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시간이야
108년 묵은 저주가 드디어 풀렸다. 시카고 컵스 팬들은 가슴 속 한을 풀었다. 저주의 팀끼리 맞붙으면서 월드시리즈 시청률은 예전의 영광을 되찾았다. 새로운 영웅과 그들을 둘러싼 이야기가 쏟아지면서 야구는 ‘내셔널 패스타임’의 지위를 되찾은 듯했다.
“어쩐지 야구가 좀 지루해진 것 같다”고 말한 2015년 최우수선수(MVP) 브라이스 하퍼(워싱턴)는 머리를 긁적여야만 했다. 역사상 가장 극적이었던 월드시리즈 7차전은 4시간28분이나 걸렸지만 잠시도 눈을 돌릴 수 없을 정도로 숨막혔다.
그런데 최고의 시즌이 끝난 직후, 메이저리그는 다시 ‘시간’과의 싸움을 이어갔다. 로스터 거의 전부를 쏟아붓는 승부의 재미가 어떤 것인지 알았으면서도 시간 줄이기에 들어갔다.
메이저리그 구단주 그룹과 선수노조는 단체협약 갱신 과정에서 논의됐던 로스터 확대를 없던 일로 돌렸다. 당초 엔트리가 26~27명으로 늘어나는 데 양쪽이 거의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구단 입장에서도 나날이 선수들의 몸값이 높아지는 가운데 선수 한 명을 더 쓸 수 있다면 보다 효율적인 경기 운영이 가능하다. 점점 더 비중이 높아지는 불펜 운영에도 숨통이 트인다는 계산이었다. 선수 입장에서 로스터 확대는 마다할 이유가 없다. 당장 메이저리그의 일자리가 늘어나는 일이다. 양쪽의 이해가 맞아 떨어졌지만 결국 로스터 확대는 이번 단체협약에서 배제됐다. 당장이 아닌 더 먼 미래를 위한 결정이었다. ‘문제는 시간’이라는 공감대다.
메이저리그는 2015년부터 강력한 경기 시간 축소 규정을 만들었다. 공수교대 시간의 축소, 타석 이탈 금지 등의 규칙이 만들어졌다. 그 결과 2015시즌 평균 경기 시간은 전년보다 6분 줄어든 2시간56분이었다. 하지만 1년 뒤인 지난해 경기 시간은 되레 8분이 늘어 3시간4분이 됐다. 경고등에 불이 켜졌다.
사실 경기 시간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볼티모어 벅 쇼월터 감독은 예전 ESPN과의 인터뷰에서 “경기 시간 갖고 뭐라고 하는 사람들은 딱 2가지다. 심판들과 언론. 1년에 162경기 다 봐야 하는 사람들이다. 1년에 3~4경기를 보러 오는 가족 팬이 경기 시간 갖고 불평하는 걸 들어본 일이 없다”고 비꼬았다. 선수들 역시 “경기가 9시55분에 끝나면 청소년에게 안전하고 10시5분에 끝나면 위험한가”라고 반문하기 일쑤다.
그럼에도 경기 시간 3시간은 메이저리그의 지속적 발전을 위한 중요한 저항선으로 인정받는다. 야구의 경쟁 상대는 다른 종목이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체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의 상영 시간은 2시간20분(140분) 언저리다. 늘어난 경기 시간의 가장 큰 문제는 젊은 팬들의 유입을 막는다는 데 있다.
ESPN에 따르면 인구 구성상 18~34세 팬들을 흡수 또는 유지하기 위해서는 경기 시간을 적어도 3시간 이내로 유지하는 일이 불가피하다. 1995년 메이저리그 평균 경기 시간은 2시간50분, 1985년에는 2시간39분, 1975년에는 2시간25분이었다.
메이저리그는 결국 로스터 확대를 없던 일로 하면서 산업 전체의 미래를 택했다. 2016년 KBO리그 평균 경기 시간은 3시간21분이었다. 여전히 현장의 많은 이들이 “억지 스피드업은 이기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방해한다”고 주장한다. 내가 이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는 걸 한국 사회 전체가 이번 겨울을 거치면서 깨닫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까, 문제는 시간이다.
LA에서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