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구
삼성 타선은 혹시 매저키스트?
야구멘터리
2011. 11. 29. 16:37
삼성 타선은 볼카운트가 2-3로 몰릴 때까지 잔뜩 기다린 뒤 힘을 낸다. 박한이가 때린 선제 적시타도 볼카운트 2-3에서 나왔다. 삼성 라이온스 제공
삼성은 지난 27일 대만에서 아시아시리즈 예선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상대는 대만 대표팀인 퉁이 라이온스였다. 경기 결과는 잘 알려진대로 6-3 삼성의 승리. 3-3 동점에서 최형우가 결승 2점홈런을 터뜨렸다. 이날 삼성 타선은 홈런 1개 포함 안타 10개를 때렸다.
첫 안타는 2회 박석민의 2루타였다. 타구가 3루 라인을 타며 날아갔다. 볼카운트는 2-3였다. 볼카운트 1-3에서 4구째도 휘두르지 않았다. 4구째만 아니라 앞선 공 3개도 모두 방망이를 내지 않았다. 풀카운트가 돼서야 방망이를 휘둘렀고 이게 2루타가 됐다.
그리고 3회, 박한이의 1타점 적시타가 터졌다. 상대 실책을 묶은 1사 1,3루에서 박한이는 중전 안타를 때렸다. 대만 선발 글린 라이언은 박한이의 타구가 안타로 기록되자 무척 아쉬워하는 표정을 보였다. 코스는 2루 베이스를 넘는 확실한 안타처럼 보였지만 타구가 빠르지 않았다. 대만 유격수의 수비가 아쉬웠다. 국내 유격수 - 이를테면 김상수였다면 공을 잡아 병살 플레이로 연결할 수도 있었던 타구였다. 그런데, 왜 안타가 됐을까. 볼카운트가 2-3였다. 박한이는 볼카운트 0-3가 될때까지 또 쳐다만 보고 있었고, 이후 스트라이크 2개도 구경하면서 풀카운트로 몰고갔다. 그리고 딱 한 번 휘두른 스윙이 적시타가 됐다.
볼카운트가 2-3였기 때문이었다. 대만 유격수는 풀카운트에서 투수가 공을 던지려고 할 때 이미 2루주자 김상수가 스타트를 끊었다. 유격수는 2루주자의 스타트에 무게 중심을 뺏겼다. 타구에 대한 대응이 늦었다. 박한이의 적시타는 또 풀카운트에서 나왔다. 4회 신명철의 내야안타는 2-2에서, 6회 최형우의 안타도 2-2에서 나왔다. 7회 진갑용도 2-2에서 안타를 쳤다. 그리고 3-3 동점이던 8회, 1사에 나온 채태인의 중요한 안타는 또다시 풀카운트였다. 삼성 타자들 2-3 엄청 좋아한다. 그래서, 매저키스트다. 긴장과 똥줄이 함께 어우러진 풀카운트. 그 상황을 즐기는 걸까. 더 이상 도망갈데가 없는 상황으로 자신을 학대시켜야만 '안타'가 나오는 걸까. 채태인의 풀타운트 안타도 앞선 볼 3개와 스트라이크 2개를 모두 쳐다만 봤다. 6구째는 파울이었고 7구째에서 안타가 나왔다.
투수 입장에서 보자면, '독한 것들'이다. 지긋지긋하다. 볼카운트 2-3가 될때까지 휘두르지도 않는다. 지켜보며 기다리는 것 만큼이나 답답하고 짜증나는 일이 없다. 도대체 뭘 기다리는지 보여주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게 삼성의 강점이다.
삼성의 '기다리는', 매저키스트로 느껴질 정도로 지독한 볼카운트 2-3의 공격은 삼성 특유의 지키는 야구와 함께 어우러져 삼성 스타일을 만든다. 1점만 잡으면 이긴다. 우리는 뒤가 강하다. 투수들은 지키고, 삼성은 기다린다. 뒤에 뭔가 감춰놓고 있는 느낌. 여기에 볼카운트 2-3에서 강하다. 여느 팀 같으면 풀카운트에서 맞히는 스타일의 타격을 하는데 삼성 타자들은 볼카운트 2-3에서도 풀스윙이다. 이전 공 5개를 모두 그냥 봐 놓고서는 풀스윙을 한다. 그러니 상대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삼성 타선은 올시즌 볼카운트 2-0에서 0.154(리그 4위), 볼카운트 2-1에서 0.166(리그 7위)로 부진했다. 그러나 볼카운트 2-2에서 0.188(리그 5위)로 조금 높아진 뒤 2-3에서 장타율(0.353)은 리그 1위다.
그래도 무작정 2-3까지 기다리는 것은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볼넷을 얻어낼 수도 있지만 자신이 원하는 공, 코스에 집중하는 쪽이 장타에는 도움이 된다. 류중일 감독이 추구하는 화끈한 공격야구가 되려면 좀 더 방망이가 나와야 하지 않을까. 과거 장타 삼성을 기억하는 팬들이라면 매저키스트 타선 보다는 사디스트 타선이 낫지 않을까. 상대를 무차별 공격하는. 그런 타선.
최형우의 이날 결승홈런은 볼카운트 0-1에서 나왔다. 유리한 카운트에서 코스를 좁히고 기다리는 공을 집중해서 담장을 넘기는 것. 그건 최형우의 스타일, 리그 홈런왕의 스타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