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균의 가을야구

[이용균의 가을야구 2020]⑤냉정한, 멋진(cool)-PO4

야구멘터리 2020. 11. 14. 12:40

무라카미 하루키가 소설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은 낮 경기, 1회초 선두타자의 2루타를 본 직후였다. 하루키는 1978년 4월 1일 오후 1시 30분, '맑게 갠 하늘과 이제 막 푸른 빛을 띠기 시작한 새 잔디의 감촉과 배트의 경쾌한 소리를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고 적었다. 야구는 누군가를 위대한 소설가로 만드는 멋진(cool) 종목이다.

2020 플레이오프 4차전은, 지금까지의 가을야구와는 달랐다. 과감했고, 의외였고, 놀라웠으며, 그리고 멋졌다.(cool) 두산과 KT 양쪽 벤치는 차갑고 냉정하게(cool) 움직였다. '설마' 하는 순간 그 '설마'를 그라운드에 현실로 만들었다. 오랫동안 이어진 야구의 문법이 조금씩 뒤틀리고 바뀌는 현장이었다.

1회는 요란했다. 1회초 무사 1,2루 로하스의 타구는 우중간을 향했고 2루주자 조용호의 선택은 지나치게 차가웠다(cool). 가장 안전한 수를 택했고, 지나치게 달아오른 1루주자 황재균과 맞지 않았다. 이미 2루를 돌아 추월 아웃이 위험한 상황에서 유일한 선택지는 늦었지만 홈으로 달리는 것 뿐이었다. 홈에서의 아웃은 불안감이 퍼지는 계기가 됐다.

선발 유희관은 0.1이닝만 던지고 내려갔다. 이날 경기의 냉정한 흐름을 예고하는 장면이었다. 이석우 기자

이 장면 직후 두산 김태형 감독은 냉정(cool)했다. '설마' 했을 때 선발 유희관을 내리고 김민규를 투입했다. 바뀐 투수는 21세 김민규, 볼카운트 2-0로 불리한 상황의 교체. 두산 포수 박세혁은 더 냉정(cool)했다. 베테랑 유한준이 '속구'라고 확신하는 순간, 박세혁은 슬라이더 사인을 냈고 그게 통했다. 직구 타이밍에 나가다 슬라이더를 건드렸고 타구는 2루수 머리 위로 떴다. 강백호마저 삼진으로 물러나면서 1회가 차갑게 식었다.(cool)

1회말도 요란했다. 무사 1루, 정수빈의 번트가 떴지만 KT 선발 배제성이 글러브에 넣지 못했고, 1루 악송구까지 이어지면서 무사 1,3루가 됐다. 1회 득점기회를 날린 뒤 맞은 위기는 흐름을 완전히 넘길 수 있었다. KBO리그 무사 1,2루의 득점확률은 64.6%, 무사 1,3루의 득점확률은 86.0%다. KT는 14%를 현실화시켰다. 페르난데스를 삼진으로 잡은 뒤 김재환을 병살 처리했다. 요란했던 1회가 끝났고, 야구는 2회 이후 차갑게 식었다.(cool)

이번에는 KT 벤치가 냉정하게(cool) 움직였다. 3회 2사 1루, 좌타자 정수빈이 들어서자 안정적으로 던지던 선발 배제성을 내렸다. 무실점으로 호투하던 투수의 '기세' 대신, 계산되고 계획된 마운드 운영을 밀어부쳤다. 흐름과 기세가 아닌 계획과 계산이 중시되는 야구는 지금까지의 가을에 주류가 아니었다. 눈에 보이는 증명된 현상 대신, 계산과 확률의 기대감에 더 큰 점수를 매긴 운영이었다. 좌투수 조현우는 초구 볼 뒤, 1루주자 김재호의 도루를 보고 1루에 공을 던졌다. 흐름은 다시 한 번 끊겼다.

최주환의 빠던은, 쿨 했다. 이석우 기자

KBO리그 가을야구 역사에 오래 남을 운명의 4회가 찾아왔다. 4회말 공격을 앞두고 두산 김태형 감독은 선수들을 한데 모았다. 가을야구에서 좀처럼 나오지 않는 장면이다. 김 감독은 선수들에게 "국내 가장 잘 치는 타자들이다. 좀 더 자부심을 갖고 집중해서 치자"고 말했다. 미팅에도 불구하고 정수빈이 삼진, 페르난데스가 중견수 뜬공으로 물러났다. 4번 김재환 역시 삼진을 당했다, 고 스스로도 생각한 순간, 이날 최고의 '사달'이 났다. KT 포수 장성우가 공을 빠뜨렸고 김재환이 뒤늦게 뛰어 1루에서 살았다. 끝났어야 할 이닝이 길어졌다. 조현우의 초구가 또다시 뒤로 빠졌고, 김재환이 2루까지 갔다. 묘한 흐름 속에서 KT 벤치가 다시 한 번 냉정하게(cool) 움직였다. 1차전 선발 소형준이 마운드에 올랐다. 이 경기를 이겨야 5차전이 가능한 입장에서 이기는 상황에 소형준 카드를 쓸 여유는 없었다. 상대 흐름을 끊고 가는게 우선이었다.

2사 2루, 19세 고졸 신인 소형준은 냉정했다(cool). 1차전에 거의 쓰지 않았던 체인지업을 연거푸 던지며 최주환을 흔들었다. 3-0에서 스트라이크를 잡으러 들어간 공도 또 체인지업이었다. 3-1에서 던진 공은 1차전 결정구였던 커터성 슬라이더였다. 141km가 몸쪽으로 덜 꺾이며 몰렸다. 속구를 노리던 최주환이 이를 놓치지 않았다. 타구는 맞자마자 홈런이었다. 최주환은 천천히 걸음을 뗐고, 소형준은 고개를 숙이는 대신, 냉정하게(cool) 타구를 끝까지 쳐다봤다. 최주환이 쿨하게(cool) 방망이를 툭 던졌다. 김민규의 129km 슬라이더는 2루 뜬공이 됐지만, 소형준의 141km 슬라이더는 홈런이 됐다. 소형준이 101.1이닝 만에 허용한 홈런이었다. 소형준은 금세 냉정함(cool)을 되찾았다. 2.1이닝 동안 실책으로 주자를 내보냈을 뿐, 노히트로 막았다.

두산 벤치는 1회 유희관을 내렸지만 김민규의 눈부신 호투로 KT의 이닝을 지워갈 수 있었다. 5회 선두타자 배정대가 안타를 쳤다. 득점 뒤 실점은 경기 흐름이 다시 뒤집히는 계기가 된다. 배정대가 1루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였고, 견제구가 늘었다. 김민규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하지반 바빕신(babip神)은 KT에게 차가웠다.(cool) 김민혁의 잘 맞은 타구가 2루수 최주환의 정면을 향했다. 1사 1루, 히트 앤드 런 작전이 걸렸고, 우타자 심우준은 1,2간으로 타구를 보냈다. 역시 잘 맞은 타구가, 또다시 2루수 최주환의 정면을 향했다. 앤드런 상황의 병살은 좀처럼 나오기 힘들지만, 이날은 어김없었다.

흐름이 끊겼고, 두산에는 '2점'을 지킬 무기가 있었다. 우승을 위해서는 5차전을 가서는 안된다는, 김태형 감독의 냉정한(cool) 판단이 이어졌다. 1차전 선발 플렉센이 7회부터 올라왔다. 1사 뒤 강백호가 안타를 때렸지만 장성우의 병살타 때 지워졌다. 이후 KT 타선의 출루는 없었다. 9회 2사, 로하스의 타구가 내야 높이 떴을 때 두산의 6년 연속 한국시리즈가 확정됐다.

소형준은 101.1이닝만의 피홈런을 끝까지 쳐다보고 있었다. 이석우 기자

승장 김태형 감독과 패장 이강철 감독이 그라운드에서 포옹을 했다. 그 순간 야구가 멋졌다.(cool) 플렉센이 7회부터 3이닝을 지우는 순간 야구는 멋졌다.(cool) 최주환이 벼락같은 홈런을 때렸을 때 야구는 멋졌다.(cool) 소형준이 그 타구를 쳐다보고, 돌아와 다음 아웃카운트를 잡아나갈 때, 야구는 좀 더 멋졌다.(cool) 김태형 감독은 "좋은 선수들 만나 좋은 기록을 세웠다"고 했고, 이강철 감독은 앞으로 보완할 부분을 묻는 질문에 "잘못한게 있어야 보완을 얘기할 수 있다. 우리 선수들은 잘못한 게 없다. 선수들은 정말 잘했고, 칭찬하고 싶다"고 말했다. 야구가 진짜 멋졌다.(co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