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⑫가을(Fall)-2011 KS3차전

이용균의 가을야구

by 야구멘터리 2011. 10. 28. 11:07

본문

송은범이 3회초 1사 만루 위기를 맞고 얼굴을 찡그리고 있다. 하지만 송은범은 채태인과 최형우를 연달아 삼진으로 잡았다. 송은범은 가을에 가장 강한 투수가 됐다. 문학/이석우기자

가을(Fall)에는 낙엽이 떨어진다(Fall). 바람 때문이다. 고 장명부는 자신이 마지막 자취를 남겼던 방 벽에 “떨어지는 낙엽은 가을바람을 탓하지 않는다”고 적어뒀다. 가을은 바람의 계절, 그리고 야구의 계절이다. 최근 5년간 야구의 계절 ‘가을’을 가장 많이 겪은 팀이 바로 SK다. ‘큰 경기 경험’이다. 삼성의 한 선수는 “쟤네는 맨날 하니까 아무렇지도 않은 가봐요”라고 말했다.


인천 문학구장 1루쪽 더그아웃은 2연패를 당한 팀을 떠올리게 하지 않았다. SK 선수들은 언제나와 비슷했다. 최동수는 취재진에게 2차전에서 오승환을 상대로 뽑은 안타를 설명했다. “하나, 둘, 셋에 치는 게 아니라 ‘하나’에 바로 쳐야 한다”고 했다. 공이 빠르기도 하지만 오승환 특유의 키킹 동작에 리듬이 흐트러지면 안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최동수는 “선수들이 7일만에 ‘집밥’을 먹고 나왔으니 뭔가 다를 것”이라고 했다. SK 선수들은 롯데와의 플레이오프 4차전을 치른 20일 이후 부산·대구를 거친 터였다. 장기 원정이었다. 피로 회복에도 지장이 있었다. SK 선수단은 26일 2차전이 끝난 뒤 대구에서 KTX 막차를 타고 광명역을 통해 인천으로 돌아왔다. 버스 여행의 피로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가을 야구를 오래 해 온 SK의 노하우이기도 했다.

SK 선발 투수는 송은범이었다. 송은범은 KIA와의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6이닝 2실점으로 비교적 호투했다. 롯데와의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는 6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 승리투수가 됐다. 가을이면 더욱 힘이 나는 투수다. 2005년 이후 포스트시즌 11경기에 등판해 방어율이 1.52밖에 되지 않는다. 

경기 중에 상대 타자의 노림수를 읽고 바꾸는 능력이 있다. 삼성 타자들이 초구에 방망이를 내지 않자 4회부터 초구 스트라이크로 패턴을 바꿨다. 

가을은 바람이 부는 계절이다. 박재상의 '바람'은 바람을 타고 홈런이 됐다. 문학/이석우기자

무엇보다 배짱이 대단하다. 3회초 1사만루 위기를 맞았다. 채태인을 상대로 볼 2개가 이어졌다. 볼카운트 0-2, 만루. 절대적으로 스트라이크를 던져야 할 때다. 대부분의 투수들이 가운데로 던진다. 변화구로 스트라이크를 잡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송은범은 바깥쪽 꽉 찬 직구를 던졌다. 스트라이크 존에 아슬아슬하게 걸쳤다. 조금만 빠졌어도 0-3가 되는 상황이었다. 송은범의 배짱이 삼성 쪽으로 넘어가던 흐름을 뒤틀었다. 채태인을 직구로 삼진 잡은 뒤 최형우는 슬라이더 3개만 던져서 또 삼진을 잡았다. 위기를 넘어섰다. 거침없는 배짱, 4번을 향한 슬라이더 3개 삼진. 모두 가을을 잘 아는 투수의 힘이다.


4회 또다시 위기를 맞았다. 무사 1루, 볼카운트 2-3에서 강봉규의 방망이가 나왔다. 1루주자 박석민이 뛰었다. 포수 정상호가 2루에 던져서 아웃. 정상호가 더블 아웃을 확신하는 순간, 1루심 최규순 심판위원의 손이 올라가지 않았다. 강봉규의 하프 스윙이 인정되지 않았다. 2사 주자 없는 상태가 될 뻔 했던 상황이 무사 1·2루가 됐다.

이 위기를 넘긴 것 또한 SK의 가을 야구 경험이었다. 다음 타자 신명철은 초구에 번트를 시도했지만 파울이 됐다. 2구째도 번트를 댈 가능성이 높았다. 송은범-정상호 배터리는 슬라이더를 택했다. 직구처럼 날아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하려던 공이 갑자기 뚝 떨어졌다. 신명철은 번트 동작을 취했다가 공이 떨어지자 배트를 거뒀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2루주자 박석민은 투구가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하는 듯 하자 이미 무게 중심을 옮기며 시동을 반쯤 걸어버렸다. SK 포수 정상호가 지체없이 2루로 송구, 결국 박석민이 3루에서 아웃됐다. 신명철도 이후 맥없이 중견수 뜬 공으로 아웃됐다.

포수 정상호는 박재상의 송구를 끝까지 놓치지 않앗다. 박재상의 송구도 좋았지만 정상호의 포구가 더 좋았다. 문학/이석우기자

아직 끝이 아니었다. 노련한 삼성 진갑용이 좌전 안타를 때렸다. 좌익수 박재상이 달려 나오면서 처리할 수 있는 타구가 아니었다. 박재상은 3루쪽 파울라인으로 옮기면서 공을 잡았다. 왼손으로 던져야 했기 때문에 제대로 된 강한 송구 자세가 나올 수 없었다. 박재상은 시간을 최소화 하며 공을 홈에 뿌렸다. 정상호가 주자의 길목에서 공을 기다리고 있었고, 공을 포구하는 순간 2루주자 강봉규와 정면 충돌했다. 놓치지 않았고, 실점하지 않았다. 정상호는 잠시 쓰러져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SK 팬들이 “정상호, 정상호”를 연호하고 있었다.


정상호의 포구도 좋았지만 박재상의 송구도 ‘가을을 잘 아는 남자’의 송구였다. 자세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송구의 각을 높인 것이 성공했다. 김용달 IPSN 해설위원은 “라인드라이브 송구를 했더라면 투 바운드가 되면서 세이프가 되는 거리였다. 불완전한 자세에서 송구의 각을 높인 것이 오히려 원바운드 송구가 되면서 좋은 결과를 낳았다”고 했다.

가을야구는 상대에 대한 ‘준비’도 필요하지만 그때 그때 상황에 맞는 ‘임기응변’이 더욱 빛나는 경기다. 송은범은 패턴을 바꿨고, 정상호는 신명철의 번트 타이밍에 슬라이더로 승부를 걸었다. 박재상은 불완전한 자세에서 최적의 송구 방식을 택했다. SK는 전체적으로 떨어진 체력을 그런 방식으로 메워가고 있었다.

위기 뒤 찬스라는 말은 이제 식상할 정도. 하지만 가장 야구 정답에 가까운 말이기도 하다. 4회 빛나는 수비를 보여 준 박재상은 4회말 두번째 타자로 나와 좌월 1점홈런을 때렸다. 타구는 마침 문학구장 왼쪽 담장 너머 쪽으로 강하게 부는 ‘가을 바람’을 타고 펜스를 살짝 넘기는 홈런이 됐다. 가을은 바람이 부는 계절이다.

이틀 전 오승환으로부터 안타를 쳤던 최동수는, 집밥을 먹고 힘이 더 났기 때문인지, 5회 좌중월 1점홈런을 터뜨렸다. 줄기차게 커브를 던지던 저마노의 직구 실투 1개를 놓치지 않았다. 노림수를 좁히고 실투를 놓치지 않는 것 또한 ‘가을 야구’가 SK 선수들에게 가르쳐 준 교훈이다.


가을은 낙엽이 떨어지는(Fall) 계절. 2-1로 쫓긴 9회초 2사 1루, 배영섭 타석 때 볼카운트 2-1, 엄정욱의 4구째 포크볼이 엉망진창으로 떨어졌다(Fall). 마운드와 홈플레이트 중간에서 바운드가 됐다. 간신히 정상호가 막았지만 1루주자 김상수가 2루까지 쉽게 갔다. 안타 하나면 동점이 되는 위기다. 타자는 이틀 전 2차전에서 결승타를 쳤던 배영섭이었다. 그리고 5구째, 엄정욱-정상호 배터리의 선택은 ‘또’ 포크볼이었다. 방금 전 패대기 쳐진 그 공을 또 고른 것은 ‘가을야구 단골’들의 배짱, 대승부. 설마 이걸 또라는 생각을 타자가 하고 있을 때 바로 그 공. 그리고 이번에는 포크볼이 정확하게 ‘떨/어/졌/다’(Fall). 배영섭이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다. SK 2-1 삼성. SK 1승2패. MVP 송은범.

두 팀의 4번타자, 박정권과 최형우는 나란히 무안타에 그쳤다. 박정권은 삼진 3개를, 최형우는 삼진 1개와 병살타 1개를 기록했다. 둘 모두 구멍에 빠졌다(Fall), 원래 가을(Fall)은 ‘4번타자에게 괴로운 계절’이다.

PS. 삼성 타선의 지나친 ‘인내’는 2차전 승리를 가져다 주기도 했지만 삼성의 득점력 빈곤의 이유로도 지적된다. 이날 37번의 타석 중 강봉규(3번)를 제외한다면 초구를 휘두른 타석은 6번밖에 없었다. 그 중 2번은 번트 시도였으니 이를 빼면 4번 뿐이다.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