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춘추시대, 오나라 왕 합려는 월나라와의 전투에서 적의 화살에 맞아 죽게 됐다. 합려가 아들에게 유언을 남겼다. 월왕에 대한 자신의 원수를 잊지 말라는 부탁이자 명령이었다. 합려의 뒤를 이은 오왕 부차는 아버지의 유언을 한시라도 잊지 않도록 노력했다.
잠자리가 편안하면 혹시 마음이 풀어져 유언을 잊을까 싶어 잠자리를 일부러 불편하게 만들었다. 가시 많은 나무를 바닥에 깔고 누웠다. 유명한 고사성어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와신’이 여기서 나왔다.
프로야구 LG 홈경기 더그아웃에 묘한 의자(사진)가 있다. 팔걸이와 등받이가 없는 동그란 의자로 위에 ‘LG 트윈스 감독님 용’이라고 적혀 있다. 등받이가 높은 다른 팀 더그아웃의 감독용과는 사뭇 다르다. 엉덩이를 얹는 자리도 작아 불편하기 짝이 없다. LG 김기태 감독은 “이제 겨우 2년차 감독이다. 아직 팔걸이 있는 의자에 앉을 때가 되지 않았다”고 손사래를 쳤다.
팔걸이 없는 의자는 지난해부터 등장했다. 등받이와 팔걸이가 달린 의자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김 감독은 앉아야 할 때면 편안한 의자 대신 불편한 간이 의자를 택한다. 김 감독은 “감독이 편할 수가 없다”고 했다.
LG는 10년째 가을 야구에 진출하지 못했다. 2002년 한국시리즈에 올라 준우승한 이후 10시즌 동안 한 번도 4강 안에 들지 못했다.
시즌 초반 힘을 내는가 싶으면 중반 이후 힘이 달려 떨어졌다. 오죽하면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는 ‘내팀내’라는 결코 자랑스럽지 않은 별명까지 얻었을까? LG 주장 이병규는 스프링캠프 내내 “LG 선수들 모두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김기태 감독은 그래서 편안함을 버렸다. 김 감독은 “현역에서 은퇴하던 때 눈물이 나지 않았다”고 했다. 오히려 “선수생활을 마치면서 이제 잠을 푹 자겠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고 했다.
편안함은 자칫 나태함으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경계는 선수 시절에도 김 감독이 지켜온 약속이었다. 감독이 된 뒤 택한 팔걸이, 등받이가 없는 의자는 자신의 편안함을 경계하기 위한 장치 중 하나다.
의자에 머물지 않는다. 김 감독은 올 시즌 개막 이후 날씨가 아무리 추워도 경기 중 더그아웃에서 점퍼를 입지 않았다. 주머니에 손도 넣지 않았다. 코칭스태프에게도 그렇게 전달했다.
김 감독은 “선수들은 그라운드에서 유니폼만 입고 경기하는데 감독과 코치들이 어떻게 점퍼를 입고 주머니에 손을 넣을 수 있겠나”라고 했다. 의자와 점퍼는 지금으로부터 2000년도 전 오나라 왕 부차의 ‘와신’을 닮았다.
10년째 가을야구를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끝없는 자각의 장치다. LG팬들의 소원을 상징하는, 가을 한기를 막아 줄 ‘유광점퍼’는 진짜 가을야구를 하게 됐을 때서야 김 감독의 어깨에 걸릴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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