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 보내다

불혹의 이종범, ‘회춘포’ 펑펑

야구멘터리 2010. 4. 6. 14:41

ㆍ시범경기서 홈런 3개나… 스윙 스피드 높여 타이밍에 초점

지난 3월 21일 잠실구장에서는 LG와 KIA 간의 2010 프로야구 시범경기 마지막 경기가 펼쳐졌다. 두 팀 모두 마지막 점검의 의미를 갖는 자리였다. LG는 경기가 끝난 뒤 구본준 구단주를 비롯해 LG그룹 고위층이 잠실구장 그라운드에서 한데 모여 출정식을 가질 예정이었다. 경기는 4-2, KIA가 앞서 있었다.
 

3월 21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LG와 KIA 간의 시범 경기 9회초 무사 1, 2루 상황에서 KIA 이종범이 3점 홈런을 날리고 있다. (연합뉴스)


시범경기 장타율 무려 1.059
9회초 LG 마운드에는 정재복이 올라왔다. LG의 중간계투에서 제 몫을 해 줘야 하는 투수였다. 상체 위주의 피칭이 문제라는 지적이 있지만 워낙 힘이 뛰어난 투구를 한다. 무사 1·2루의 위기. KIA 조범현 감독은 대타를 내세웠다. 주심에게 다가가 이종범이 타석에 들어설 것임을 알렸다. 날씨가 추운 듯 이종범은 두터운 목토시를 두른 채 타석에 들어섰다. 그리고 볼카운트 1-1. 이종범의 방망이가 매섭게 돌았다. 마치 검객을 연상케 했다.

타구는 맞자마자 좌익수가 포기했을 정도로 쭉쭉 뻗었다. 잠실구장 좌중간 담장을 훌쩍 넘겼다. LG는 홈경기 때 잠실 외야 펜스를 앞으로 당겨 홈런을 늘리지만 당기지 않은 원래의 담장도 훌쩍 넘었다. 비거리는 125로 기록됐다. 이종범은 여유있게 다이아몬드를 돈 뒤 “이종범”을 연호하는 팬들에게 헬멧을 벗어 들어 보였다. 시범경기 3호째 홈런. 4개를 때린 팀 후배 김상현, 롯데의 이대호와 강민호를 제외한다면 시범경기 홈런 부문 4위의 기록이다.

나이는 어느새 40. 많은 선수가 은퇴를 선택했을 나이에 이종범은 변신을 선택했다. 스윙 자세가 바뀌었고, 타구의 거리가 늘었다. 이종범의 2010 프로야구 시범경기 기록은 타율 4할1푼2리(17타수 7안타). 안타 7개 가운데 홈런이 3개, 2루타가 2개였다. 단타는 겨우 2개. 시범경기 장타율이 무려 1.059다.

이종범의 3점홈런이 터진 뒤 KIA의 한 관계자가 농담처럼 던졌다. “LG가 구단주를 모시고 출정식 한다는디 좀 살살 허지. 종범이가 좋긴 워낙 좋아.”
이종범은 “스프링캠프 동안 내가 싸운 것은 투수가 던지는 야구공이 아니라 40이라는 숫자”였다고 말했다. 건국대를 졸업한 뒤 1993년 프로야구에 뛰어들었다. 1997년 해태의 우승을 끝으로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스에 진출했다가 2001시즌 중반에 한국 프로야구로 돌아왔다. 어느새 18번째 시즌을 맡는다. 1970년생 이종범의 나이는 40세가 됐다.

몸쪽 공을 못친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종범은 일본 진출 첫해인 1998년 6월 23일 한신 타이거스의 가와지리 데쓰로의 공에 오른쪽 팔꿈치를 맞았다. 뼈가 부러졌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한 것은 그 공 하나 때문이었다. 몸쪽 공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 잡았다. 일본 투수들은 끈질기게 몸쪽을 공략했다. 이종범은 한국으로 돌아온 뒤 2002시즌에 롯데 김장현으로부터 얼굴을 맞았다. 왼쪽 광대뼈가 함몰됐다. 몸쪽 공은 이종범에게 악마나 같았다. 이종범의 마지막 전성기는 2005 시즌이었다. 타율 3할1푼2리. 이후 3시즌에서 이종범은 규정타석조차 채우지 못했다. 시즌이 끝날 때마다 은퇴설이 돌았다.

이종범이 몸쪽 공에 약하게 된 것은 단지 두 번의 사구 때문만은 아니었다. 힘과 스피드가 눈에 띄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지난 시즌에 이종범이 규정타석을 채울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한 밀어치기 때문이었다. 타석에 들어설 때 노림수에 대한 폭을 넓혔다. 몸쪽 공을 버리는 대신 바깥쪽 공에 대한 적극적인 밀어치기로 대처했다. 지난 시즌에 KIA가 우승할 수 있었던 비결 가운데 하나는 이종범의 팀 배팅이었다.

배트 스피드 높이니 파워 늘어

3월 21일 시범경기에서 이종범이 3점 홈런을 날린 뒤 서재응의 축하를 받고 있다.

2010 시즌을 앞둔 스프링캠프는 이종범에게 있어 변신의 기간이었다. 이종범은 “40이라는 숫자에 짓눌리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고 말했다. 주위 모두가 이제 마흔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서른과 마흔은 그 거리가 무척이나 멀었다. 이종범은 “스무살 차이 나는 젊은 투수들과 마흔의 내가 맞설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끝없이 고민했다”고 회고했다. 이종범은 18시즌 동안 자신을 지켜 온 스윙을 버렸다. 이종범의 스윙은 정평이 나 있었다.

오른쪽 귀 뒤 높은 곳에서 시작한 스윙은 힘차게 반원을 그려 타구를 때린 뒤 이종범의 등 뒤로 배트를 날렸다. 이종범의 손을 떠난 배트는 빙글빙글 돌며 풍차를 만들었다. 그 트레이드 마크인 스윙을 버린 것이다. 타자에게 있어 스윙 자세를 바꾼다는 것은 기업가가 지금까지 해 온 회사를 접고 새 회사를 세우는 것과 같다. 한 자리에서 18년을 영업한 음식점이 수많은 단골을 버리고 이사해 새로 식당을 여는 것과 같다. 이종범은 말한다. “40과 싸워서 이기려면 서른살 방식으로는 안된다. 40의 나를 인정하고 나를 바꿔야 했다.”

이종범은 스윙이 시작하는 지점을 낮췄다. 이제 타석에서 이종범의 두 손은 오른쪽 턱 밑 쯤으로 내려왔다. 귀 뒤 먼 곳에서부터 있는 힘껏 끌어내리는 파워 스윙이 아니라 얼굴 근처에서 짧게 스윙이 돌아 나온다. 힘이 떨어지는 대신 스피드를 높였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그 스피드는 다시 힘으로 바뀌어 타구의 거리를 늘렸다. 이종범 장타율 증강의 비밀이다. 힘 있게 파고드는 몸쪽 공과 승부하기 위해서는 스피드가 필요했고, 그 스피드는 되레 타구의 질을 더욱 낫게 만들었다.

이종범은 “대신 타이밍이 중요하다. 스무살 어린 선수들의 공에 타이밍을 맞추려면 내 스윙이 바뀌어야 했다. 이제 타이밍이 맞기 시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타격은 스피드보다 타이밍이다. 그리고 이 말이 단지 야구에만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인생 역시 타이밍이다. 이종범은 나이 40이 됐을 때 변신의 타이밍을 잡았다.

18시즌을 함께한 자신의 스윙을 버린 이종범은 다른 욕심도 모두 버린 듯 하다. 이종범은 “개인 목표는 없다. 시범경기에서 홈런이 나왔지만 홈런보다는 진루타를 때리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2010 프로야구가 3월 27일 개막했다. KIA는 시리즈 2연패를 노린다. 40세의 나이로 맞는 이종범의 시즌은 벌써부터 많은 야구 팬을 설레게 한다. 잠실구장 3루쪽 관중석을 가득 메운 KIA 팬들은 올해도 어김없이 이종범의 이름을 연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많은 전문가가 이종범의 부활을 점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