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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운(Luck)-2015 준PO4

이용균의 가을야구

by 야구멘터리 2015. 10. 14.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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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회 1사만루, 김현수는 7년전 악몽을 떨치고 적시타를 때렸다. 초구부터 거침없던 스윙, 불운을 극복했다.

KBO리그에는 3명의 신이 있(었)다. 양신(양준혁), 종범신(이종범), 민한신(손민한)이다. 그런데, 야구의 가장 무시무시한 신은 따로 있다. 이름하여 바빕신(Babip神). 야구의 운(Luck)을 결정하는 신이다. 

야구는 치고, 던지고, 달리는 기술을 겨루는 종목이지만, 운(Luck)을 무시할 수 없다. 150㎞ 가까운 공을 제구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데다, 그 속도로 날아오는 지름 7㎝ 정도의 야구공을 때리는 일은 그 방향과 떨어지는 지점을 제 맘대로 조절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행위다. Babip(batting average ball in play)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수비와 그리고 ‘운’(Luck)이다. 아무리 잘 맞은 타구라도 파울라인을 아슬아슬하게 벗어나거나 야수 정면을 향한다면 어쩔 수 없다. 그저 운(Luck)이 없다고 할 수밖에.

포스트시즌과 같은 큰 경기 역시 실력만큼이나 운이 필요하다. 감독들이 ‘우주의 기운’을 원하는 것 역시 ‘운’(Luck)의 역할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14일 준PO 4차전, 두산은 기도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경기 초반 전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운(Luck)이 따르지 않았다. 

1회 2사 2루, 김현수의 타구는 중전 적시타가 되기에 충분했지만 투수 양훈이 부랴부랴 쭉 내민 글러브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2-2 동점이던 4회초 무사 1·2루에서는 로메로의 좌선상 2루타성 타구가 라인에 붙어 수비하던 김민성의 글러브에 걸리면서 더블 플레이로 이어졌다.(하마터면 3중살이 나올 뻔 했다) 앞서 2회 좌선상으로 빠지는 2루타를 연속으로 맞았던 넥센이 수비 위치를 옮겨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하필 그리로 타구가 향했다는 점에서 불운에 가까웠다.

불운(Unluck)은 계속됐다. 5회초 무사 1루에서는 정수빈의 잘 맞은 직선 타구가 2루수 서건창의 글러브를 향하는 바람에 병살 플레이가 됐다. 6회 선두타자 민병헌의 타구 역시 원바운드로 양훈의 키를 넘는 안타성 타구였지만 점프한 양훈의 글러브 끝에 맞고 떨어져 투수 땅볼로 이어졌다. 4-9로 따라붙은 7회 1사 1루에서도 역시 정수빈의 중전안타성 타구가 투수 손승락을 맞고 마침 2루수 서건창 앞으로 구르는 바람에 병살타가 됐다. 두산 타자들의 황망한 표정들이 여러차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양의지가 3루에서 두 손을 번쩍 들어올리는 순간, 모든 상황이 바뀌었다.

반면, 넥센은 경기 초반 운(Luck)이 조금 따랐다. 3일 쉬고 등판한 선발 양훈은 비교적 제구가 높이 됐지만 두산 타자들의 적극적인 스윙에 도움을 받았다. 6회가 끝났을 때 양훈의 투구수는 겨우 68개였다. 0-2로 뒤진 2회, 볼넷 2개에 안타없이 1점을 얻었고, 두산 선발 이현호의 1루 견제 실책으로 추가점을 얻었다. 4회 선두타자 유한준의 타구는 방망이 끝에 툭 맞는 ‘바가지 안타’였다. 박동원의 타구는 수비수가 없는 좌중간을 향했고, 2타점 2루타가 됐다. 고종욱의 타구는 묘한 바운드를 일으키며 유격수 김재호의 뒤로 빠져나갔다. 

경기가 잘 풀렸다. 5회 박병호의 홈런은 승리의 신호탄으로 보였다. 박동원은 또다시 2타점 2루타를, 이번에는 우중간 빈공간으로 날렸다. 6회 무사 2루, 넥센 벤치는 한 점을 위해 대타 서동욱을 냈다. 번트를 위한 교체였는데, 번트가 필요없이 폭투로 서건창이 3루로 갔다. 술술 풀렸다.

그러나 야구는 평균으로 수렴하는 종목이다. 운이 있다면, 곧 불운이 따라오기 마련이고, 불운이 지독했다면 곧 운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지독한 불운에 시달렸던 두산에게 운(Luck)은 5차전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7회 2점, 8회 1점을 따라붙은 뒤 9회 대폭발이 일어났다. 잘 맞은 타구가 드디어 야수가 없는 공간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1사 1·3루, 넥센은 마무리 조상우를 올렸지만 두산의 방망이를 견뎌낼 수 없었다.

6-9까지 따라붙은 1사 만루, 4번 김현수가 타석에 들어섰다. 7년전, 2008년 한국시리즈 5차전 2점차로 뒤진 9회 1사 만루에서 초구에 투수 앞 병살타를 때렸던 악몽이 있다. 그때 그 병살타는 단지 불운했을 뿐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7년전 불운을 이제 떨쳤다. 김현수의 타구는 1·2간을 깨끗하게 뚫었다. 사실상의 결정타였다. 시리즈 MVP에 오른 두산 마무리 이현승은 “김현수 적시타 나오는 순간 됐다 싶어 몸을 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두산 마무리 이현승은 상대의 운을 허락하지 않았다. 3경기 모두 지켜내며 시리즈 MVP에 올랐다.

운(Luck)이 영향을 미친 경기였지만 결국 운은 평균을 향했다. 포스트시즌 사상 최대 점수차 역전승(7점)을 일궈낸 두산의 힘은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팀 특유의 ‘뚝심’ 덕분이었다.

그렇다면 넥센은 운이 없었을까. 비교적 잘 던지던 손승락이 8회 2사에서 허리 통증을 느낀 것은 불운이었다. 하지만 손승락-한현희-조상우에만 기댄 운영, 선발 불안이 불펜에 끼친 과부하 등은 운(Luck)의 문제는 아니다. 강한 송구를 위해 교체한 좌익수 문우람은 시리즈 첫 출전이었고, 결정적 실책을 저질렀다. 염경엽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승부를 걸어야 하는 상황이 많았다”고 말했다. 승부를 건다는 것은 어느 정도 운(Luck)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운을, 요행을 바랄 수밖에 없는 야구의 한계는 명백하다.  

PS. 그리고, 굿바이 목동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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