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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균의 가을야구]①2019 WC1-역할(role)

이용균의 가을야구

by 야구멘터리 2019. 10. 4.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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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30분, 잠실구장 하늘, 구름이 걷히고 파란 하늘이 언뜻 언뜻 보이기 시작했다. 이날은 개천절이었다. 우천 취소에 대한 걱정은 사라졌다. 하늘은 점점 파래졌고, 잠실구장 그라운드의 초록은 햇빛을 받아 더욱 짙어졌다. LG 훈련 보조 요원들이 훈련에 필요한 그물망을 내야에 설치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역할, 롤(role)이었다. 배팅 케이지에 맨 먼저 나온 것은 박용택(40)이었다. 
3일 2019 신한은행 마이카 KBO 와일드카드 결정전 1차전이 열렸다. 4위 LG와 5위 NC의 대결이었다. 앞선 포스트시즌 두 차례 맞대결에서 두 팀은 시리즈를 한 번씩 나눠가졌다. 두 팀 모두 일찌감치 순위가 결정된 터였다. 전력은 LG가 앞섰지만 지난 1일 두산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보여준 NC의 경기력이 만만치 않았다. 그때 NC는 이미 순위가 결정났음에도 자신의 역할(role)을 충분히 보여줬다.
야구는 롤(role)이 중요한 종목이다. 각자의 포지션에 서로 다른 이름이 붙은 것은 물론 그 역할에 따른 위치의 범위가 정해져있는 종목이다. (최근 시프트 강화로 그 범위에 대한 의미가 많이 사라지기는 했지만) 제 자리에서, 그 자리에 주어진 롤을 어떻게 소화해내느냐가 승리로 가는 길이다. 

LG 류중일 감독의 야구는 ‘롤의 야구’라 할 수 있다. 선수들에게 역할을 주고 이를 좀처럼 흔들지 않는다. 류중일 감독이 3일 와일드카들 결정전에서 승리한 뒤 마무리 고우석을 격려하고 있다. 잠실 이석우 기자

LG 류중일 감독은 그 롤에 무게를 크게 두는 감독이다. 선수에게 주어진 역할에 대해 책임감을 지우고, 변화를 주지 않는다. 올시즌 144경기를 치르는 동안 류 감독이 사용한 라인업은 겨우 84개. 류 감독의 야구는 ‘롤(role)의 야구’라 부를만한 야구다.
LG 김용의는 전날 영화관에 다녀왔다고 했다. 머리를 식히러가 아니라 각오를 다지기 위해서다. 영화 제목이 ‘조커’다. 배트맨의 빌런, 조커의 탄생을 다룬 프리퀄이다. 평단의 호평이 자자하다. 김용의는 “포스트시즌에서 내 역할은 주인공이 아니라 조커다. 조커의 역할 제대로 하기 위해 영화 조커를 봤다”며 웃었다. 김용의의 올시즌 타율은 0.218. 하지만 LG 차명석 단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올시즌 히트 상품으로 윤진호와 함께 김용의를 꼽았다. 1루 대수비, 대주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35득점은 팀 내 9위다. ‘조커’라는 자신의 역할(role)을 정확하게 알고 전날부터 미리 준비하는 것. 단기전에서 매우 중요하다.
LG 훈련이 끝나고 NC의 훈련이 시작됐다. 용덕한 배터리 코치가 마운드에 올라 배팅볼을 던졌다. 스몰린스키가 타석에 들어서자 용 코치는 연거푸 커브를 던졌다. 배팅볼 투수의 변화구 구사는 흔치 않은 일이다. 용 코치는 “스몰린스키는 매번 커브를 던져 달라고 요청한다. 노진혁은 직구, 커브를 번갈아 던져준다. 양의지는 몸쪽 직구만 던져달라고 한다. 아직 은퇴한지 얼마 되지 않아 공이 괜찮다”며 웃었다. 매 경기 200개 언저리의 공을 던진다. 박석민은 용코치의 배팅볼에 대해 “A 클래스”라고 말했다. 배터리 코치로는 코치의 역할(role)을, 배팅볼 투수 때는 배팅볼 투수의 역할(role)을 충실히 수행한다. NC가 새 감독 체제에서 젊은 코칭스태프로 꼴찌 한 시즌만에 가을야구 팀으로 변신한 것은 각자의 역할(role)을 충실히 해내는 이들이 모였기 때문이다.

LG 마무리였던 봉중근이 이날은 역할을 바꿔 시구자로 나섰다. 시구를 마친 봉중근 KBS N 해설위원이 포수 유강남과 포옹을 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훈련이 끝나고 경기가 시작됐다. 2019년 포스트시즌의 첫 경기다. 홈 팀 LG가 1회초 수비를 위해 나갔을 때 시구자가 마운드에 올랐다. 몇 년 전 시구자의 역할(role)은 LG 경기의 맨 마지막에 나오는 것이었다. 이날의 역할(role)은 거꾸로 맨 앞이었다. LG 마무리였던 봉중근 KBS N 해설위원이 시원하게 공을 던졌다. “LG 파이팅”이라고 외치는 목소리도 시원시원했다. 

 

결과적으로, 승부를 결정지은 것도 제 역할(role)을 얼마나 제대로 수행했는지에서 갈렸다. LG 1번 이천웅은 선두타자의 역할(role)을 충분히 했다. 깨끗한 중전안타. 2번 정주현 역시 자신의 롤(role)을 제대로 해냈다. 류중일 감독 ‘롤의 야구’에서 2번타자의 역할은 ‘진루’다. 희생번트를 정확하게 성공시켰다. 3번 타순부터 시작하는 중심타선의 별명은 ‘클린업 트리오’. 3번 이형종이 이천웅을 불러들였다.

 

4회말, 이날 가장 빛나는 ‘역할(role) 수행’이 이뤄졌다. 무사 1·3루, NC 투수가 선발 프리드릭에서 우완 사이드암 박진우로 바뀌자 류중일 감독은 곧바로 대타 박용택을 호출했다. 대타의 역할은 득점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박용택은 초구를 지켜본 뒤 2구째 슬라이더를 정확하게 받아 때려 잠실구장 오른쪽 담장 앞으로 날렸다. 조금 모자라 홈런이 되지 않았지만 중요한 한 점을 뽑아내는데는 모자람이 없었다. 선수단 중 맨 먼저 그라운드에 나와 방망이를 휘두른 박용택은 자신의 역할(role)을 해내는데 딱 한 번의 스윙이면 충분했다. 이어 이형종의 2루타로 한 점이 더 나왔다. 류중일 감독은 이날의 승부처로 4회 무사 1·3루를 꼽았다.
박용택의 희생뜬공때 홈을 밟은 3루주자는 구본혁이었다. 부상 때문에 빠진 주전 유격수 오지환의 빈 자리를 채웠다. 공격은 물론 수비에서도 구본혁은 빈 자리를 채우는 자신의 역할(role)에 충실했다. 오히려 차고 넘쳤다.

 

 

선발 케이시 켈리는 선발 투수의 역할(role)에 완벽했다. 스트라이크 존 위 아래 경계선을 타고 넘는 커브가 완벽했다. 우타자 바깥쪽을 향하는 속구의 제구도 칼 같았다. 경계선을 스치는 공을 효과적으로 잡아낸 포수 유강남의 프레이밍 역시 포수의 역할(role)을 제대로 해낸 점이었다.
켈리의 ‘경계선 투구’에 NC 타자들의 선구안이 흔들렸다. 4회초 1사 1루 NC 양의지의 얼굴에서 판정에 대한 아쉬움의 표정이 잦아졌다. 바깥쪽 속구, 높은 커브가 모두 스트라이크 선언을 당했다. 이어진 스몰린스키의 내야 뜬공을 LG 포수 유강남이 놓치는 바람에 위기가 찾아왔다. 하지만 켈리는 모창민을 3루수 뜬공으로 처리했다. 2루주자였던 NC 박민우가 이닝 교대 때 이영재 주심을 찾아갔다. 이 역시 주장의 역할(role)에 충실했던 장면이었다. 리그 최연소 주장 박민우의 성장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했다.

 

9회는 서스펜스 드라마였다. LG 마무리 고우석이 흔들렸다. 앞선 3타석에서 범타로 물러난 양의지가 1사 뒤 좌전 안타를 때렸다. 4번타자의 역할(role)이 마지막 타석에서 나왔다. 스포츠투아이에 따르면 이 타구는 이날 나온 안타 타구 중 가장 타구속도가 빨랐다.(시속 164.8km) 볼넷과 안타가 이어지면서 1사 만루가 됐다. 안타 한 방이면 동점이었다. 마무리 고우석은 평균 152.4km짜리 강속구로 위기를 뚫었다. 뜬 공 2개로 승리를 지켰다. 흔들렸지만 마무리 역할(role)을 해냈다. 남은 시리즈 자신의 롤(role)에 대한 자신감을 덤으로 얻었다.

 

NC도 최선을 다했다. 다만, 이동욱 감독이 1번으로 내세운 이상호의 역할(role) 수행은 아쉬웠다. 3타수 무안타에 그쳤고, 3타석에서 상대한 투구수가 겨우 6개였다. 적극적인 스윙은 NC 타선의 장점이기도 하지만 1번타자의 롤(role)을 고려하면, 타석당 평균투구수 2개는 아쉬운 결과다.
LG 팬들은 오랫동안 야구장을 지키고 있었다. 취재진들의 일이 끝난 시간이 경기 끝나고도 한참 이었지만 야구장 인근에 LG 팬들 상당수가 남아 선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응원과 격려는 역시 팬들의 롤(rol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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