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흐르면 상처는 아문다.
야구팬이 100명이라고 치면, 승리에 열광하고 기쁨에 취한 팬들은 어쩌면 겨우 2~3명. 사다리의 꼭대기는 언제나 좁은 법이어서 맨 위에 오른 이의 숫자는 당연히 적을 수밖에 없다. 일찌감치 시즌 초반부터, 어쩌면 중반부터, 누군가가 다치면서부터, 그리고 혹은 맨 마지막 경기에서 눈물을 흘리며 아쉬움의 탄성을 내질러야 했을지도 모른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팬들은 1948년 이후 70년 가까이 묵은 우승의 한을 바로 한 발자국 앞에서 놓쳤다. 슬픈 가을이 끝나고 겨울을 보내고 나면, 새 시즌이 찾아왔을 때 패배의 기억보다 새 시즌의 기대가 더 크기 마련이다.
오래 묵은 흉터도 시간이 흐르면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시카고 컵스 팬들은 108년 묵은 한을 풀었다. 기쁨의 건배를 부르짖는 이들도 많았지만 또 많은 이들이 우승을 보지 못하고 먼저 떠난 이들을 위해 노래했다. 묘지를 찾아 꽃을 얹었고 리글리 필드 담장에 그들을 향한 한 글자 한 글자를 적었다.
떠나보냈을 때 슬픔이 우승과 함께 다시 찾아왔지만, 떠난 이들을 다시 불러냄으로써 상처는 치유됐다.
시간은 상처를 아물게 한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2017 명예의전당 투표 결과가 나왔다.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호타준족 외야수 팀 레인스는 10수 끝에 명예의전당에 올랐다. 2008년부터 후보에 올라 꾸준히 득표율이 올랐고, 결국 75%를 넘겼다. 오래 걸렸지만 그 시간의 보상을 받고도 남았다. 메이저리그 사상 첫 600세이브를 거둔 ‘지옥의 종소리’ 트레버 호프먼은 겨우 5표가 모자랐다. 백지투표 논란 등이 불거진 가운데 더욱 안타까운 성적표. 내년부터는 쟁쟁한 선수들이 더해져 낙관하기 힘들다. 시간은 어떤 결과를 낳게 될까.
무엇보다 주목받는 결과는 배리 본즈와 로저 클레멘스의 성적표였다. 본즈는 53.8%, 클레멘스는 54.1%를 얻었다. 둘 모두 지난해보다 9% 정도 많은 표를 받았다. 약물 복용 혐의가 알려졌을 때 팬들이 받은 상처는 시간이 흐르면서 딱지가 앉았다. 약물을 뺀 성적만으로도 명예의전당에 오를 수 있다는 사실이 주목받은 결과였다. 약물 관련 스캔들이 온 세상을 휩쓸었을 때 끝자락에 이름이 거론돼 고생했던 제프 배그웰은 결국 7수 끝에 이번에 86.2%를 얻어 명예의전당에 올랐다.
슬픔을 달래주는 것 역시 어쩌면 시간이다. 미국 현지시간 22일 새벽, 메이저리그에 슬픈 소식이 쏟아졌다. 2015시즌 캔자스시티 우승 주역이자 강속구를 꽂아넣는 젊은 에이스 요다노 벤추라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고향인 도미니카공화국에서였다. 나이는 겨우 25살이었다.
같은 날 또 한 명의 선수가 세상을 떴다. 지난해까지 KBO리그 KT에서 뛰었던 내야수 앤디 마르테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33세. 많은 한국팬들은 마르테의 환한 미소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중이다. 메이저리그는 22일을 두고 ‘블랙선데이’라고 했다. 추모의 글이 쏟아졌다. 겨우 몇 개월 전, 젊은 에이스 호세 페르난데스를 보트 사고로 떠나 보낸 데 이어 찾아온 비극이다.
슬픔을 달래는 시간은 그저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함께하는 시간이다. 짐 아두치는 트위터에 “인생과 야구에 대해 멋진 이야기를 나눴던 멋진 선수”라고 적었고, 에릭 테임즈는 “위대했던 선수, 마르테 편히 쉬시길”이라고 썼다. 브래드 스나이더는 “위대한 동료였고 좋은 남자였던 마르테”라고 했다. 견뎌내는 것은 ‘함께의 힘’이다. 페르난데스를 떠나보낼 수 있었던 것은 디 고든의 홈런과 베이스를 돌며 흘린 눈물 덕분이었다. 그렇게 함께 흘린 눈물. 굿바이 앤디.
LA에서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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