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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경험(experience)-준PO5차전

이용균의 가을야구

by 야구멘터리 2010. 10. 8.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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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균기자




모든 것은 번트 하나로부터 비롯됐다. 0-0이던 2회말 두산 공격. 선두타자 이원석은 송승준의 공 3개에 헛스윙 삼진을 당했다. 다음 타자는 7번 임재철이었다. 임재철의 시리즈 타율은 3할5푼7리였다. 두산 타자들 중 타격감이 꽤 좋은 축에 속했다. 송승준은 임재철과 까다로운 승부를 해야 했다. 야수들은 혹시 모를 장타에 대비해야 했다. 밀어치는 데 능한 타자였다.








그러나 임재철은 초구에 기습번트를 댔다. 송승준은 약간 허둥댈 수 밖에 없었다. 번트 수비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던 터였다. 임재철은 1루에서 세이프 됐다. 야구장의 흐름이 묘하게 바뀌었다. 이날 경기는 준플레이오프의 마지막 승부였다. 주고받는 형태의 ‘턴 방식’으로 치러지는 야구라는 경기에서, 특히 물러설 데가 없는 마지막 싸움에서 승부 흐름의 ‘선수’를 쥔다는 것은 절대적인 필요성을 갖고 있었다. 선취점은 그래서 더 중요했다.


임재철은 자신의 발로 그 흐름을 일궈냈다. 결과적으로 최고의 선택이었다. 롯데 내야진은 더욱 긴장하고 있었다. 3루수 이대호의 수비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었다. 1루수 김주찬의 수비도 앞뒤 방향의 움직임이 뛰어나다고 볼 수 없었다. 투수 송승준의 번트 수비 능력도 빼어나지 않았다. 게다가 잠실의 그라운드 상태는 말랑말랑했다. 번트 타구가 예상보다 천천히 굴러 내야진을 흔들 가능성이 높았다.



두산은 발야구에 능한 팀이었다. 몇몇 선수들은 요주의 대상이었다. 만약 이종욱이 기습번트를 댔다면 오히려 롯데 내야진의 적극적인 승부에 당했을지 몰랐다. 하지만 임재철이라면 달랐다. 롯데의 경계가 느슨해졌고,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1사 이후라 하더라도 발빠른 1루주자의 존재는 신경이 쓰인다. 손시헌의 좌중간 안타가 이어졌고, 이번 시리즈에서 신데렐라가 된 포수 용덕한은 자신의 시리즈 MVP 수상을 굳히는 2타점짜리 좌중간 2루타를 터뜨렸다. 경기 초반이었지만 2타점은 승부를 갈랐다. 이날 경기는 마지막 승부였다. 결국 두산은 롯데를 11-4로 대파하고 ‘리버스 스윕’을 완성시켰다. 5전3선승제로 치러진 역대 포스트시즌에서 2패 뒤 3연승을 이어붙인 것은 이번이 3번째였다.



2-0은 작은 점수가 아니었다. ‘기다림’과 ‘버팀’의 대가였던 제리 로이스터 감독도 승부의 호흡을 빠르게 가져갈 수 밖에 없었다. 송승준은 3회 선두타자 김현수를 볼넷으로 내보낸 뒤 최준석에게 또다시 파울 뒤 볼 2개를 이어붙였다. 로이스터 감독은 평소와 달리 송승준을 일찍 끌어내렸다. 선발 투수 송승준은 2이닝 밖에 경기를 버텨주지 못했다.



뒤를 이은 이정훈은 “더 이상 실점하면 안된다”는 부담이 너무 컸다. 연속안타를 얻어맞았고, 롯데의 플레이오프 가능성은 0에 가까운 수준으로 떨어졌다. 3회초가 끝났을 때 2-1이었던 점수는 3회말이 끝났을 때 점수는 7-1이 돼 있었다.



선취점의 싸움은 번트 하나에서 갈렸다. 두산 임재철은 이번 준플레이오프 5차전이 35번째 치르는 포스트시즌 경기였다. 두산 전체 야수 중 김동주(71경기) 다음으로 가장 많은 경기를 치른 선수였다. 그리고 두산이 역대 3번째 ‘리버스 스윕’을 달성할 수 있었던 비결은 이와 같은 ‘경험(Experience)’ 덕분이었다.



두산은 김경문 감독이 부임한 2005년 이후 6시즌 동안 1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2005년 한국시리즈를 치렀던 주축 선수들 대부분이 여전히 팀의 중심을 맡아 이끌고 있는 팀이다. 큰 경기 경험이 지나칠 만큼 충분했다. 두산이 롯데와의 준플레이오프에서 앞 2경기를 패한 것은 “지나치게 익숙한 경기”였기 때문일지 모른다.



2승2패로 맞붙은 준플레이오프 5차전, 경기의 주도권싸움이 그 어느때보다 중요했던 경기에서 두산 선수들의 경험은 빛났다. 흐름을 빼앗아 오는 방법을 알고 있는 선수들은 보다 창의적인 플레이를 할 수 있었다. 임재철의 기습번트는 경기의 흐름을 가져오는 ‘뇌관’ 역할을 했다.



두산 선수들이 갖고 있는 경험은 단순히 경기를 치름으로써 얻는 것과는 또 달랐다. 두산 김경문 감독은 준플레이오프 5차전이 끝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김 감독은 “우리가 그동안 포스트시즌에서 많이 졌잖아요”라는 말로 리버스 스윕의 비결을 얘기했다. 김 감독 부임이후 두산이 패한 팀은 딱 2팀이었다. 2005년 삼성과, 2007~2009의 SK였다.



특히 SK와의 치열한 승부는 두산 야구를 업그레이드 시켰다. 두산 특유의 뚝심 야구에 SK 김성근 감독 스타일의 치밀한 야구가 결합되는 모습이다. 김경문 감독은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과감한 타순 조정과 ‘벌떼’에 가까운 불펜 운영을 선보이며 롯데를 상대로 ‘리버스 스윕’을 선보였다. 3·4차전에서 보여준 김 감독 특유의 과감한 승부수는 오히려 SK 야구에서는 보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선수는 경험을 먹고 자란다. 물론 승리한 경기의 경험은 기분 좋은 일이고 성취동기가 되기도 하지만, 패배한 경기 경험은 선수를, 야구를 한층 업그레이드 시킨다. 패한 경기로부터 얻는 것은 승리한 경기로부터 얻는 것보다 훨씬 많다. 승리 경험은 “이렇게 하면 된다”를 생각하게 하지만, 패배 경험은 “이렇게 하면 안되니 다른 어떤 것을 해야 할까”를 고민하게 만든다. 그리고 고민은 창조의 원동력이다.


PS.

롯데는 3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초대장을 받지 못했다. 3시즌 연속, 상대의 연승을 한번도 끊지 못한 채 당했다. 선수들도 팬들도 가슴아픈 결과지만 롯데 야구는 분명히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로이스터 감독은 이번 시리즈에서 예년과 달리 잦은 작전을 선보였고, 평소보다 빠른 투수교체를 보이기도 했다. 작전은 때로는 성공했고, 때로는 실패했지만 롯데 야구는 이같은 실험을 통해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중임은 분명하다. 두산 야구가 확실히 달라진 것은 SK에게 당한 3번의 패배 다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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