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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각성(Awakening)-준PO 3,4차전

이용균의 가을야구

by 야구멘터리 2010. 10. 4.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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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균기자



10월3일 사직구장. 준플레이오프 4차전. 롯데는 1회말 무사 만루의 기회를 맞았다. 타석에 들어설 타자는 이대호였다. 사직구장 관중석에서는 “이대혼데, 이대혼데”라는 노랫가락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팬들은 벌써부터 대구에서 열릴 플레이오프를 머릿 속에 그리고 있을지도 몰랐다. 3일 전 잠실에서 보여줬듯, 이대호의 홈런 한 방이면 승부는 1회 끝날 수도 있었다. 롯데의 정규시즌 승리는 그렇게 초전박살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았다.



두산 선발 임태훈의 구위는 신인왕을 받았던, 2007년의 그것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1차전에서도 썩 좋지 않았다. 직구 구위가 예전같지 않았고, 다양하게 던질 수 있는 변화구의 제구도 마음 먹은 곳에 던질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허리가 아팠다. 병원에서 진통제와 링거를 맞고서야 마운드에 오를 수 있었다.



롯데 팬들의 두근거림은 더욱 커졌다. 머릿 속에서는 이대호가 2차전에 정재훈에게서 뺏었던 홈런의 궤적을 그리고 있었다.



 

롯데 이대호가 1회 무사 만루에서 삼진을 당한 뒤 허탈해 하고 있다. <부산/이석우기자>



임태훈은 초구 직구를 거침없이 바깥쪽으로 꽂았다. 146㎞. 이대호의 방망이가 직구를 따라오지 못했다. 2구째, 또다시 직구가 들어왔다. 146㎞. 이대호가 또 헛스윙을 했다. 올시즌 타격 7관왕을 거둔 이대호가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오는 직구 2개에 연속으로 헛스윙을 하는 장면은 시즌 내내 좀체 보기 힘들었다.



그리고 3구째, 모두의 예상을 빗나간 공이 임태훈의 손을 떠났다. 145㎞ 직구가 이대호의 몸쪽을 파고들었다. 문승훈 주심의 손이 올라갔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3구삼진. 이대호가 헛헛하게 웃으며 물러났다. 다음 타자 홍성흔은 볼카운트 1-0에서 2루 땅볼 병살타를 때렸다.



무사만루 무득점. 롯데의 기세가 꺾였다. 리그 최고 타자 이대호를 상대로 직구 3개로 삼진을 잡아낸, 임태훈의 과감한 승부 덕분이었다.



2연패를 당했던 두산이 3,4차전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승부’에 대한 각성(Awakening) 때문이었다.



두산은 연속해서 ‘강수’를 두며 경기를 풀어나갔다. 1회 무사 1루가 무사 1·2루로 바뀐 것은 포수 양의지의 과감한 승부 때문이었다. 2번 손아섭의 번트 타구를 양의지는 곧장 2루 승부로 가져갔다. 1루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강수’를 던졌다.



그게 바로 최근 3년간 포스트시즌을 치른 두산의 경험에서 나온 선택이다. 두산은 2차전 패배 뒤, 각성했다.



 


롯데 전준우가 7회 1사 1,2루에서 포수 용덕한의 견제구에 걸려 아웃되고 있다. <부산/이석우기자>



지금 경기는 포스트시즌이었다. 큰 경기에는 큰 승부가 필요했다.



두산 김경문 감독은 2차전 마지막 순간, 두고두고 이야기가 될 큰 승부수를 띄웠다. 좀처럼 쉽게 떠올리기 힘든 강수였다. 타격 7관왕 이대호를 앞에 둔 상태에서 고의4구. 잠실 구장의 모두는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결과는, 잘 알려져있다시피 실패였다. 이대호는 마치 골프를 하는 듯한 스윙으로 정재훈의 포크볼을 걷어올려 잠실 구장 왼쪽 담장을 넘겼다. 그때 롯데 팬들은 하늘을 날고 있었다. 롯데 선수들의 마음도 어쩌면 하늘을 날고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그때 김경문 감독이 보여준 ‘승부’는 두산 선수들을 각성시켰다. 지금 하고 있는 경기는 정규시즌 134, 135번째 경기가 아니라 바로 포스트시즌 이라는 것, 두산이 했던 ‘가을 야구’는 이렇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리게 했다. 그때 두산 선수들은 각자 마음 속에서 ‘큰 승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김 감독은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특유의 뚝심 용병술을 펼쳤다. 왼손 투수 이와세를 상대로 한 왼손 타자 김현수의 기용, 4번 타자 이대호에 대한 희생번트 지시 등 기존 상식을 뛰어넘는 과감한 작전을 펼쳤다. 큰 경기에 대한 큰 승부였다.



2가지 효과를 지녔다. 상대의 허를 찌르는 것과 동시에 해당 작전을 수행하는 선수들의 부담감을 줄였다.



상식을 벗어난 작전 지시는 실패했을 때 부담을 모두 감독이 지게 된다. 왼손 투수를 상대로 한 왼손 대타는 실패했을 때 선수에게 돌아갈 책임이 적다. 평소 번트를 잘 대지 않는 이대호를 향한 번트 지시 또한 이를 실패했을 때 결과에 대한 책임이 이대호를 향하지 않는다.

 




롯데 로이스터 감독은 전준우의 아웃때 재빨리 항의를 하기 위해 뛰쳐나갔다. 로이스터 감독은 “선수와 코치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라고 말했다. 감독의 역할 중 하나는 선수와 코치의 부담을 스스로의 책임으로 더는 것이다. <부산/이석우기자>




모든 것은 작전을 지시한 감독 책임이다. 김 감독의 뚝심은 감독의 책임을 극대화 한다는 점에서 ‘강수’다.



준플레이오프 2차전, 조성환을 상대로 고의4구를 지시하는 순간, 책임은 감독에게 돌아갔다. 정재훈은 최선의 포크볼을 던졌지만, 이를 잘 때려넘긴 이대호는 정말 좋은 타자였다.



책임은 감독의 몫이었다. 그리고, 두산 선수들은 그때 ‘각성’한 것으로 보인다. 가을야구는 이렇게 큰 승부들이 이어지는 경기였다.



3차전부터 두산의 야구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1승을 따라붙은 4차전, 두산의 야구는 더욱 강해졌다. 선수들 모두가 ‘강수’를 둘 줄 알게 됐다. 어차피 뒤로 물러설 곳은 없었다. 지면 끝이라는 절박감이 과감한 승부에 대한 주저를 없앴다. 야수들은 망설임없이 앞선 주자를 잡기 위해 송구를 했다. 투수들은 과감하게 스트라이크 존을 공략했고, 외야수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수비 위치를 옮겼다.



그리고 그렇게 과감한 승부들이 결국 승리를 가져왔다. 4회말 2사 1·2루에서 조성환의 타구는 중전안타로 연결될 듯 했으나 2루수 오재원의 슬라이딩 캐치에 걸렸다. 오재원은 공을 잡은 즉시 글러브 낀 손으로 그대로 2루 베이스 위의 유격수 손시헌에게 송구했고, 1루주자 김주찬을 2루에서 잡아낼 수 있었다. 만약 송구가 빠졌다면 2루주자 황재균이 홈을 밟을 수 있었지만 과감한 승부에 이은 아웃카운트와 공수교대는 이어진 5회초 1점을 도망갈 기회를 만들었다.



 


김현수의 예상치 못했던 기습번트는 준플레이오프 4차전의 승부를 두산으로 가져왔다. <부산/이석우기자>




6회말 무사 1·2루 카림 가르시아의 중전 안타 때도 마찬가지였다. 가르시아의 장타에 대비해 깊숙한 수비를 하고 있었던 중견수 이종욱은 가르시아의 안타 타구 때 재빨리 뛰어들어오며 과감한 홈승부를 가져갔다. 2-0으로 앞선 상황이어서 주자들의 추가 진루를 막는 플레이를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주저없이 홈 승부를 택했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1루주자 홍성흔은 미처 3루로 뛰지 못했고, 2루주자 이대호는 홈에서 잡아냈다. 포수 용덕한은 120㎏이 넘는 주자 이대호를 두려워하지 않은 채 자신의 왼발로 홈플레이트를 막아섰다. 과감한 승부였다.



7회말 1사 1·2루에서 1루주자 전준우를 잡아낸 장면도 ‘큰 승부’였다. 2루에 주자가 있는 상태에서 1루수는 베이스를 비운 채 수비에 집중하기 마련. 1루수의 리드 폭은 평소보다 넓은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1루수 오재원과 포수 용덕한은 큰 승부를 택했다. 오재원이 포수 용덕한에게 견제 사인을 냈고 오재원은 재빨리 1루 베이스 커버를 들어왔다. 전준우는 재빨리 귀루했지만 오재원의 다리에 전준우의 어깨가 걸리며 미처 베이스를 태그하지 못했다. 흐름이 뚝 끊겼다.



두산의 가장 큰 승부는 9회초에 나왔다. 이종욱의 2루타와 오재원의 몸에 맞은 공으로 만든 무사 1·2루에서 김경문 감독은 3번 김현수에게 희생번트를 지시했다. 김현수는 올시즌 희생번트가 1개도 없던 타자였다. 감독이 책임지는 의외의 작전은 김현수의 부담감을 줄였다. 앞선 타자 오재원은 번트를 잘, 자주 대는 타자였음에도 번트를 2번이나 실패했지만 김현수는 초구에 번트를 성공시켰다. 롯데는 허를 찔렸고, 두산은 승기를 잡았다.



 


정수빈은 볼카운트 0-3에서 풀스윙을 택했다. 정수빈은 홈런을 때리기 전 지난해 PO에서 저지른 자신의 실수를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부산/이석우기자>




정수빈의 3점홈런 또한 큰 승부. 볼카운트 0-3에서 외야 플라이가 일반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몸쪽 공에 대해 풀스윙을 했다. 타구는 오른쪽 외야 폴 안쪽으로 쏙 들어갔고, 그 홈런 하나로 사실상 승부는 끝났다.



두산의 변화는 “가을야구는 큰 승부가 좌우한다”는 각성(Awakening)에서 나왔다. 그리고 그 각성을 일으킨 것은 두산 김경문 감독이 조성환을 거르고 이대호와 승부를 택한 ‘큰 승부’에서 비롯됐다.



PS. 올시즌 SK에 합류한 세리자와 배터리 코치는 SK 포수들에게 특별한 훈련을 시켰다. 한국시리즈 7차전 동점 혹은 1점 리드를 상정한 가상 훈련. 이때 투수의 원바운드 볼이 들어오고 상대 1루주자가 스타트를 끊었다면 포수의 자세는 어때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었다. 3루 추가 진루를 막기 위해 온 몸을 구부려 블로킹 자세를 취하는 게 일반적인 대답. 하지만 세리자와 코치는 SK 포수들에게 몸을 옆으로 빼며 백핸드로 원바운드 캐치를 할 것을 주문하며 훈련을 시켰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과감한 큰 승부를 해야 한다”는 게 세리자와 코치의 설명이다. 세리자와 코치는 “어차피 그 상황에서는 2루를 보내나 3루를 보내나 큰 차이가 없다. 대신 그 공을 잡아 주자를 2루에서 아웃시킨다면 상대의 기를 꺾는 더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가을야구는 말한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과감한 승부가 더 큰 결과를 가져다 준다고.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 끝까지 ‘두려움 없는 야구(No fear)’를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시리즈는 이제 마지막 승부를 남겨뒀다. 누가 더 과감한 승부를 하느냐에 달렸다.



롯데는 원래 그런 승부를 해왔고(하지만 3,4차전에서 그러지 못했고), 두산은 각성을 통해 옛 기억을 되찾아 제 것으로 만들었다. 어쩌면 지금까지 야구팬들의 가을야구 기억을 모두 잊게 만들만한 ‘화끈한 경기’가 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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