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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고집과 자존심

베이스볼라운지

by 야구멘터리 2012. 4. 2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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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IA 윤석민은 조용히 숨을 골랐다. 17일 목동 넥센전. 이미 13개의 삼진을 쌓았다. 타석에 들어선 김민우는 앞선 3타석에서 모두 삼진을 당했다. 초구는 140㎞. 구속만으로 보면 웬만한 투수의 직구. 그러나 공은 날카롭게 꺾였다. 슬라이더. 헛스윙. 0-1. 윤석민은 다시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들었다. 포수 차일목은 바닥을 고르는 김민우의 발을 조용히 살피고 있었다. 사인을 나누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2구도 똑같은 슬라이더. 김민우는 다시 헛스윙. 구속은 더 빨라졌다. 142㎞.


 투수는 특별한 동물이다. 그라운드에서 가장 높은 곳에 혼자 서 있는다. 롯데의 암울했던 시절, 혼자서 마운드를 지켰던 에이스 손민한은 “마운드는 고독한 자리다”라고 했다. “그 자리에서 유니폼을 벗고 내려오고 싶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고 했다. 윤석민은 마지막 공 1개를 남겨두고 있었다.



 투수는 자존심이다. 롯데의 전 감독이었던 제리 로이스터 보스턴 레드삭스 코치는 이를 가리켜 ‘Make up’ 이라고 했다. 이기겠다는 열망, 각오, 투지. 싸움꾼의 덕목. 3구째는 또다시 ‘슬라이더’. 103개째 공에서 또다시 기어를 바꿔 넣었다. 마지막 공이 가장 빨랐다. 143㎞. 윤석민은 자신의 자존심인 ‘살아있는’ 슬라이더 3개로 14개째 삼진을 잡았다.


 한화 박찬호는 다음 날 등판했다. 18일 청주 LG전. 앞선 등판과 마찬가지로 6회까지 148㎞ 직구를 던지며 무실점으로 막았다. 윤석민에게 삼진이 자신의 존재증명 방식이라면 박찬호는 오래 던질 수 있음으로 존재를 증명한다. 힘이 떨어졌다는 세간의, 타자들의 평가와 직접 몸으로 부딪힌다. 7회 마운드에 올라온 것은 ‘고집’ 아니라 ‘자존심’이다. 첫타자 이진영에게 2루타를, 다음 타자 정성훈에게 홈런을 맞았지만 고개를 떨구지 않았다. 박찬호는 ‘6회 이후 힘이 떨어진 것 같다’는 질문에 “전혀 힘이 떨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타자들이 컷 패스트볼을, 투심 패스트볼을 잘 쳤다”고 했다. 이 또한 자존심이다. 투수의, 싸움꾼의 덕목. 힘이 떨어졌음을 인정하는 순간, 투수로서의 가치도 떨어진다. 도망칠 구석을 먼저 찾는다면 투수로서 자격 실패다. SK에서 은퇴한 이상훈이 갑작스레 은퇴를 결정했을 때 당시 두산 김경문 감독은 말했다. “투수의 심장은 어깨에도 달렸다. 그 심장이 식으면 투수는 끝이다”라고. 


 야구는 자존심이다. 윤석민은 2회 홈런을 허용한 박병호를 상대로 2번째 타석에서, 아까 홈런을 맞은 그 공, 직구를 연거푸 던졌다. 윤석민은 “다시 만났을 때 홈런을 의식하고 피하면 투수로서 좋은 모습이 아니다. 그래서 더 자신있게 직구로 승부했다”고 말했다. 이게 투수다.


 자존심은 호투를 바탕으로 한다. 윤석민과 박찬호 모두 퀄리티 스타트를 했다. 그리고 24일 광주구장에서 ‘자존심’의 맞대결을 펼친다. 그러나 폭투를, 볼넷을, 고의사구(死球)를 남발하면서 마운드를 고집스럽게 지키는 이가 여의도에 몇몇 있다고 한다. LG 심광호는 말한다. “포수는 투수를 위해 존재한다. 자존심을 버리는 게 포수의 자존심이다.” 그게 진짜 자존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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