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의 기세(spirit)가 14년만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만들었다.
단기전은 흐름의 싸움이다. 흔히들 말하는 ‘미친 선수’가 필요하다는 것은 그만큼 기세(spirit)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두산은 기세(spirit)를 타고 있었다. 흐름이 꺾일 때마다 니퍼트가 기세(spirit)를 다시 살렸다. NC와의 PO4차전이 그랬고, 삼성과의 KS 2차전이 또 그랬다. 두산의 기세(spirit)가 가장 활활 타올랐던 건, 넥센과의 4차전이었다. 6회까지 2-9로 뒤졌던 경기를 뒤집었다. 4점 뒤져 시작했던 9회초 공격이 끝났을 때 되려 11-9로 역전을 시켰다. 그때 두산은 역발산기개세의 흐름이었다. 아, 우리는 이런 경기도 뒤집을 수 있구나. 기세(spirit)가 대단했다.
그렇게 맞은 한국시리즈. 그래서 1차전을 조금은 당황스럽게 역전패한 뒤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니퍼트가 7이닝을 무실점으로 흐름을 바꾼 덕분도 있지만, 팀 전체가 역전패에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보란듯이 기세(spirit)를 이어갔고, 연승을 쌓았다. 시월의 마지막날, 두산은 14년만의 우승에 1승만 남겨두고 있었다. 2년전 두산은 3승1패를 거두고도 내리 3경기를 내주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바로 그때 상대도 삼성이었다.
그때의 기세(spirit)와 지금의 기세(spirit)가 달랐다. 긴가민가했던 선발진은 가을에 ‘무적’으로 변신했다. 타선에서 베테랑과 젊은 피의 기세(spirit)가 잘 어우러졌다. 양의지는 발가락 끝이 부러졌지만 투혼(fighting spirit)을 불태웠다. 정수빈은 손가락이 찢어져 6바늘을 꿰맸지만 붕대를 맨 채, 장갑을 찢고 배트를 들어 투혼(fighting spirit)을 보였다.
두산은 이번 시리즈를 통해 90년생 야수들이 팀의 주축으로 성장하는 효과도 얻었다. 시리즈 MVP 정수빈이 7회 때린 홈런은 결정적이었다.
5차전 선발 유희관의 1회 최고구속은 129㎞였다. 가뜩이나 느린 공이 더 느렸지만 홈플레이트를 밀고 들어오는 기세(spirit)가 달랐다. 3일 쉬고 나온 장원삼은 제 페이스를 가져가지 못했다. 2사 뒤 중심타선에서 연속 안타를 맞았다. 2사 1·2루, 양의지와 벌인 8구 승부. 결정구는 삼성 배터리가 즐겨 쓰는 ‘하이볼’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헛스윙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138㎞ 직구 공 끝이 평소같지 않았다. 양의지는 가볍게 받아쳐 좌중간을 갈랐다. 구속의 문제가 아니라 기세(spirit)의 문제였을지 모른다. 1회 나온 2점은 두산의 기세(spirit)를 더욱 타오르게 만들었다.
삼성 타선의 계속 뜬공으로 물러나는 가운데 3회말 승부가 갈렸다. 박건우와 고영민이 적시타를 때렸다. 젊은 피와 베테랑이 나란히 때린 적시타는 두산의 힘이었다. 팀의 마음(spirit)이 하나로 모여 있었다. 삼성은 일찌감치 투수를 교체하며 승부수를 띄웠지만 두산의 기세(spirit)가 더 대단했다. 7회 정수빈의 3점홈런은, 두산 우승의 예고를 넘어, 확신을 하게 하는 한 방 이었다. 앞서 7회초, 두산 니퍼트는 무사 1·3루에 올라 3루주자만 불러들인 채 이닝을 막았다. 배영섭의 직선타는 아쉬웠고, 나바로의 삼진은 니퍼트-양의지 배터리의 승리였다. 하이볼 대신, 원바운드 슬라이더를 택했다. 점수차가 가져다 준 여유이기도 했다.
이번 가을 혼(spirit)을 담은 투구를 보여준 이현승이 9회 1사 1루 마운드에 올랐다. 배영섭을 상대로 슬라이더가 꽂혔고, 양의지가 마운드를 향해 뛰어 올라왔다. 2001년 이후, 14년만에, 두산이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부임 첫 해, 우승을 한 김태형 감독은 “말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팀의 기세(spirit)를 잘 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NC와의 PO 5차전, 0-2로 뒤졌을 때 김 감독이 직접 선수들의 분위기를 띄웠고, 그 기세(spirit)로 역전에 성공했다. MVP는 투혼(fighting spirit)을 보여줬던 정수빈에게 돌아갔다. 만년 가을의 조연에만 머무를뻔 했던 김현수는 이번 KS 4할2푼1리를 기록했다. 김현수는 “매번 상대팀 세리머니 보기만 했는데, 직접 우승 세리머니 할 수 있어서 너무 기쁘다”고 했다.
삼성 선수들은 끝까지 남아 두산의 우승 시상식을 함께 했다. 패자의 품격, 진짜 스포츠 정신(spirit)이었다. _ 삼성 라이온즈 제공
삼성은 시리즈 직전 터진 ‘도박 파문’이 전력 약화 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기세(spirit)를 흩어 놓았다. 류중일 감독은 “프로로서 2등은 비참하다. 선수 때 많이 겪어서 그렇다. 1등이 돼야 하는데 2등은 비참하다”고 말했지만, 삼성은 충분히 훌륭한 시즌을 치렀다. 그리고 이어진 시상식, 두산 선수들이 상을 받는 동안 삼성 선수들이 더그아웃 앞에 서서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2등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태도(spirit) , 진짜 스포츠 정신(spirit)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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