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아웃 세이브, ‘무리수’의 유혹
2016 메이저리그의 가을은 뭔가 조금 달랐다. 100년 넘게 묵은 저주가 끝났기 때문만은 아니다. 챔피언십시리즈에 오른 팀들은 앞서 20여년과는 다른 전략을 들고 나왔고 어느 정도 성공했다. 강한 주전에 의존하는 대신 엔트리를 최대한 활용했다. 상대 선발에 따라 적극적인 플래툰 전략을 썼다. 엔트리 25명 중 18명이 경기에 나서는 일이 흔했다.
무엇보다 가장 충격적인 변화는 불펜 운영에서 나왔다. 클리블랜드 테리 프랑코나 감독은 보스턴과의 디비전시리즈 1차전, 4-3으로 앞선 5회초 선발 투수를 내리고 셋업맨 앤드류 밀러를 투입했다. 밀러는 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고, 5-4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밀러의 5회 등판은 일종의 ‘신호탄’과도 같았다. 셋업맨 8회, 마무리 9회 등판은 이번 가을, ‘승리 공식’으로서의 자리를 내려놓았다.
셋업맨의 투입을 8회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 프랑코나 감독은 마무리 코디 앨런과 밀러의 순서를 바꿔 기용하기도 했다. ‘중요한 순간’에 ‘가장 강한 투수’가 나선다는 것이 이번 가을 새로운 규칙이 됐다. 밀러는 10번의 포스트시즌 등판 중 5회에 3번, 6회에 2번 나섰다. 2이닝 등판이 6번이나 됐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다저스 마무리 켈리 잰슨 역시 7회부터 등판이 어색하지 않았다. 2이닝은 물론 3이닝도 던졌다. 시카고 컵스 마무리 아롤디스 채프먼 역시 7회 등판이 2번이었다. 이번 가을야구 선발 투수들의 평균 이닝은 5.1이닝 밖에 되지 않았다.
‘멀티 이닝 슈퍼 마무리’의 보유는 가을야구 성공을 위한 필수 아이템이 된 것처럼 보인다. 데니스 에커슬리(오클랜드)가 본격적인 1이닝 마무리 투수가 된 1988년 이후 약 30년 만에 변화 가능성이 나타났다. 3아웃 마무리가 아닌 최소 5아웃 마무리가 보다 효과적일 수 있음이 증명됐다.
구단들은 불펜 구성 및 운영의 변화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 ESPN에 따르면 아메리칸리그 한 구단 관계자는 “그냥 야구 기록 사이트를 보기만 하면 된다. 구스 고사지, 스파키 라일 등 한 시즌 70경기, 120이닝 이상 던진 불펜 에이스 개념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현재 불펜 투수 시장 분위기도 달라졌다. ‘적당한 연봉을 준다면 언제 등판하든 상관없다’는 흐름이 있다”고 말했다. 2016년의 가을이 야구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변곡점이 될 수 있을까.
5아웃 세이브 마무리에 대한 유혹은 강하다. 승리를 향해 가는 쉬운 길처럼 보이기도 한다. 지금의 승리가 나중의 승리보다 더 중요해 보이는 착시현상 때문이기도 하다. 문제는 모든 유혹이 갖고 있는 부작용에 있다. 한 베테랑 투수는 “멀티 이닝 등판이 엄격하게 통제되지 않으면 많은 젊은 불펜 투수들이 FA 자격(6시즌)을 얻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100년 넘은 저주가 끝난, 너무나 인상적이었던 가을야구에 가려져 있는 불편한 진실. 불과 2년 전, 리그 최고의 마무리 투수들이었던 페르난도 로드니, 크레이그 킴브럴, 그레그 홀랜드, 트레버 로젠탈, 휴스턴 스트릿, 조나단 파펠본은 올 시즌 평균 16세이브에 그쳤다. ‘멀티 이닝 슈퍼 마무리’로 보이는 밀러와 채프먼 역시 마지막 등판(7차전)에서는 홈런을 맞으며 무너졌다.
쉬운 길을 향한 유혹에 무너지면 많은 것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 사회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중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이 아니라 내일이고 미래다.
LA에서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