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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구, 발로 사는 남자

베이스볼라운지

by 야구멘터리 2013. 5. 28.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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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회가 되면 스파이크 끈을 묶는다. 천천히 스트레칭을 시작한다. 프로 데뷔 11년차. 경기의 흐름을 읽는다. 앞으로 나올 상대 투수들을 생각한다. 그의 구종, 볼배합의 패턴을 떠올리기도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 투수의 작은 몸짓들이다. 머리·어깨·팔꿈치의 작은 움직임. 발의 위치. 허리의 각도. 투수의 모든 것들이 머릿속에 쌓인다. 마음속으로 리듬을 센다. 하나, 둘, 셋.


통산 타율은 1할9푼7리다. 투수는 아니지만 스페셜리스트라 불린다. 결정적인 순간 투수의 동작을, 포수의 볼배합을 훔치고 2루를, 3루를 훔친다. 승리를, 팬들의 마음을 훔친다. 삼성 강명구(33)는 발로 사는 남자다.



지난 18일 마산 NC전. 1-2로 뒤진 9회초 2아웃. 경기가 끝난 듯 싶었을 때 최형우가 몸에 맞는 볼로 1루에 나갔다. 강명구가 다시 한 번 스파이크 끈을 묶었다. 장갑을 고쳐 꼈다. 최형우를 대신해 1루에 나섰다. 류중일 감독의 승부수다. 강명구는 지난 시즌 72경기에 나섰지만 10타수에 그쳤다. 강명구가 그라운드에 서는 자리는 타석이 아니라 1루다. 지난해 15개의 도루를 성공했고, 16득점을 올렸다. 3점을 지키는 마무리 투수에게 세이브가 주어지지만 결정적 순간 1점을 만들어내는 강명구의 기록에는 보통의 도루와 보통의 득점 1개만 기록된다. 언제나처럼 헬멧을 깊게 눌러 썼다. 자신의 눈빛을 감추기 위해서다. 먹이를 노리는 뱀처럼 포수와 투수의 작은 동작을 살핀다. 타석의 채태인보다 1루쪽에 먼저 공이 날아온다. 견제구 2개는 기본이다. 상대 벤치도, 투수도, 포수도, 강명구가 뛸 것이라는 걸 너무 잘 안다. 그래도 그 틈을 놓치지 않는 게 ‘발로 사는 남자’의 존재 증명 방식이다.


강명구가 데뷔 후 성공한 도루는 100개다. 그중 경기에 선발로 출전해 기록한 도루는 겨우 4개뿐이다. 나머지 96개의 도루가 모두 교체 출전한 경기에서 나왔다. 누구나 뛸 것이라고 예상하는 상황에서 성공시킨 도루가 그렇게 쌓였다. 도루 실패는 겨우 22개뿐이다. 성공률 82%는 믿기 어려운 기록이다. 현역 최다 도루 이대형의 도루 성공률은 75.4%다.


볼카운트 1-1, 또다시 견제구가 1루를 향했다. 강명구가 재빨리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으로 귀루했다. 다리에 묻은 흙을 툭툭 털었다. 강명구는 “왼쪽 무릎의 리듬이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눈으로 상대를 읽은 뒤 왼 무릎의 반동을 이용해 스프링처럼 튕겨 나가는 게 강명구 도루의 비결이다. 높은 성공률은 세밀한 계산에서 나온다. “1점이 필요할 때 2루 도루는 120% 확신이 들어야, 3루 도루는 200% 확신이 들어야 뛴다”고 했다.


볼카운트 1볼-2스트라이크, 4구째 이민호의 슬라이더가 채태인의 몸쪽 낮게 떨어지는 순간 강명구는 2루에 도착해 있었다. 통산 101개째의 도루는 이어진 박석민의 좌선 2루타 때 극적인 동점으로 완성됐다.


삼성 강명구가 홈에 들어온 뒤 포효하고 있다. (경향DB)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고의 스페셜리스트의 연봉은 프로야구 평균 연봉에 훨씬 못 미치는 6000만원이다. 강명구는 “그래도 제2의 강명구가 되고 싶다는 선수도 있다더라.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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