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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창용의 도전’ 대박 마무리

    2010.11.09 by 야구멘터리

  • ‘굿바이 로이스터’ ‘생큐 로이스터’

    2010.10.26 by 야구멘터리

  • ‘마침내 1인자’ 양신, 전설이 되다

    2010.10.05 by 야구멘터리

  • 박태환, 리듬감 훈련 ‘마의 400m 지존’

    2010.09.07 by 야구멘터리

  • 뉴욕은 한국선수에겐 ‘악연의 땅’

    2010.08.17 by 야구멘터리

  • ‘파란 피’ 양준혁, ‘혼’을 남기다

    2010.08.10 by 야구멘터리

  • 이대호 ‘어게인, 트리플크라운’

    2010.07.27 by 야구멘터리

  • 이정수의 수비수 전향 ‘전화위복’

    2010.07.06 by 야구멘터리

‘임창용의 도전’ 대박 마무리

ㆍ일본진출 성공신화, 3년간 166억원 제시 받아 2002년 크리스마스 밤이었다. 그해 삼성은 창단 이후 21시즌 만에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이승엽의 동점 3점 홈런과 마해영의 끝내기 홈런이 터졌다. 그때 임창용은 삼성 마운드의 핵심이었다. 시즌 내내 선발투수로 뛰었지만 6차전에서도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불펜에서 몸을 풀고 있었다. 임창용의 별명은 언제든지 등판할 수 있다고 해서 ‘애니콜’이었다. 140㎞ 후반의 꿈틀거리는 직구를 쉽게도 던졌다. 크리스마스 밤이었다. 인천공항은 싸늘하다 못해 스산했다. 모두들 흥청거리는 밤을 지새던 그 날 새벽 3시 30분. 임창용은 인천공항을 통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표정이 상기돼 있었다. 푸에르토리코 리그를 경험하고 돌아온 터였다. 몸을 만들겠다는..

잡지에 보내다 2010. 11. 9. 14:15

‘굿바이 로이스터’ ‘생큐 로이스터’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는 플레이오프 5차전을 앞둔 10월 14일 오후 로이스터 감독과의 재계약 포기를 공식 발표했다. 물타기라는 여론의 비난이 일었다.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제리 로이스터 감독의 계약 기간은 올해까지였다. 포스트 시즌이 시작되기 전 롯데 구단 고위층은 로이스터 감독의 재계약 여부를 묻는 질문에 “포스트 시즌 성적을 본 뒤”라고 답했다. 롯데는 3년 연속 4강에 진출했고, 부산 팬들에게 ‘가을야구’를 선물했지만 3년 연속 거기서 머물렀다. 롯데의 설명은 이랬다. “롯데자이언츠는 2010년 정규시즌 성적(4위)과 준플레이오프에서의 실망스러운 결과를 고려해 이같이 결정했다. 구단은 선수들 개개인의 성향을 보다 면밀히 파악해 2011 시즌 우승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유능한 감독을 선임하..

잡지에 보내다 2010. 10. 26. 14:16

‘마침내 1인자’ 양신, 전설이 되다

ㆍ프로야구 사상 최고 은퇴식 치른 ‘만년 2인자’ 양준혁 2010년 9월 19일 양준혁(41·삼성)이 그라운드를 떠났다. 우리 나이로 마흔둘. 마지막 타석은 언제나 그가 꿈꾸던 대로 ‘전력질주’였다. 9회말 선두타자. SK 마무리 투수 송은범을 상대로 2루 땅볼을 때렸고, 1루까지 온 힘을 다해 뛰었다. 양준혁은 1루를 지난 뒤에도 한동안 오른쪽 외야를 향해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대구구장을 가득 메운 1만명 팬들에게, 그날 TV를 통해 양준혁의 은퇴 경기를 지켜본 더 많은 그의 팬들에게 양준혁의 마지막 경기 모습은 ‘전력질주’만 남았다. 은퇴식은 화려했다. 삼성 선동열 감독과 SK 이만수 수석코치는 모두 양준혁의 은퇴식을 부러워했다. 선 감독은 “이렇게 화려한 은퇴 경기는 아마 프로야구에서 처음일 것..

잡지에 보내다 2010. 10. 5. 14:18

박태환, 리듬감 훈련 ‘마의 400m 지존’

ㆍ2010 팬퍼시픽 자유형 우승 비결 ‘훈련통해 재미·목표 찾아’ 일본 소설가 오쿠다 히데오는 자신의 스포츠 수필집 에서 육상 800m 선수의 괴로움을 얘기했다. 육상 800m는 육상 트랙 종목 중 가장 힘들고 괴로운 종목이다. 100m, 200m, 400m처럼 단거리에 포함되지 않으면서 5000m, 1만m처럼 페이스를 조절해가며 뛰는 장거리 종목에 포함되지도 않는다. 무조건 빨리 뛸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한 바퀴를 뜻하는 랩마다 페이스를 조절해가며 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육상 800m는 그래서 ‘트랙의 격투기’라고 불린다. 돌아야 하는 트랙은 겨우 2바퀴. 페이스 조절 따위는 없다. 죽기 직전의 속도로 끝까지 뛰어야 한다. 좋은 자리를 위한 몸싸움도 필요하다. 800m 선수들은 옆구리 성할 날이 없..

잡지에 보내다 2010. 9. 7. 14:22

뉴욕은 한국선수에겐 ‘악연의 땅’

ㆍ양키즈, 박찬호 피츠버그로 트레이드… ㆍ위협 되지않는 최약체 팀에 보내 뉴욕은 매력적인 도시다. 미국에서 가장 큰 도시. 심장부. 일반인뿐만 아니라 코리안 메이저리거에게도 동경의 대상이다. 그러나, 뉴욕은 한국인 메이저리거와는 악연으로 엮였다. 메이저리그 통산 100승을 넘긴 박찬호(37)도 결국 뉴욕 양키스 유니폼을 끝까지 입는 데 실패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끈이다. 박찬호는 메이저리그 트레이드 마감시한인 현지시간 7월 31일, 양키스로부터 양도선수로 지명됐다. 그리고 8월 5일 내셔널리그 중부지구 피츠버그 파이리츠로 팀을 옮겼다. 우승반지를 끼겠다는 꿈은 다시 한번 사라졌다. 박찬호는 “슬프지만 야구도 비즈니스”라며 담담하게 이를 받아들였다. 뉴욕은 악연의 도시였다. 3년 전 뉴욕 메츠서도 쓸..

잡지에 보내다 2010. 8. 17. 14:24

‘파란 피’ 양준혁, ‘혼’을 남기다

ㆍ시즌 종료 뒤 은퇴 공식발표… 야구에 대한 열정 후배들에 ‘수혈’ “내 몸에는 파란 피가 흐른다”고 말했던 이는 원래 LA 다저스의 감독이었던 토미 라소다였다. 이를 우리 프로야구에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던 이가 바로 삼성 양준혁(41)이었다. 양준혁은 2001시즌이 끝난 뒤 FA 자격으로 삼성으로 돌아왔을 때, 해태와 LG를 거쳐 3시즌 만에 다시 삼성 유니폼을 입으며 말했다. “내 몸에는 파란 피가 흐른다”고. 8년이 흐른 뒤 양준혁은 다시 한 번 ‘파란 피’를 택했다. 다른 팀으로 옮겨 선수생활을 더 유지하느니, 삼성의 파란색 스트라이프 유니폼을 마지막 유니폼으로 삼기로 했다. 양준혁은 7월 26일 구단을 통해 시즌 종료 뒤 은퇴를 공식 발표했다. “더 뛰고 싶지만 후배 기회 뺏기 싫어” 양준혁은..

잡지에 보내다 2010. 8. 10. 14:26

이대호 ‘어게인, 트리플크라운’

ㆍ4년만에 타율·홈런·타점 3관왕 달성 후 해외 진출 노려 야구에서 타율과 홈런은 양립할 수 없는 기록이다. 홈런을 많이 치기 위해서는 큰 스윙을 해야 하고, 큰 스윙을 하게 되면 삼진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삼진이 많아지면 타율이 높아질 수 없다. 타자 트리플크라운은 그래서 위대한 기록이다. 그리고 2010 한국 프로야구에는 4년 만에 다시 한 번 트리플크라운에 가까이 다가선 타자가 있다. 롯데 이대호(28)다. 6월 16일 현재 이대호의 타율은 3할6푼2리다. 3할대 타자가 16명인 리그에서 1위의 3할6푼2리는 나쁘지 않은 타율이다. 팀 동료인 2위 홍성흔의 타율 3할5푼3리와 1푼 가까이 차이가 난다. 이대호의 홈런은 28개다. 지난해 홈런왕 KIA 김상현의 기록이 34개였음을 감안하면 홈런왕 가..

잡지에 보내다 2010. 7. 27. 14:27

이정수의 수비수 전향 ‘전화위복’

ㆍ무명의 공격수서 포지션 변경 후 월드컵 16강 일등공신으로 6월12일 그리스전, 이정수(30·가시마)는 첫 골을 성공시킨 뒤 환하게 웃었다. 한국의 월드컵 팬들은 이정수의 골에 환호하면서도 골을 넣은 선수보다 골 자체에 열광했다. 기성용의 프리킥이 좋았다는 평가가 잇따랐다. 무엇보다 후반 6분에 터진 박지성의 두 번째 골에 모든 조명이 집중됐다. 월드컵 본선 첫 경기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첫 골의 중요성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 했지만 이정수는 그저 ‘골을 넣은 어떤 선수’로만 기억됐다. 무명이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이정수의 축구 인생도 그랬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오버래핑도, 적극적인 공격가담도, 무엇보다 열 번 잘하더라도 단 한 번의 실수로 모든 비난을 받아야 하는 수비수였다. 스물 아..

잡지에 보내다 2010. 7. 6.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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