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의 외야수로 ‘권력 이동’
시카고 컵스는 2015년 가을 ‘염소의 저주’ 한풀이 눈앞에서 무너졌다. 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서 하필 그 염소와 이름이 같았던 뉴욕 메츠의 내야수 대니얼 머피에게 연거푸 홈런을 맞으면서 한풀이 시점을 늦춰야 했다.
조금만 더 힘을 키우면 한풀이가 가능할 것 같았다. 그해 겨울 전력보강을 위한 컵스의 선택은 에이스 투수, 거포 타자가 아닌 우익수 제이슨 헤이워드였다. 무려 8년간 1억8400만달러라는 큰돈을 안겼다.
공격력은 그저 그랬다. 리그 최고 유망주로 평가받았지만 데뷔 후 6년간 평균 타율은 2할6푼8리, 시즌 평균홈런 16개, OPS(출루율+장타율)는 0.784에 그쳤다. 나쁘지는 않지만 코너 외야수(우익수)임을 고려하면 아쉬움이 남는 기록이다. 대신 수비력은 리그 최고였다. 2014~2015시즌 연거푸 골드글러브를 수상했다. 컵스는 헤이워드의 수비력을 높이 샀다.
2016시즌 헤이워드의 공격력은 연평균 2300만달러란 연봉이 무색할 정도로 처참함에 가까웠다. 시즌 타율 2할3푼, OPS는 0.631로 주저앉았다. 홈런 숫자도 7개로 떨어졌다. 그럼에도 컵스 조 매든 감독은 헤이워드를 주전 우익수로 계속해서 기용했다. 162경기의 긴 시즌, 열쇠는 공격이 아니라 수비였다. 점점 더 심해지는 메이저리그의 투고타저 흐름 속에서는 한 점을 덜 주는 것이 승리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컵스는 그 수비로 103승을 거둘 수 있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공격력과 달리 수비력에는 슬럼프가 없다. 헤이워드는 리글리 필드 오른쪽 외야를 굳건하게 지켰다. 팬그래프닷컴 기준 우익수 수비력에서 애덤 이튼(시카고 화이트삭스)에 이어 전체 2위에 올랐다. 역사에 남을 2016년 가을야구에서 헤이워드는 타율 1할에 그쳤지만 염소의 저주 한풀이에 한몫을 담당했다. LA 다저스와의 챔피언십시리즈 4차전, 홈송구로 애드리안 곤살레스의 득점을 막은 것은 시리즈 전체의 터닝 포인트였다. 역사적이었던 7차전, 9회말 직후 비 때문에 중단됐을 때 헤이워드는 팀 동료들을 한 데 모아놓고 연설을 했다. 힘을 모은 컵스는 이겼고, 앤서니 리조는 이를 두고 “컵스 야구 역사상 가장 결정적인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2016년 겨울, 메이저리그의 관심 영역이 이동하고 있다. 이제 막 시작된 스토브리그를 처음 달군 것은 대형 외야수들의 이적이었다. 세인트루이스는 컵스에서 FA 자격을 얻은 중견수 덱스터 파울러와 5년간 8250만달러에 계약했다. 워싱턴은 팀내 최고 유망주 투수 3명을 보내면서까지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외야수 애덤 이튼을 트레이드해 왔다. 둘 모두 공격력보다 뛰어난 수비력을 자랑한다.
메이저리그는 최근 미지의 영역이던 ‘수비’에 집중하는 중이다. 야구 기록 분석이 강화되면서 내야 타구에 대한 경향성은 거의 증명됐다. 내야 수비 시프트는 일상이 됐다.
그러나 외야 타구의 경향성은 내야 타구만큼 뚜렷하지 않다. 내야 시프트가 뚫리면 안타지만, 외야 시프트가 뚫리면 장타로 이어진다. 외야 수비에서 시프트보다 선수 개인의 수비 능력이 더욱 중요한 이유다. 내년 시즌 가을을 노리는 팀들이 ‘외야 수비 보강’에 과거보다 큰돈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때 코너 외야수는 수비 대신 ‘한방’만 때리면 되는 자리였다. 변방에 머물며 무시당했던 외야수의 수비력이 이제 전력 보강의 중심 자리로 이동했다.
역사의 진보는 그렇게 변방의 힘이 중심으로 이동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야구가 그랬고, 2016년 12월 한국 사회가 그랬듯.
LA에서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