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6일 미국프로풋볼(NFL)의 결승전이라고 할 수 있는 슈퍼볼이 열렸다. 경기가 열린 곳은 텍사스였지만 이곳 서부에서도 온 동네가 들썩들썩했다. 스포츠바가 북적거린 것은 물론 차고마다 ‘공동시청회’ 파티가 열렸다.
21세기 최강팀이라고 할 수 있는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와 1966년 창단 뒤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한 애틀랜타 팰컨스가 맞붙었다. 2016년의 미국 프로스포츠는 ‘우승 가뭄 해갈’이 트렌드였다. 미국프로농구(NBA)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는 창단 첫 우승을 했고,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는 무려 108년 만에 우승을 따냈다.
애틀랜타의 젊고 날랜 수비진이 펄펄 날았다. 상대 베테랑 쿼터백 톰 브래디를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전반이 끝났을 때 스코어는 무려 28-3이었다. ESPN은 애틀랜타의 우승 확률을 99.8%로 계산했다. 주변 곳곳 거라지 파티들도 일찍 끝나버린 승부에 흥이 깨진 듯 조용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하지만 경기 결과는 잘 알려진 대로 뉴잉글랜드의 말도 안되는 대역전승. 기적이 벌어졌다.
40세 베테랑 쿼터백 브래디의 노련한 플레이에 경기 흐름이 뒤집혔다. 51년째를 맞는 슈퍼볼 사상 처음으로 서든데스 연장전에 돌입했고, 뉴잉글랜드의 터치다운으로 대역전승이 완성됐다.
NFL의 대표적인 ‘냉혈한 감독’ 빌 벨리칙 뉴잉글랜드 감독의 눈가가 촉촉했다. 쿼터백 브래디를 안았다.
정말 놀라운 장면이 이어졌다. 애틀랜타의 쿼터백 맷 라이언이 브래디를 찾아와 우승 축하 악수를 건넸다. 28-3의 승리를 날린 팀의 대표 선수가 건네는 진심 어린 축하였다.
한국 스포츠의 패배 장면에 익숙하던 이로서 무척 낯설었다. 창단 첫 우승도 중요했지만 정치적 이슈가 더해진 경기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 미국 대선 개입 해킹 사건을 비난한 조지아주 하원의원을 향해 “범죄가 만연하고 끔찍한 지역구 문제나 신경 쓰라”고 일갈한 터였다. 애틀랜타는 조지아주의 주도, 트럼프는 뉴잉글랜드의 팬으로 알려져 있다. 절대로 져서는 안되는 경기였다. 게다가 승리 확률 99.8%까지 갔던 경기였다.
텍사스에서 애틀랜타까지 기어오라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배가 부르니 절실함이 부족해 28-3을 역전당했다는 비난도 있을 법했다. 차라리 ‘할복’하라는 얘기가 나올 법도 했다. 그러니까 승리 팀 쿼터백을 향해 가서 악수를 건네는 게 아니라 그라운드에 엎어져 고개를 박고 울어야 마땅했다. 이것이 NFL 슈퍼볼이 아니라 어떤 종목이든 한국 대표팀이었다면 말이다.
미국 어디든 주말이면 곳곳에서 스포츠 경기가 열린다. 거의 모든 아이들이 스포츠 활동에 참가한다. 체력을 키우고 팀 스포츠를 통해 팀워크, 협동심, 리더십을 함양하고 성장시키는 것도 중요한 목적이지만 스포츠 활동의 가장 큰 목적은 ‘지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잘못을, 실수를, 부족함을, 결과를 인정하고 다시 시작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지면 죽는다’의 강박증이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직접 겪은 패배의 경험을 통해 스스로는 물론 공동체 전체가 성장할 수 있다는 공감대를 지녔다.
WBC 대표팀이 2라운드 진출에 실패했다. 한국 대표팀 패배의 데자뷔. 팬들의 분노가 가라앉을 때까지 고개를 숙인 채 감독은 ‘내 잘못’, 선수들은 ‘할 말 없음’. 이런 반복으로는 진짜 성장이 어렵다. 우리 사회 전체가 ‘지면 죽는다’를 넘어 ‘지는 법’을 배워야 할 때다.
물론 끝까지 지지 않았다고 우기면서 경기 결과에 ‘불복’하는 것은 더 심각한 문제다.
LA |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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