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 보내다

‘굿바이 로이스터’ ‘생큐 로이스터’

야구멘터리 2010. 10. 26. 14:16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는 플레이오프 5차전을 앞둔 10월 14일 오후 로이스터 감독과의 재계약 포기를 공식 발표했다. 물타기라는 여론의 비난이 일었다.
 

프로야구 롯데 로이스터 감독이 준플레이오프 2차전을 앞두고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석우 기자)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제리 로이스터 감독의 계약 기간은 올해까지였다. 포스트 시즌이 시작되기 전 롯데 구단 고위층은 로이스터 감독의 재계약 여부를 묻는 질문에 “포스트 시즌 성적을 본 뒤”라고 답했다. 롯데는 3년 연속 4강에 진출했고, 부산 팬들에게 ‘가을야구’를 선물했지만 3년 연속 거기서 머물렀다.

롯데의 설명은 이랬다. “롯데자이언츠는 2010년 정규시즌 성적(4위)과 준플레이오프에서의 실망스러운 결과를 고려해 이같이 결정했다. 구단은 선수들 개개인의 성향을 보다 면밀히 파악해 2011 시즌 우승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유능한 감독을 선임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반면 팬들은 “그 정도의 성적도 충분하다”며 반발하는 중이다. 한 롯데 팬은 “우승하는 야구가 아니라 즐겁고 재미있는 야구를 원한다”고 적었다. 롯데 팬인 아이디 ‘김대리’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저는 돈으로 처발라서 좋은 선수 데리고 와 번트 대고 쥐어짜며 이뤄낸 건조한 우승보다는 오랫동안 욕해왔던 우리 선수가 원초적으로 치고 달리며 이뤄낸 우승을 원합니다”라고 적었다.

“우승이 아니라 즐거운 야구 원한다”
기업은 발전을 원한다. 롯데도 프로야구단임과 동시에 기업의 모양새를 띠고 있다. 성장하지 못하는 기업의 수장이 바뀌는 것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하지만 한국 야구로서는 더 좋은 기회를 잃었다. 로이스터는 대한민국 야구 다양성의 상징이었다. 모두가 세밀한 플레이를 중시하는 작전 야구, 불펜 중심으로 마운드를 운영하는 야구와 기동력을 강조하는 발 야구를 하고 있을 때, 로이스터 감독은 선발 중심의 야구와 무사 1·2루에서 강공을 원하는 선 굵은 야구를 펼쳤다. 로이스터 감독은 이를 두고 ‘No Fear’ 야구라고 이름 붙였다.

선이 굵은 야구는 그 나름대로 장점을 지녔다. 로이스터 부임 첫 해 롯데 유니폼을 입었던 마해영은 “우리 감독님의 야구는 스스로 야구가 쑥쑥 느는 야구”라고 설명했다. 가르쳐서 잘 하는 게 아니라 직접 투수와 싸우면서 느끼는 야구다. 마해영은 “작전이 많아지면 수동적이 되고 자기 스스로의 능력보다는 감독의 지시에 더 의존하게 된다. 대신 나가서 싸우라고 하면 스스로 투수의 상태를 판단해야 하고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된다”고 했다.

그렇게 야구가 늘었다. 로이스터 부임 초기, 변화구를 못친다던 김주찬은 서재응의 체인지업을 찍어쳐서 중전안타를 만들어냈다. 포수 강민호는 몸쪽으로 완벽하게 떨어진 체인지업을 1루 쪽으로 밀어쳐 2루타를 뽑아냈다. 체인지업을 찍어치고, 몸쪽 공을 밀어치는 것은 지금의 한국야구 스타일에서는 볼 수 없는 ‘자유분방’한 스타일이었다.

야구건 세상사건 다양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발전은 없다. 북한의 3대 세습 체제를 비난하는 것은 세습이 갖고 있는 폐쇄성이 가장 큰 이유다. 로이스터 감독의 ‘다른 야구’는 한국 야구의 폐쇄성을 무너뜨리는 역할을 해 왔다. 다른 야구 속에서 한국 야구는 새로운 길을 찾고 있었다. SK 김성근 감독의 야구가 최근 한국 야구 흐름의 한 축을 담당했다면, 로이스터 감독의 상반되는 야구가 한국 야구의 다른 한 축을 맡았어야 했다. 조금 더 그 야구를 할 수 있었더라면 한국 야구는 한층 더 두꺼운 스펙트럼을 갖고 발전할 가능성이 높았다.

 

10월 5일 오후 서울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5차전 롯데 - 두산 경기에서 패한 후 로이스터 감독이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롯데는 새 감독 선임 요건을 두고 ‘우승할 수 있는 감독’을 원한다고 했다. 우승할 수 있는 감독이란 포스트시즌에서 이기는 감독을 뜻할텐데, 이는 정규시즌에서 더 나은 성적을 전제로 해야 가능하다. 지금껏 정규시즌 4위 팀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까지 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롯데 팬 네티즌 ‘김대리’가 적었듯 ‘번트 대고 쥐어짜내며 이기는 야구’에 익숙한 한국 야구에서 ‘원초적으로 치고 달리는’ 야구는 아직 제대로 설 자리가 없었다. 로이스터 감독의 조금은 클래식한 야구 스타일이 세밀한 야구를 이기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새로운 야구 기다리지 못하는 조급함
하지만 롯데는, 시간은, 한국 야구는 새로운 야구가 뿌리내릴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았다. 실제로 로이스터의 야구는 2010 시즌 준플레이오프에서 두산을 상대로 2승을 먼저 거두고도 내리 3패를 당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마지막 5차전에서는 자신의 스타일을 거두고 선발 송승준을 일찌감치 마운드에서 내리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악수(惡手)’였고 롯데는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했다.

로이스터가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야구 실력을 갖춘 이는 아니다. 다만 우리와 다른 야구관을 갖고, 이를 뚝심있게 밀어붙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감독이었다. 단기전을 치러본 경험도 많지 않다. 특히 한국의 독특한 포스트시즌 시스템인 ‘계단식 토너먼트’는 이번이 처음이다. 롯데는 세 시즌의 기다림이면 충분하다고 판단했겠지만, 한국 야구 전체로 봤을 때 로이스터 스타일의 야구가 좀 더 머무르지 못했다는 사실은 적지 않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한국 야구는 내부적, 외부적으로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채 외부 충격에 견딜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출 기회를 잃었다. 로이스터 감독의 야구는 어쩌면 한국 야구의 예방 주사가 될 수 있었다. 어쩌면 국내 프로야구 선수를 거쳐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할 수 있는 선수는 로이스터 스타일의 야구, 스스로 생각하고 공격적으로 플레이한 경험이 많은 야구 속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다. 단지 로이스터 감독이 메이저리그 출신 감독이어서가 아니라 로이스터 스타일의 야구를 한 선수가 새로운 리그에 적응하기 쉬울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로이스터 감독은 “만약 이날 경기가 롯데 유니폼을 입은 마지막 경기라면 감사드릴 사람이 너무 많다. 롯데 팬들은 물론이고 한국사람들 전체에게 고맙다고 얘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로이스터 감독의 목소리가 조금 떨리고 있었다. 그는 “한국에 있는 3년은 정말 믿을 수 없이 행복한 시간이었다”며 “거의 모든 것을 이뤘다. 딱 하나 못 이룬게 있다면 한국시리즈 우승이다. 만약 다시 롯데 유니폼을 입게 된다면 반드시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로이스터 감독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감사합니다. 모두들”이었다. 그리고 그 말은 정말 마지막 말로 남았다. 롯데 유니폼을 입은 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는 것도 꿈으로만 남았다. 굿바이, 제리 로이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