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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수 “강속구 집착 버렸다. 야구가 뭔지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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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구멘터리 2010. 4. 15.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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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19이닝 1실점 방어율 1위… ‘돌아온 에이스’ 삼성 배영수

이용균기자



대구 칠성초교에서 야구를 시작한 소년은 공을 던지는 게 좋았다. “공이 빠르다”는 주변의 칭찬을 먹고 자랐다. “누구보다 빠른 공을 던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19세에 소년은 어린 시절 영웅으로 여겼던 양준혁 등과 똑같은 유니폼을 입었다.



공은 여전히 빨랐다. 시속 152㎞를 쉽게 찍었다. 팬들은 그를 에이스라고 불렀다. “기분이 정말 좋았다”고 했다. 입단 7년째. 2006년 한국시리즈에서 팔이 아픈 줄 알면서도, 잘못될 줄 알면서도, 주사를 맞아가며 150㎞가 넘는 공을 자꾸자꾸 던졌다. 그가 마지막 던진 150㎞가 넘는 직구는 9회 무사 1루에서 한화 포수 심광호를 향해 던진 공이었다. 그 공은 희생번트로 기록됐다.



배영수(29·삼성)의 강속구는 거기서 끝이었다. 그 해 겨울 팔꿈치 수술 뒤 강속구를 잃어버렸다. 충격은 너무나 컸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인정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혼자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고 했다.




 
빠른 공에 투수의 존재 의미를 두었던 배영수가 강속구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야구에 눈을 떴다. 최근 프로야구에서 이닝을 깔끔하게 마무리한 뒤 밝게 웃고 있는 배영수. (삼성구단 제공)




그로부터 4년. 이제 배영수가 가장 빨리 던질 수 있는 공은 시속 137㎞를 넘지 못한다. 그의 말대로 “누구나 다 칠 수 있는 공”이다. 그런데 그 공으로 던진 성적이 만만찮다. 15일 현재 3경기 등판해 2승 무패. 방어율 0.47로 리그 1위다. 19이닝 동안 1점만 내줬다.



강속구를 잃은 대신 야구를 깨달았다. 배영수는 “공이 빨랐던 시절에는 야구가 쉬웠다. 그냥 한가운데에 직구를 던져서 파울로 카운트 잡고, 슬라이더 던지면 방망이가 헛돌았다. 야구가 만만했다”고 했다. 포크볼이 더해지면 무적이었다. 그 공으로 2004년 한국시리즈에서 10이닝 노히트노런을 했다.



배영수는 “그런데 공이 느려졌다. 가운데 던지면 파울이 되지 않고 안타, 홈런이 됐다”고 했다. 고개가 떨어졌다. “쪽팔렸다”고 했다.



수술 뒤 돌아온 2008시즌, 구속은 147~148㎞를 오갔다. “조금만 더 하면 다시 150㎞짜리 공을 던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던 배영수는 욕심을 부렸다. 팔이 아팠지만, 드러내지 않았다. 그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했던 강속구에 대한 집착 때문이었다.



그 팔은 이제 140㎞도 던질 수 없게 됐다. 배영수는 “이제 다 지난 일”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삼성의 과거 에이스들은 같은 길을 걸었다. 김상엽도, 박충식도 부상 때문에 선수 생명을 이어가지 못했다. 2009시즌 1승12패로 무너지자 주변에선 ‘삼성 에이스의 저주’라는 딱지를 붙였다. “한물갔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정말 죽고 싶었다”고 했다.



깨달음은 운명처럼 우연한 기회에 찾아왔다. 배영수는 “스프링캠프 때 주니치와의 연습경기에 등판했다. (선동열)감독님이 그토록 강조하던 낮은 쪽 제구의 중요성을 그 경기에서 깨달았다. 낮게 던질 수 있으면, 맞더라도 연타와 장타를 맞지 않았다. 갑자기 야구가 보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3이닝 동안 무안타 무실점.



비결은 어쩌면 간단했다. 강속구에 대한 집착을 버리니 야구가 보였다. 배영수는 “아프기 전 나는 겁없는 투수였다. 지금은 무서운 게 없는 투수”라고 했다. 겁이 없다는 것은 정말 무서운 게 뭔지 몰랐던 시절을 뜻했다. 그리고 무서운 게 없다는 말은 진짜 무서운 게 뭔지 알기 때문이다.



타자와의 승부에 두려움이 없는 투수는, 그것만으로도 상대하기 가장 어려운 투수가 된다. 배영수는 3경기 동안 70타자를 만나 안타 12개, 볼넷 3개만 내줬다. 이닝당 출루허용률(WHIP)은 0.79로 리그 최고다.



그의 시즌 초반 활약은, 어쩌면 타자들이 ‘과거의 배영수’를 생각하며 타석에 들어섰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배영수도 그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강속구에 대한 집착은 버렸지만 그 꿈마저 버린 것은 아니다. 배영수는 “자세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하체 운동 위주로 구속을 끌어올리기 위한 특별한 훈련을 하고 있다”며 모처럼 웃었다.



배영수는 덧붙였다. “많은 사람들이 30대 중반으로 알고 있는데, 난 이제 겨우 한국나이로 서른이다”라고. 서른에 깨달은 야구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여기에 다시 구속까지 5~7㎞만 늘어난다면, 금상첨화다. 생각만으로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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