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배우 황정민 닮은 LG 초보감독 박종훈 ‘밥상 야구론’
이용균기자
차를 날라주던 여종업원이 힐끔힐끔 LG 박종훈 감독(50)을 쳐다봤다. 어렵게 입을 열더니 “어디서 많이 뵌 분 같다”고 했다. 박 감독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영화배우 황정민을 닮았다고들 합디다.” 종업원이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어쩐지, 어디서 많이 뵈었다 싶었어요.” 뒤돌아서 수군댄다. “정말 닮았네.”
1996년 LG 코치를 떠난 지 13년 만에 다시 LG 유니폼을 입은 박종훈 감독이 환하게 웃고 있다. (LG트윈스 제공)
지난 25일 진주에서 만난 초보 감독은 마무리 훈련지 근처였음에도 주위 사람들이 그를 잘 알아보지 못했다. 그 여종업원은 지금도 ‘LG 트윈스 감독’이 아닌 ‘황정민을 닮은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을 게다. 박 감독은 “그래서 말인데, 내 야구에서 감독은 밥상을 다 차리는 사람이 아니다.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차려놓은 밥상에 그걸 떠먹을 수 있는 숟가락, 젓가락 얹어 놓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굳이 구분하자면, 그의 야구는 일본식보다 미국식에 가깝다.
한국프로야구 첫 신인왕. 통산타율 2할9푼. 짧고 굵은 선수 시절을 보냈다. 만 30살이던 1989시즌을 마친 뒤 미련 없이 선수생활을 포기했다. 고질적 허리 부상이 문제였고, 곧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떠났다. 서든코네티컷주립대에서 체육학 석사과정을 마친 뒤 보스턴 레드삭스 산하 더블A팀인 뉴 브리튼 레드삭스 코치를 지냈다.
박 감독은 “코치생활 도중 토니 그윈을 만나 야구에 새로 눈을 뜨게 됐다”고 했다. 그윈은 메이저리그 20시즌 동안 8번이나 타격왕을 지낸 타격의 달인. 94시즌에는 3할9푼4리를 쳤다. 박 감독은 “그윈의 설명을 듣고 나니 난 바보였다”고 했다. 그 이후 야구는 ‘게임’에서 ‘학문’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박 감독은 ‘공부’를 강조한다. “야구는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루틴)’의 스포츠이지만 알고 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것은 천지차이다”라고 했다. LG 마무리 훈련은 오전훈련-오후훈련-야간훈련-야간교육의 반복이다.
초보 감독 대부분이 그렇듯, 미리 뚜껑을 열면 밥을 망친다. 박 감독도 잘 알고 있지만 “그게 그렇게 쉽지는 않다”고 털어놓았다. “밤마다 꿈을 꾼다. 어제는 꿈속에서 삼성과 시즌 경기를 치르고 있었다”고 했다. ‘이겼냐’는 물음에 ‘허허’ 웃음으로 답했다.
신임 감독이 꿈꾸는 LG는 어떤 팀일까. “94년의 LG와 98·2000년의 현대를 합쳐 놓은 팀”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94년 LG와 98년 현대는 각각 81승을 거뒀고, 2000년 현대는 91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그때의 LG와 현대는 선수들 모두가 야구를 알고 하는, 알아서 굴러가는 최강의 팀이었다”고 회고했다. 박 감독은 모두 그 팀의 코치였다. 감독의 역할이라고 믿는 ‘숟가락·젓가락’은 바로 그런 팀 컬러에서 가능하다.
그러나 LG는 프로야구 8개구단 중 가장 오랫동안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팀이다. 우승의 기억으로 따지면 롯데(92년) 다음이다. 박 감독은 “전임 김재박 감독님이 잘 만들어 주셨다.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이 타격코치로 일했던 LG의 94년을 돌이켰다. “그때 신인 중 2차 6순위 선수가 해태에서 트레이드된 앞 순위 선수를 제치고 주전 1루수가 됐다. 당시 우리 코칭스태프 판단으로는 타격보다 수비가 좋은 그가 필요했고 LG를 대표하는 타자로 성장했다”고 했다. 그가 바로 LG 서용빈 타격코치다. 박 감독의 유난한 강조는 내년 시즌 LG 주전 엔트리의 적지 않은 변화를 암시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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