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가니에(41)는 지난해 10월19일, 다저스타디움에 있었다. 마운드 대신 관중석이었다. 3-0으로 앞선 6회초 가니에는 다저스타디움 전광판에 나타나 손을 흔들었다. 2003년, 55세이브를 거둬 사이영상을 거머쥐었던, 다저스의 수호신이었다. 수호신이 자리를 지키자, 다저스는 컵스에 단 한 점도 내주지 않았다. 챔피언십시리즈 3차전을 이겼고, 그때 다저스의 월드시리즈 진출이 한발 더 가까워 보였다.
가니에의 마지막 투구는 9년 전인 2008년이었다. 지금은 LA다저스 스프링캠프 초청 인스트럭터다. 가니에가 신발끈을 다시 맸다. 다시 마운드에 오른다. 다저스 유니폼이 아니라 ‘캐나다’가 적힌 국가대표 유니폼이다. 가니에는 사뭇 진지하다. ESPN과의 인터뷰에서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내 투구를 심각하게 분석하고 살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은퇴 뒤 바쁜 삶을 살았다. 야구 방망이 회사를 차렸고, 골프대회를 만들었고, ‘우주인’이라는 별명의 투수 빌 리의 삶을 다룬 영화를 제작했다. 물론, 카메오로 직접 출연도 했다. 바쁜 와중에도 공을 완전히 놓지는 않았다. 매년 여름 애리조나에서 마이너리그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며 몸 상태를 유지했다. 가니에는 여전히 시속 90~93마일(약 145~150㎞)짜리 속구를 던질 수 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WBC 캐나다 대표팀에서 셋업맨 역할을 맡는다. 가니에는 “이번 대회가 끝나고 나면, 내가 진짜 메이저리그로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브루스 첸(40)은 메이저리그에서 17년을 뛰었다. 2015시즌 클리블랜드에서 선발 2경기에 나선 것이 마지막이었다. 제구력이 뛰어난 좌완투수로 400경기에 등판했다.
조부모가 중국인으로 1950년 이전 파나마로 이민했다. 통산 82승은 마리아노 리베라와 함께 파나마 출신 메이저리거 최다승 타이 기록이다. 파나마 대표 선수로 뛸 수 있었지만 파나마는 콜롬비아에 패해 이번 대회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플랜B 가동. 존 맥라렌 중국 대표팀 감독의 요청에 따라 중국 대표팀 에이스로 나선다.
모처럼 실전 등판을 위해 몸을 차근차근 만들었다. 호아킴 소리아가 캐치볼 상대가 돼 줬고, 직전 소속 팀이었던 클리블랜드의 코칭 스태프가 나서 구속 회복 프로그램을 도왔다. 첸은 도쿄돔 일본전 선발투수로 나선다.
같은 중국 대표팀의 주권(KT)이 일본전 등판을 무척 원했지만 첸에게 돌아갔다. 첸은 “그동안 아주 많은 스프링캠프에 참가했지만 이번처럼 두근거리기는 오랜만”이라고 말했다.
마무리로도, 선발로도 대단했던 투수 라이언 뎀스터(40)도 WBC 마운드에 선다. 가니에와 함께 캐나다 대표팀 소속이다. 현재 시카고 컵스의 특별보좌역이자 MLB 네트워크의 해설자로 일하지만 다시 공을 집어들었다.
컵스 스프링캠프에서 배팅볼을 던지면서 몸을 만들었다. 테오 엡스타인 구단 사장이 직접 방망이를 들고 타석에 들어선 장면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뎀스터는 “몸에서 다시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느낌이 든다. 무척 흥분된다”고 말했다.
2017년 WBC가 개막했다. 한때 날렸던 형님들이 돌아왔다. 야구에서 흔치 않은 국가대항전인 WBC도 중요하지만, 올림픽이 그렇듯 참가 자체만으로도 의미의 크기가 작지 않다. 물론 마운드에 놀러가는 것도 아니다.
엡스타인 컵스 사장은 “WBC에서 뛰겠다고 말하는 건 쉽다. 하지만 실제 등판을 위해 몸을 만드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라면서 “뎀스터의 준비 과정을 지켜봤다.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야구가 알려주는 건 경기 결과뿐만이 아니다.
LA |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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