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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균의 가을야구④]말하는대로(as you say)-PO3

이용균의 가을야구

by 야구멘터리 2020. 11. 13.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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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가 말하는 대로(as you say)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야구는 언제나 기대와 계획을 배반하고, 의외의 결과를 갖다 준다. 그 배반이 야구의 매력이다. 하지만 야구는 평균에 수렴하는 종목이고, 타석과 이닝이 쌓이면 가슴을 치게 했던 배반들은 원래의 예상(as you say)으로 돌아오는 일이 반복된다.

KT 이강철 감독은 팀 창단 첫 가을야구를 준비하며 KT의 장점과 약점을 분석했다. 1차전을 앞두고 황재균-강백호-로하스의 1~3번 타순을 준비하며 "두산을 상대로 한두 점 싸움보다는 빅이닝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두산은 샅바를 잡고 버티는 힘싸움에 능하다. 창단 첫가을, 경험 부족한 팀 KT 입장에서는 잔 기술보다는 큰 기술로 상대를 쓰러뜨려야 했다.

KT는 시리즈 계획대로 '빅이닝'을 만들었고, 가을야구 첫 승을 기록했다. 연합뉴스

야구는 말하는대로(as you say) 되지 않는다. 플레이오프 1, 2차전에서 KT의 공격 흐름은 뚝뚝 끊겼다. 잘 맞은 타구는 야수 정면을 향했고, 득점 기회는 번번이 홈 플레이트 앞에서 막혔다. 주자들은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못했다. 마운드 운영도 자꾸 꼬였다. 불펜 숫자는 풍부했지만, 압도적인 한 방은 없었다. 말한 대로(as you say) 1차전 8회 쿠에바스를 마운드에 올렸는데, 첫 타자 사구가 나오면서 되려 꼬였다.

12일 3차전을 앞두고 많은 변화가 있었다. 2패로 몰린 벼랑 끝, 이강철 감독은 "빠른 실패(1,2차전 패배)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생각한대로(as you say) 움직여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너무 깊이 생각하는 바람에 움직임이 늦었다는 판단이었다. 보다 많은, 잦은 작전이 예고됐다.

KT 강백호는 1,2차전에서 타율 0.125(8타수 1안타)로 부진했다. 힘차고 큰 스윙이 '헛스윙'이 되자 '너무 큰 스윙을 한다'는 주변의 우려가 나왔다. 강백호는 "정규시즌 500타석 넘게 들어간다. 이제 겨우 8타수뿐이다. 오늘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했다. 큰 스윙에 대해서도 강백호는 "타자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플레이는 홈런, 가장 좋은 팀 플레이는 안타라고 들었다"고 말했다. 자신감이 넘쳤지만 한국 사회에서 말은 족쇄가 되는 경우가 많다.

두산 선발은 라울 알칸타라였다. 리그에서 가장 빠른 공을 던진다. 강백호는 "우리 팀 타자들은 속구를 잘 친다"고 말했다.

KT 유한준은 앞선 3타석의 실패를 딛고 4번째 타석에서 적시타를 때렸다. 야구는 서둘러 평가를 끝낼 수 없는 종목이다. 연합뉴스

경기 흐름은, 가을야구가 언제나 그렇듯 말하는대로(as you say) 절대 굴러가지 않는다. 3차전 역시 기대와 계획은 배반당했다. KT 선발 쿠에바스는 우타자(OPS 0.623)에 비해 좌타자(0.761)에 약했다. 두산은 좌타자가 강한 팀이었다. 좌타자 몸 쪽에 붙이는 커터가 기막히게 통하며 두산 좌타라인을 봉쇄했다. 7회까지 내준 내야안타 2개는 모두 우타자(김재호, 박건우)로부터 나왔다. 두산 김태형 감독은 "좌타자들이 막혔다"고 말했다.

KT 역시 뜻대로(as you say) 되지 않았다. 1회 히트 앤드런이 실패했고, 5회와 7회 희생번트도 점수로 연결되지 못했다. 강백호는 "속구에 집중하겠다"고 했는데, 두산 선발 알칸타라는 2회부터 슬라이더 구사 비율을 높이며 KT 타자들의 헛스윙을 이끌어냈다.

야구는 짧게 끊었을 때 생각한대로(as you say)를 배반하기 일쑤지만, 길게 펼쳐놨을 때, 평균으로 수렴하며 말하는 대로(as you say)가 맞다는 걸 증명해 보인다. KT가 시리즈 첫 점수를 낸 것은 8회 2사 이후, 작전이 없었을 때였다. 볼넷과 안타로 만든 2사 1,2루 유한준이 알칸타라로부터 중전 적시타를 때렸다. 유한준은 "벤치에서 선수들과 ‘그래도 생각하지 말고 직구만 노리자’라고 생각한 게 좋은 결과로 나왔다”고 말했다. 배정대의 2타점짜리 행운의 안타는 앞서 잘 맞은 타구들이 아웃된 불운에 대한 보상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맞아 나간 타구는 안타 확률을 높인다. 원래 계획했던(as you say) '빅이닝'이 만들어졌다.

KT 강백호는 "최고의 팀 플레이는 안타"라는 자신의 말을 지켰다. 연합뉴스

두산 역시 뜻대로(as you say) 야구가 되지 않았다. 김태형 감독은 "야구는 역시 선발"이라고 했고, 알칸타라는 그 말을 현실로, 8회 2사까지는 만들었다. 투구수 100개가 됐을 때 결국 적시타를 내주며 무너졌다. 김 감독은 2차전 뒤 "홍건희를 쓸 수 있게 됐다"고 했지만 2차전에서 기가 막힌 투구를 보였던 홍건희는 3차전에서 제구가 흔들리며 추가점을 허용했다.

과거의 말들은 족쇄가 되기 마련이다. 말의 실패가 두려워, 말을 아끼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졌다. 뉴 제네레이션의 야구는 달라진 걸까. "이제 겨우 8타수를 했을 뿐"이라고 당당하게 말했던 강백호는 3차전에서 4타수 3안타로 펄펄 날았다. 말은 선언이 되고, 선언은 목표를 강화시킨다. 야구의 신은 말만 앞서는 것에 대한 배신을 벌로 내리는 대신 말하는 대로(as you say) 지키기 위한 노력에 보상을 상으로 준다. 야구의 매력이다.

KT의 가을야구 첫 승리 공 KT WIZ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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