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균기자
1982년 서울 잠실구장,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일본과의 결승전.
2-2 동점이던 8회말 2사 1·2루. 볼카운트 2-3에서 한대화의 방망이가 돌았다. 타구는 잠실 구장 왼쪽 폴을 직격했다. 우승을 결정짓는 역전 스리런 홈런. 다음날 신문에는 그 홈런이 터진 순간 여러 명이 심장마비로 쓰러졌다는 기사가 실렸다.
한화 이글스의 새 감독이 된 한대화 감독은 “몸쪽으로 들어오던 슬라이더가 조금 덜 꺾였다”고 말했다. 절체절명의 순간, 볼카운트 2-3. 대부분의 타자는 직구를 기다리게 마련이다. 덜 꺾였다 하더라도 슬라이더를 홈런으로 연결하기는 쉽지 않다. 한 감독은 “직구, 변화구 둘 다 보고 있었다”며 웃었다. 그때부터 한 감독은 ‘해결사’였다. ‘미스터 클러치’라는 별명도 함께였다. 한 감독을 11일 한화의 서울 경기 숙소인 삼정호텔에서 만났다. 고민이 많은 듯, 머리는 더욱 하얗게 세어 있었다.
한화는 주포 김태균과 이범호가 빠진 데다 마무리 브래드 토마스도 메이저리그로 떠났다. 이럴 때일수록 ‘해결사’가 필요할지 모른다. 해결사의 비결을 물었다. 한 감독은 “기회가 오면 타자는 두 가지 이유로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고 말했다. 하나는 긴장, 또 하나는 욕심. “그래서 힘을 빼는 게 최우선”이라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해결사 한 감독은 내년 시즌 전망을 묻는 질문에 함부로 ‘희망’을 얘기하지 않았다. 한 감독은 “탄탄한 선발을 중심으로 쉽게 지지 않는 팀을 만들겠다”는 것 외에는 더 많은 것을 얘기하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한화의 스프링캠프는 혹독할 것이라는 것. 드러내지 않았지만, 과거 에피소드 몇 개로 이를 대신했다. “93년 겨울 LG로 트레이드됐을 때다. 분위기가 많이 흐트러져 있었다. 고참인 정삼흠과 김태원이 나한테 많이 혼났다. ‘군기’를 확 잡았다”고 했다. LG는 94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다. “그 다음해 스프링캠프에서는 다들 우승 분위기에 너무 취해 있었다. 86~89년 해태가 4년 연속 우승을 했는데, 그때는 스프링캠프만 되면 지난 우승을 모두 잊었다”고 했다.
또 하나. 한 감독이 2005년 삼성 수석코치가 됐을 때다. “솔직히 잔소리쟁이였다. 내가 제일 먼저 벌금을 매긴 게 최고참 양준혁이었다. 지각을 해서 벌금 20만원을 매겼다. 며칠 뒤 또 지각을 하기에 또 벌금을 매겼다. 그 이후로 지각이 없었다. 다른 선수들도 모두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그해 삼성은 우승을 했다. 한화 선수들은 이제 큰일났다. 한 감독은 “과거는 빨리 잊어야 한다. 그게 우승의 기억이든, 꼴찌의 기억이든 마찬가지”라고 했다.
많이 궁금했던 질문 하나. 93년 올스타전 때 김응용 감독에게 발길질 당한 사연. 한 감독은 “당시 감독님이 오해하셨다. 슬라이딩을 하다 손을 다쳐서 아이싱을 하고 있었는데 대기타석에 없다는 이유로 태업을 지적하셨다. 나도 화가 났지만 이틀 뒤 전화를 하셨다. ‘내일 훈련 나와’라고. 그래서 훈련을 나갔다”고 했다.
뒤끝은 없다. 그게 ‘해결사’ 한대화 스타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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