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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참을 수 없는 욕구의 무거움

베이스볼라운지

by 야구멘터리 2010. 4. 12.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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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균기자



2010시즌 프로야구 경기시간이 정말로 줄었다. 한국야구위원회(KBO)에 따르면 지난 시즌 50경기까지 한 경기 평균 소요시간은 3시간19분, 올 시즌 49경기를 치른 12일 현재 3시간15분이다. 4분이 줄었다.







세계 야구 역사상 유례가 없는, 주자가 없을 때 12초 동안 공을 던지지 않으면 공을 던지지 않고도 ‘볼’을 선언하겠다는 규정이 투수들을 각성시켰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장 효과적이었던 것은 역시 ‘클리닝 타임’ 폐지였다. 대개 5분 내외였던 그라운드 정비시간을 없앰으로써 적어도 3분의 단축효과가 생겼다. 정확히 말하자면, 경기시간은 1분 안팎이 줄었다.



그런데 KBO가 그토록 원했던 경기시간의 단축은 많은 야구 관계자의 ‘욕구 희생’ 대가였다.



가뜩이나 달라진 스트라이크 존 적용에 잔뜩 신경이 날카로워진 심판들은 평균 3시간15분 동안 소변을 참고 또 참아야 했다. 원래 참는 데 도가 튼 심판들이지만 생리학적으로 긴장과 요의(尿意)는 비례하기 마련이다. 특히 올 시즌 바뀐 스트라이크 존을 두고 매 경기 투수 혹은 타자, 팬들과 신경전을 벌여야 하는 심판들은 그에 따른 배변 욕구와도 또 싸워야 했다.



그나마 심판들은 낫다. 어쨌든 경기는 심판들이 제자리에 위치해야 재개되기 마련. 개막전이었던 3월27일 두산-KIA전(잠실)에서도 5회가 끝난 뒤 2명이 재빨리 화장실에 다녀왔다.



그러나 심판들은 공식기록원의 화장실행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한 기록원은 “대구구장은 화장실에 가려면 한 층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야 한다. 2분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기록원실은 독립적이지 않아 대부분 전광판 조작직원, 장내 아나운서들의 옆자리가 일반적이다. 요강은 언감생심.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구장마다 2명의 기록원이 배치되지만, 하필 중계화면에 가장 잘 비치는 자리다. 한 기록원은 “중계화면 때문에 자리를 비우면 금방 티가 난다. 화장실 못 간다”며 웃었다.



중계진도 고생이다. 한 방송국 캐스터는 결국 경기가 연장전에 들어서자 급히 화장실을 다녀왔고 그동안 해설위원이 혼자서 중계를 할 수밖에 없었다. MBC 허구연 해설위원은 “특히 광주구장은 중계부스에서 화장실에 가려면 관중석을 지나가야 하는데 통로에 관중이 많으면 제시간에 다녀올 수 없다”고 했다.



야구는 욕망과의 전쟁이다. 투수는 한가운데 던지고 싶은 욕망, 타자는 어떤 공이든 때리고 싶은 욕망과 싸워야 한다. 하지만 2010 한국야구는 생리현상에 대한 욕망과 시간마저 규정으로 제한하고 있다. 경기시간 단축에 집착한 지나친 형식주의 때문이다.



2008시즌 한국시리즈 3차전. 5회가 끝난 뒤 클리닝 타임.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고 있던 SK 최정에게 뒤이어 소변을 보기 위해 화장실을 찾은 SK 김성근 감독이 한마디 했다. “스윙이 너무 크다. 짧게 쳐라.” 최정은 1-1 동점이던 6회초 좌월 2점홈런을 터뜨렸다. 최정은 그 홈런 한 방으로 한국시리즈 MVP에 올랐다. 때로는 한 번 쉬어가는 게 야구를 더욱 짜릿하게 만들 수도 있다. 무조건 ‘빨리빨리’가 능사는 아닌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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