍼’는 팀 경기력에 결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자리다. 코칭스태프 회의에 포함된다. 전설적인 그라운드 키퍼인 에밀 보사드는 클리블랜드에서 일하면서 야수들의 수비능력, 타자들의 타구 스피드, 투수들의 땅볼 성향 등을 계산했다. 1948년 클리블랜드가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을 때 전체적으로 물렁했던 그라운드는 1950년대 중반 팀 컬러가 바뀌면서 다시 딱딱해졌다. 투수 스타일에 따라 그라운드 상태를 매일 바꿀 정도로 노련했다. 우리 팀의 선발투수가 땅볼 유도가 많은 투수라면 그라운드를 무르게 했다가 다음날 상대 선발이 땅볼 투수라면 다시 딱딱하게 만드는 일이 자유자재로 이뤄졌다.
김 소장이 관리하는 구장의 마운드도 투수 스타일에 따라 바뀐다. 문학구장 그라운드 키퍼 시절 SK 투수들이 원하는 대로 마운드의 상태가 바뀌었다. 김 소장은 “딱딱한 마운드를 원하는 투수는 딱딱하게, 조금 무른 마운드를 원하는 투수에게는 무르게 바꿔준다”고 말했다. 마운드에 덧뿌리는 특수 흙에 물의 양을 적절하게 조절하는 노하우 덕분이다. 김 소장은 “그날의 습도, 기온 등도 고려해서 물을 조절해 마운드 딱딱함을 결정한다”고 말했다. 날씨에 따라 마운드가 마르는 시간과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투수는 물론 내야수들과 계속해서 얘기를 나눈다. 투수가 원하는 대로, 내야수가 원하는 대로 그라운드의 상태를 조절한다. 리그 최고 유격수였던 박진만 SK 코치는 “내야 그라운드 상태는 수원 구장이 제일 낫다”고 말했다.
준비를 잘할 수 있도록 하는 준비의 단계다. 마운드와 그라운드의 굳기, 잔디의 길이와 방향 등이 세심하게 고려된다. 김 소장은 “한 경기, 한 경기 그라운드에 이상 없이, 무사히 끝났을 때 가장 보람된다”고 말했다. 결과는 태도에서, 태도는 준비에서 나온다. 그라운드 키퍼는 그 준비의 준비를 돕는다.
모두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는 결정들이 서둘러 이뤄지고 있다. 태도도 문제지만, ‘준비의 준비’는커녕 제대로 검토조차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졌다. ‘준비의 준비’를 위한 비결은 간단하다. 김 소장은 이렇게 말한다. “선수들과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중요하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