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 보내다

류현진 ‘해외진출 특례’ 어떨까

야구멘터리 2010. 5. 25. 14:35

ㆍ메이저리그 스카우트 “정상급 투수”… 성공 가능성 충분하지만 ‘자격’ 미달

한화 류현진(23)은 표정에서 흔들림이 없었다. 지난 5월 11일 청주 LG전이었다. 류현진이 이날 8회까지 잡아낸 삼진은 모두 15개. 자신이 세운 개인 통산 최다 탈삼진 기록(14개)은 이미 넘어선 터였다. 남은 아웃카운트는 3개. 이 가운데 2개를 더 잡아내면 프로야구 29년만에 정규이닝(9이닝) 최다 탈삼진 신기록을 세울 수 있었다.

자유계약 신분은 2014시즌 끝나야

류현진(23·한화)이 5월 11일 청주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홈 경기에서 17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정규이닝 최다 탈삼진 신기록을 세웠다. 류현진은 최동원(1983년), 선동열(1992년) 등 4명이 보유하고 있는 정규이닝 최다 삼진 기록(16개)을 넘어섰다. (연합뉴스)

첫 타자 LG 이진영은 초구를 때려 좌익수 뜬공 아웃됐다. 남은 2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잡아야 신기록이다. 두 번째 타자 최동수의 타구가 3루수 앞으로 굴렀다. 땅볼 아웃이라면 신기록은 물거품이다. 데굴데굴 구르던 타구가 3루 베이스를 맞더니 크게 퉁겨 올랐다. 한화 3루수 송광민 뒤로 넘어갔다. 그 순간에 솔직히 기자실에서는 작은 환성이 터졌다. 신기록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점수는 한화의 3-1 리드. 1사 주자 2루. 큰 것 한 방이면 동점이 될 수 있는 위기였지만 현장의 그 누구도 이 경기가 뒤집힐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류현진은 여전히 시속 150㎞짜리 직구를 던지고 있었다. 그리고 류현진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조인성을 삼진으로 돌려세운 뒤 대타로 나온 LG 이병규마저 3구 삼진으로 잡아냈다. 정규이닝(9이닝) 17탈삼진. 신기록의 순간이었다. 종전의 최동원, 선동열, 이대진 등이 기록한 9이닝 16탈삼진의 기록을 갈아치웠다.

류현진도 “기록인 줄 몰랐다”고 말했다. 류현진은 자신의 삼진 수를 세어가며 공을 던지지 않았다. 류현진은 “7회가 끝난 뒤 코치님들이 13개라고 서로 얘기하는 소리를 몰래 들었다. 그래서 ‘아, 2개만 더 잡으면 내 기록(14개)은 깰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만 했다”고 말했다. 17개가 신기록이 될 수 있다는 것은 한화 한대화 감독도 모르고 있었다. 한 감독은 “7회가 끝난 뒤 투구 수가 100개를 채워 교체를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때 교체가 됐다면 신기록은 또 없었다.

이날 류현진의 신기록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던 인물은 또 있었다. 메이저리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스카우트 존 콕스였다. 콕스는 청주구장을 직접 찾아 류현진의 투구 내용을 속속들이 살폈다. 콕스는 “오랫동안 지켜봐 왔지만 점점 더 성장하는 모습이 보인다. 자기 공에 대한 자신감이 훨씬 좋아졌다”고 평가했다.

콕스는 메이저리그 성공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콕스는 “지금 당장이라도 모자람이 없다. 어디에 내놓아도 성공할 수 있는 투수”라고 했다. 특히 류현진의 체인지업은 국내 리그 정상급이 아니라 메이저리그 정상급이다. 콕스는 “우리 팀의 에이스 팀 린스컴과 맞대결을 펼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린스컴은 2008년과 2009년 연속해서 리그 최고 투수에게 주는 사이영상을 따낸 투수다. 리그 적응이라는 문제가 남았지만 류현진의 11일 투구 내용은 충분히 메이저리그급이다.

콕스가 류현진을 본격적으로 눈여겨보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7년 11월 대만에서 열린 2008 베이징 올림픽 아시아 지역 1차예선 때부터다. 당시 콕스는 대만을 직접 찾아 류현진의 투구 내용을 살폈다. 그 자리에서 콕스는 평소 안면이 있던 박찬호로부터 류현진을 소개받기도 했다. 박찬호는 콕스에게 “아주 어리고 성장 가능성이 높은 멋진 투수”라고 류현진을 소개했다. 그때 류현진은 겨우 고졸 2년차 투수였다.

당시 콕스는 “류현진의 대만전 투구가 좋았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계속 지켜보겠다. 앞으로도 좋은 공을 던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후 2시즌이 더 지났고 류현진은 투수로서 더욱 성장했다. 샌프란시스코의 아시아 지역 스카우트인 콕스는 이후 2시즌 동안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류현진의 피칭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그리고 지난 11일 17삼진을 잡아낸 투구는 메이저리그 투수로서도 손색이 없는 내용이었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가 보고 있는 경기여서 더욱 힘을 냈는지도 모른다. 이날 주심을 맡은 우효동 주심은 “칠테면 치라는 식으로 던지는데 공에서 살기를 느꼈다. 멋진 공이었다. 주심을 본 것도 행운”이라고 말했다.

콕스는 뉴욕 양키스의 아시아지역 스카우트였다. 대만에서 뛰던 왕젠민을 양키스에 입단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선수 보는 눈과 함께 선수에 대한 철저한 관리로도 잘 알려져 있다. 팔꿈치가 좋지 않은 왕젠민 때문에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때는 대만 대표팀의 왕젠민 기용까지 유심히 살피기도 했다. 불펜 투구 수조차 제한한다는 얘기까지 들렸을 정도였다.

고교선수 무분별 해외 진출 억제 효과


류현진(23·한화)이 5월 11일 청주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홈 경기에서 정규이닝 최다 탈삼진 신기록을 세운 뒤 한화 포수 신경현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2006년에 입단한 류현진은 이번이 다섯 번째 시즌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의 규약에 따르면 국내 프로구단에 입단한 선수가 해외 진출 자격을 얻는 것은 7시즌을 채운 뒤다. 규약대로라면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에 갈 수 있는 것은 2012시즌이 끝난 뒤다. 그렇다고 자유롭게 구단을 고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선 소속 구단인 한화의 허락이 있어야 하고, 이후 ‘포스팅’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포스팅’은 일종의 입찰 제도다. 류현진이 메이저리그 사무국을 통해 30개 구단에 진출가능선수로 공시되면 류현진에게 관심이 있는 구단은 한화에 지급할 이적료와 류현진의 연봉이 포함된 금액을 제출해야 한다. 최고액을 적어 낸 구단에 우선협상권이 주어진다. 한화는 이를 거부할 권리가 있지만 류현진에게는 어떠한 선택권도 없다. 규약대로라면 콕스가 아무리 관심이 있더라도 샌프란시스코의 금액이 최고가 아니라면 류현진에게 유니폼을 입힐 수 없다.

류현진이 자유롭게 해외 진출을 할 수 있는 것은 9시즌이 지난 뒤다. 부상 없이 매 시즌을 풀타임으로 뛸 수 있다면 2014시즌이 끝난 뒤 자격이 주어진다.
류현진의 나이는 그래도 스무 여덟이다. 메이저리그 투수들이 전성기를 맞는 시기는 20대 중반으로 알려져 있다. 약 25~26세. 가장 빠른 공을 던질 때다. 지금까지 해 온 대로라면 28세 류현진도 늦은 나이는 아니다. 그러나 메이저리그에서도 활약할 수 있을 만한 투수라는 점에서 9년 동안 묶어 놓은 자유계약선수(FA) 제도는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2년 전까지만 해도 류현진은 “해외 진출에 관심이 없다”는 입장이었지만 최근에는 “때가 되면 고민해 보겠다”는 수준으로 바뀌었다. 자신을 향한 해외 구단들의 눈길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음을 본인도 충분히 느끼고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한 투수가 많이 있지만 국내 프로야구를 거친 뒤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한 투수는 없었다. 삼성 선동열 감독은 보스턴과의 계약 직전에 은퇴를 선택했고, 이상훈은 보스턴과 계약했지만 눈에 띄는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일본 프로야구 오릭스를 거쳐 뉴욕 메츠에 입단한 구대성도 부상 때문에 등판 기회가 많지 않았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말대로라면 류현진은 메이저리그에서 충분히 통할 만한 투수다. 실제 성공한다면 국내 리그를 거쳐 성공한 첫 사례가 된다.

류현진의 성공은 해외 구단의 고교 선수 싹쓸이를 막는 명분이 될 수도 있다. 고교 선수들이 미국행을 택하는 이유는 해외에서 실패하더라도 돌아와서 적응한 예가 많기 때문이다. 국내 리그에서 성공한 경우가 많아진다면 고교 선수들의 선택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이를 위해서라면 특별 규정을 통해 류현진, 김광현 등 특급 선수들을 해외에 일찍 내보내는 게 더 효과적인 국내 프로야구 보호 수단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