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완 민성기는 삼진으로 경기를 끝냈다. 4시간 가까이 걸린 지난 19일 수원 KT-NC전이 끝났다. 더그아웃 앞에서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주고받는 악수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간간이 파이팅 소리가 들렸다. 대부분이 묵묵히 제 장비를 챙기고 있었다. NC 김경문 감독도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수민이는 앞으로 NC의 선발 투수로 성장해야 할 선수다. 원래는 빼면 안되는데, 조금 일찍 빼게 돼서 아쉽다”고 했다. 이달 들어 무패, 15연승을 거둔 팀의 감독, 경기 후 첫 소감이 그랬다. 15연승 동안 역전승이 9번이었다. 선발 퀄리티스타트는 5번밖에 되지 않았다. 대신 홈런은 28개가 쏟아졌다. 이날 경기는 중반 흐름을 완전히 넘겨줬다. 6회 이후 터진 홈런 4방이 결정적이었다. 김 감독은 “타자들이 정말 요소요소에서 잘 해주고 있다”면서도 “역전승 숫자, 홈런 숫자 같은 건 잘 기억나지 않는다”며 그제서야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NC의 기세가 만만치 않다. 이날 경기를 앞두고 장성호 KBS N 해설위원은 “연패에는 이유가 있어도 연승에는 이유가 없다. 분위기와 기세다”라고 말했다. KT의 한 베테랑 타자도 “이길 수 없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저쪽(NC)이 정말 잘 풀린다는 느낌은 든다”고 했다. 빗맞아도 안타, 잘 맞으면 홈런이 나온다.
기세의 흐름을 만드는 건, 중심선수들의 역할이다. 자유계약선수(FA)로 영입한 이호준(전 SK), 손시헌, 이종욱(전 두산), 박석민(전 삼성) 등 4인방은 모두 ‘왕조’에 가까운 강팀에서 중심선수로 뛰었다. 강팀의 DNA를 젊은 팀 NC에 불어넣고 있다. 그런데 중심선수의 힘으로 만드는 연승에는 한계가 있다. 15연승이 되려면, 그 빈자리를 채우는 역할이 필요하다. 연승을 잇는 건, ‘B’들의 힘이다.
장비 가방을 둘러메고 경기장을 빠져나가던 이호준은 “우리가 잘한 게 아니다. 비주전 선수들이 제 몫을 또박또박 해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B는 A의 뒤에 서는 백업이다. 플랜A가 흔들리면, 그때 B가 나선다. 우리 사회에서 B는 을이고, 그늘이고, 때로는 울음이다.
이호준은 “우리 팀 B는 A 못지않다”고 했다. 김경문 감독은 오래전부터 “가장 멋지고 기쁜 경기는 벤치에 앉아 있던 선수들이 경기 후반 좋은 활약을 해줘서 이기는 경기”라고 말했다. 15연승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이종욱의 휴식을 위해 1번으로 나선 ‘B’ 김준완은 3안타, 3득점을 기록했다. 선발 정수민의 조기 강판 뒤 부랴부랴 마운드에 오른 장현식은 갑작스러운 등판에도 4이닝을 2실점으로 버텨냈다. 슈퍼 백업 지석훈은 6회말 2사 3루, 이대형의 날카로운 타구를 다이빙 캐치로 직선타 처리했다. 6회 역전 5득점의 물꼬를 튼 건 대주자 김종호가 투수를 괴롭힌 덕분이었다.
B 중에서도 최고의 B는 암 투병 끝에 돌아온 원종현이다. 마치 벌(Bee)처럼 날아 공을 쏜다. 5회부터 마운드에 올랐고, 2.1이닝을 2실점으로 막았다. 149㎞짜리 벌침을 구석구석에 쏘았다. 선발이 무너진 경기, 투병 이후 복귀해서 가장 긴 이닝을 소화했다. 경기 종료 직전 NC 배석현 단장은 연승 비결로 ‘원종현의 복귀’를 꼽았다. 배 단장은 “원종현이 돌아와 던지면서 선수단이 하나로 뭉치게 된 것은 물론 구단 전체가 힘을 얻었다”고 했다. 원종현은 지난달 31일 암 극복 뒤 첫 등판을 했고, 다음날부터 NC는 15연승을 이어갔다. 민성기가 삼진으로 경기를 끝냈을 때, 싸움벌 원종현의 복귀 첫 승리가 결정됐다. 614일 만의 승리였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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