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크레이지’
워싱턴 내셔널스와 LA 다저스가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NLDS) 5차전을 벌인 지난 14일. 다저스의 4-3 아슬아슬한 리드가 이어지던 경기 막판, 야구장은 물론 경기를 둘러싼 전체 분위기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중계진은 물론, 트위터가 소란스러워졌다. 4차전 선발이었던, 다저스를 벼랑 끝에서 구한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가 더그아웃을 떠나 불펜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그저 상대팀에 보여주기 위한 시위용이 아니었다. 커쇼는 곧 점퍼를 벗었고, 몸을 풀기 시작했다. 7회부터 등판한 마무리 켈리 잰슨이 9회 1사 뒤 볼넷을 연거푸 내주자 사건이 벌어졌다. 다저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이 마운드에 올랐고, 투수 교체를 알렸다. 선발 커쇼가 마운드에 올라왔다. 말 그대로 ‘미친 짓’이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셋업맨 조 블랜튼을 3회부터 투입한 것 역시 ‘미친 짓’에 가까웠다. 벼랑 끝 승부, 과감한 승부수가 경기 초반부터 쏟아졌다.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훌리오 유리아스는 5회부터 마운드에 올랐다. 부담과 압박이 큰 경기였다. 수비 도중 1루 송구를 하다 발목을 접질린 듯했지만 꿋꿋하게 공을 던졌다. 마무리 잰슨을 7회부터 올린 것 역시 과감과 ‘미친 짓’의 사이 어딘가의 결정이었다.
올 시즌 다저스를 이끌기 시작한 데이브 로버츠 감독 스스로가 ‘미스터 크레이지’였다. 2004년 보스턴 레드삭스와 뉴욕 양키스의 챔피언십시리즈에서 보스턴은 3전 전패를 당한 채 4차전을 맞이했다. 3-4로 지고 있어 탈락이 눈앞에 있던 9회말 선두타자 케빈 밀러가 볼넷을 골랐고, 대주자 데이브 로버츠로 교체됐다. 로버츠는 양키스 마무리 마리아노 리베라의 초구에 과감하게 2루로 뛰었다. 도박이라기보다는 미친 짓에 가까웠다. 무사의 1루 주자가 2루에서 아웃된다면 시리즈가 그대로 끝나는 상황이었다. 1918년 월드시리즈 우승 이후 밤비노의 저주에 묶여 86년째 우승을 하지 못한 보스턴이었다. 하지만 저주를 깬 것은 그 미친 짓 덕분이었다. 로버츠는 2루에서 살았고 뮬러의 안타 때 홈을 밟아 극적인 동점을 만들었다. 보스턴은 12회말 데이비드 오티스의 끝내기 홈런으로 이긴 뒤 남은 7경기를 모두 잡아내 86년 만에 지긋지긋했던 ‘저주’를 끊었다.
2016년 메이저리그 폴 클래식. 미친 짓으로 보일 법한 과감한 선택들이 또 하나의 전설을 만들어가고 있다. ‘마무리 커쇼’라는 미친 결정은 마지막 아웃카운트 2개와 함께 다저스의 챔피언십시리즈 진출을 확정지었다.
다저스와 시카고 컵스가 맞붙은 챔피언십시리즈 역시 ‘미친 짓’들이 만들어내는 기막힌 협주곡이 만들어지는 중이다. 지난 16일 1차전, 8회에만 무려 45분이 걸렸다. 컵스 마무리 아롤디스 채프먼의 조기 투입과 이를 무너뜨린 다저스 4번타자 애드리안 곤살레스의 적시타. 이어진 8회말 데이브 로버츠 감독의 거침없는 만루작전 역시 과감한 승부수였다. 9회가 남은 상황, 컵스 조 매든 감독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마무리 채프먼 대신 대타를 냈는데, 미겔 몬테로는 만루홈런으로 진짜 미스터 크레이지가 됐다.
1차전에서 ‘미친 홈스틸’을 성공시킨 컵스 하비에르 바에스는 17일 2차전에서도 기막한 더블 플레이를 여러 차례 완성시키면서 또 한 명의 미스터 크레이지가 됐다. 하지만 이 경기에서 다저스 선발 커쇼는 7이닝을 2안타 무실점으로 막았다. 다저스 로버츠 감독은 마무리 잰슨을 8회부터 올려 1-0 승리를 지켰다. 그 1점은 곤살레스의 홈런 한 방이었다. 미친 승부수와 이에 호응하는 미친 남자들이 가을의 전설을 무르익게 만들고 있다. 저주를 넘어 신화를 만드는 것은 뻔한 상식이 아니라 팬들을 미치게 만드는 미친 결정과 미친 플레이다. 결과가 나쁘면? 그 역시 신화다. 과감한 결정을 지나치게 비난하면? 점점 더 재미없는 야구를 보게 될 뿐이다.
LA에서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