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 컨벤션센터 아레나는 미국프로농구(NBA) 유타 재즈의 전신인 애너하임 아미고스의 홈 코트였다. 수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체육관이 강연장으로 바뀌었다. 한쪽 면에 30여m 되는 대형 무대가 설치됐고, 1000명은 족히 넘는 사람들이 3층 관중석까지 가득 채운 채 숨죽여 강연을 경청했다. 대입설명회도, 주식투자 비결 강연도 아니었다.
지난 6일부터 9일까지 이곳에서 전미야구코치협회(ABCA)가 주최하는 컨벤션이 열렸다. 전시장에는 수백개의 야구 관련 용품 업체들이 신제품을 내놓았다. 아레나에서는 야구 선수 육성을 위한 클리닉 강연이 행사 후반 3일 동안 계속됐다. 미국 전역에서 모인 수많은 야구 코치들이 눈에 불을 켜고 강연에 집중했다. 강연의 스펙트럼은 단지 야구 기술이나 이론의 범위를 넘어섰다. 마크 바위스는 유명 프로트레이너다. <아메리칸 머슬>이라는 TV 쇼에 출연하면서 유명인이 됐다. 메이저리그 뉴욕 메츠의 체력 관련 코디네이터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바위스는 이번 강연에서 중력과 각속도를 설명했다. 야구 강의가 아니라 물리학 강의에 가까웠다. 야구에 필요한 파워는 중력에 저항하는 방식으로 추진력을 얻고, 스피드는 힘이 발생하는 각도와 관계가 깊다는 설명이었다. 야구에 필요한 ‘순간폭발력’을 얻기 위한, 중력과 힘 각도를 이용한 각종 훈련 방식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수많은 코치들의 눈이 반짝였다.
3일 동안 25개의 강연이 이어졌다. 기술 관련 강연들은 미국 야구의 트렌드를 드러냈다. 견제와 도루, 주루플레이와 외야 수비 등 이른바 ‘스몰볼’로 불리는 디테일에 집중하는 강의가 상당수였다. 볼카운트에 따른 투수들의 구종 선택 경향, 타구 방향과 외야수 시간과의 관계, 주자의 베이스 간 이동 속도와 타구 처리 시간과의 매치업 등 수많은 데이터도 쏟아졌다.
야구가 멘털 게임이라는 것은 여전히 중요한 포인트다. 어린 선수들의 자신감을 키우기 위한 심리적 단계 훈련 방식도 소개됐다. 심리적 안정을 위한 ‘호흡’의 중요성도 강조됐다. 윤영진 전 롯데 자이언츠 트레이닝 코치는 이번 컨벤션 강연자로 나서 투수들의 균형과 유연성 강화를 위한 훈련 프로그램을 소개한 데 이어 독특한 호흡법을 직접 시연함으로써 큰 박수를 받았다.
ABCA 주최 컨벤션은 올해로 73회째였다. 매년 장소를 옮겨 행사를 치른다. 새로운 정보와 지식이 한군데 모여서 퍼진다. 야구는 새로운 시도에 대한 장벽이 낮은 산업이다. 누군가 성공하면 금세 퍼진다. 오클랜드의 머니볼 전략은 어느새 리그 전체의 기준이 됐다. 유효한 전략이라면 감추는 게 유리하지만 메이저리그를 비롯한 미국 야구는 반대로 지식과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리그 혹은 산업 전체를 성장시키는 방식을 택했다. 나만 이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모두 함께 성장하는 게 중요하다는 대원칙에 합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엄청난 금액을 들여 각 구장에 설치한 ‘스탯캐스트’ 데이터에 누구나 접근할 수 있게 한 것 역시 그런 대원칙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한국야구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승리를 위해’라는 명분 속에 정보를 서로 감추기에 급급해한다. ‘야구는 야구인이 제일 잘 안다’는 틀 속에 스스로를 가둔 채 새로운 공부를 멀리했다.
그나마 제 역할을 하던 베이스볼아카데미도 문을 닫았다. 73년을 이어 온 미국야구계의 ‘지식 공유 행사’와는 완전히 거꾸로다. 물론 이번 행사에서 한국야구 구단 관계자는 아무도 찾아볼 수 없었다. ‘미래’라는 말을 입에 담기가 부끄러운 한국야구의 슬픈 자화상이다.
애너하임에서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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