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KIA전, 넥센 마무리 김세현(29)이 9회말 마운드에 올랐다. 1안타 무실점. 공 17개를 던졌다. 슬라이더가 3개, 나머지는 모두 직구였다.
시즌 15세이브째를 따냈다. 1위 두산 이현승(16세이브)에 이은 리그 2위다. 김세현은 입단 11년 만에 제 몸에 딱 맞는 옷을 입었다. 김세현은 ‘마무리 투수’가 됐다.
현대 유니콘스 시절이었던 2005년, 김세현을 스카우트했던 노춘섭 KT 육성팀장은 “고교 졸업 당시에도 스피드는 상당했다”고 말했다. 노 팀장은 “다만 높은 공이 조금 많았는데, 그것보다는 현대에 워낙 좋은 선수들이 많았다”고 했다.
지난해까지 김세현은 이름이 김영민이었다. 선발과 롱맨, 셋업맨 등 여러 자리를 거쳤다. 빠른 공은 여전했지만, 안정감은 떨어졌다.
마무리 투수는 이기는 경기 맨 마지막에 나온다. 세인트루이스에서 뛰고 있는 오승환은 “마무리 투수가 승부차기 키커보다 더욱 부담스럽고 어려운 자리”라고 말했다. “승부차기 키커는 무승부인 경기에서 나오지만, 마무리 투수는 동료들이 열심히 해서 이겨 놓은 경기 지키러 나오는 거다”라며 “승부차기 키커는 5명이 나눠 공 1개를 차면 되지만, 마무리 투수는 혼자서 20~30개의 공을 던져야 한다. 하나라도 삐끗하면 동료들이 만들어 놓은 승리를 날려버린다”고 했다.
그래서 필요한 게 집중력이다. 다양한 공을 던지는 대신, 자신있는 공 1~2가지를 던진다. 김세현이 마무리 투수가 될 수 있었던 이유다.
넥센의 누군가는 “선발, 중간에서 뛸 때 김영민은 여러 가지 공을 던지려 했다. 제구도 안되는 공을 섞어 던지다가 볼카운트가 몰렸고, 안타를 맞았다”고 했다. 이름을 바꿔 김세현이 되고, 마무리가 되고 나서는 직구, 슬라이더만 던지면 된다. 오히려 더 강해졌다. 스플리터는 만들어가는 중이지만, 지금은 일단 투 피치다.
커브와 체인지업을 아예 버렸다. 두 가지 공에 집중했고, 슬라이더 구속이 시속 5㎞ 빨라졌다.
삼성 심창민(23)은 5월부터 마무리가 됐다. 최근 한화전에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5월 동안 블론세이브 없이 1승 5세이브를 따냈다. 5월 평균자책이 0.63이었다.
마무리가 된 뒤 구속이 늘었다. 심창민은 “중간에서 뛸 때와 달리 몸 풀면서 힘 빼는 게 없으니까, 힘이 남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역시, 자신의 상황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 덕분이다. 마무리 투수의 등판 시기와 역할은 명확하다. 자신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야구에 대한 생각을 키운다.
심창민은 “평균자책도 중요하지만, 마무리 투수는 일단 타자를 내보내면 안된다. WHIP(이닝당 출루 허용)에 신경쓰고 있다”고 말했다. 5월 한 달 심창민의 WHIP는 0.91이었다.
심창민은 “주자를 안 내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삼진”이라고 했다. 스트라이크 3개 중 가장 중요한 스트라이크를 묻는 질문에 주저없이 “첫번째 스트라이크”라고 답했다. 공격적인 투구의 기본이다.
유시민 전 장관은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게 아니라 자리가 그 사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김세현과 심창민 모두, 자신의 가치가 마무리라는 자리에서 더욱 빛나고 있다.
물론,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은 그 자리에 대한 도전이다. LG 마무리 임정우(25)는 정찬헌에 이은 ‘플랜B’였다. 캠프 때 강상수 투수코치에게 “저도 한 번 (마무리를) 해보고 싶습니다”라고 말했고, 그 배짱이 기회를 가져왔다. 임정우는 LG의 마무리가 됐다. 두자릿수 세이브가 눈앞이다.
그렇게 마무리가 된다.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보다, 일단 한 번 장점을 믿고 맡겨 보는 게 필요할 때가 있다. 그리고 맡겼으면 조금 기다려 줄 필요가 있다. 세상의 청춘들이 가장 목말라 하는 것은, 기회와 믿음, 기다려주는 여유다. 세계 야구역사에도 ‘본 투 세이브’는 그리 많지 않았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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