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골든 게이트 파크에는 지난 8일(현지시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은 이들이 줄을 이었다. 한 가족은 등번호 28번을 맞춰 입었다. 28번은 지금의 자이언츠를 상징하는 선수, 버스터 포지의 번호였다.
샌프란시스코는 ‘짝수 해’의 팀이다. 2010년과 2012년, 그리고 2014년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했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는 2년 뒤 다시 가을야구에 올랐다. 단판 승부였던 뉴욕 메츠와의 와일드카드 결정전은 누구도 예상 못했던 길라스피의 3점 결승홈런으로 승부가 갈렸다. 물론 에이스 매디슨 범가너의 예상된 완봉 호투와 함께였다. 도시 전체에서 팬들의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디비전시리즈 상대가 만만치 않다. 올 정규시즌에서 무려 108승을 거둔 시카고 컵스다. 컵스는 잘 알려진 대로 ‘염소의 저주’로 유명한 팀이다. 1908년 이후 한번도 월드시리즈 우승을 하지 못했다. 1946년 이후엔 월드시리즈에 오른 적도 없다. 그때 구단이 염소의 야구장 입장을 거부했고, 저주가 시작됐다. 마침 염소의 이름은 머피였고, 월드시리즈가 가능해 보였던 지난해, 뉴욕 메츠에서 뛰던 대니얼 머피에게 경기마다 홈런을 허용하며 졌다. 영화 <백 투더 퓨처 2>가 2015년 컵스의 우승을 예언했고, 어느 해보다 기대가 컸지만 염소의 저주가 더 강했다.
이번 가을야구, 컵스는 저주보다 야구에 집중하고 있다. 정규시즌의 성공은 전력의 안정감을 증명한다. 문제는 ‘저주’다. 실체가 없지만, 삐끗하는 순간 ‘또 안되나’라는 의심이 강한 압박으로 작용한다.
저주의 의심을 없애는 것은 ‘파격’이다. 하던 대로 했다가 안될 때 ‘저주의 유령’이 출몰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할 때 유령이 끼어들 여지가 줄어든다.
컵스를 2년째 이끄는 조 매든 감독은 파격에 주저하지 않는다. 내셔널리그 투수의 타순을 9번이 아닌 8번에 두는 일이 더 일상적이었다. 올 시즌에는 경기 도중 좌완 불펜 트래비스 우드를 그 다음 타자 때 또 기용하기 위해 잠시 좌익수 자리에 빼 놓기도 했다.
8일 시카고 리글리필드에서 열린 2차전, 4-2로 앞선 4회초 선발 카일 헨드릭스가 타구에 팔을 맞아 다쳤을 때 예전 같았으면 ‘저주의 기운’이 팀을 휩쓸었을지도 모른다. 경기를 지켜보는 팬들도 ‘아, 또 안되나’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매든 감독은 곧바로 우드를 마운드에 투입했다. 4회를 막아낸 우드는 4회말 타석에 들어서 1점 더 도망가는 쐐기 홈런을 때렸다. 시카고 컵스 사상 포스트시즌에서 홈런을 때린 3번째 투수가 됐다. 홈런 한 방이 저주의 유령을 몰아냈다.
팀 에이스 존 레스터는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어두운 구석에 처박혀 있는 걸 신경쓰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했다. 레스터는 저주 따위가 아닌 림프암을 극복한 선수다. 1차전 선발로 나와 8이닝 무실점으로 1-0 승리를 이끌었다. 매든 감독은 이번 시즌 더그아웃 벽에 “부담감이 야구의 기쁨을 잊게 하지 말자”라고 적었다. 저주의 우울함에 신경쓰지 말고 야구 자체를 즐기자는 주문이다. 저주를 깨는 것은 파격을 향한 도전이다. 다르게 함으로써 과거에서 벗어나는 길을 만든다.
물론 샌프란시스코도 도전 중이다. 지난 3번의 짝수해 동안 모두 우승했다. 2패로 몰렸지만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10일부터는 홈구장 AT&T 파크에서 3·4차전을 치른다. 샌프란시스코는 포스트시즌 벼랑 끝에 몰린 최근 9번의 경기에서 모두 이겼다. 밟아도 밟아도 죽지 않는다는 뜻의 ‘가을 바퀴벌레’라는 별명이 그래서 생겼다. 샌프란시스코 팬들은 여전히 웃으며 말한다. Can you math?(산수 할 줄 알죠?) 2016년 가을, 또 하나의 ‘고전’(classic)이 만들어지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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