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다른 단체 구기 종목 - 축구, 농구, 풋볼 - 과 달리 공의 위치가 점수로 곧장 이어지지 않는다. 골라인을 넘거나, 림을 통과하거나, 공이 터치다운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베이스를 돌아야 한다. 1루와, 2루, 3루를 거쳐, 야구 득점의 최종 목적지는 '홈(Home)'이다. 어느 팀의 주자가 홈(Home)으로 더 많이 돌아오느냐로 승부를 가린다.
5일 준플레이오프 2차전, 홈(Home)팀은 LG였다. 3전2선승제에서 첫 판을 0-4로 내줬다. 한 번 더 지면, 끝나는 벼랑 끝 승부다. 낼 수 있는 최선의 선발 카드는 팔꿈치가 아팠던 타일러 윌슨이었다. 야구는 물론 모든 스포츠에 박식한 LG팬 N씨는 "윌슨의 속구가 138km이면 고홈(Go Home)"이라고 말했다. 고홈(Go Home)은 "볼장 다 봤다. 집에나 가라"는 뜻이었다. 이날 경기 캐스터였던 KBS 이광용 아나운서에게 "윌슨 첫 포심때 콜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라고 물었다. 눈물 이모티콘과 함께 였다.
경기 전 시구자는 '뽐가너'라 불리는 에이핑크의 윤보미였다. 힘있는 속구를 뿌리는 아이돌 시구계의 국가대표급이다. 코로나19 때문에 장갑을 낀 손에서 공이 빠졌다. 시구는 홈(Home)플레이트를 통과하지 못했다. 잠실 기자실의 누군가(CBS 박세운)는 "불안하네요. 역대 이런 적이 없었는데"라고 말했다.
윌슨의 초구 투심은 141km를 기록했다. 무사 1,2루 위기에서 오재일을 병살타로 이끈 투심은 143km까지 나왔다. 류중일 감독은 "구속 보다는 제구와 볼끝으로 승부하는 투수라는 점에서 기대를 건다"고 말했다. 홈(Home)플레이트 끝을 타고 넘어야 승부가 가능하다. 1회까지는 괜찮았지만, 2회부터 읽히기 시작했다. 투심이 홈(Home)플레이트 근처에서 밀리듯 움직였다. 던지는 손 방향으로 밀리듯 움직이는 공은 좋지 않은 신호였다. 가을이면 제 집(Home)에 온 듯 펄펄 나는 두산 오재원은 140km 투심을 걷어 올려 좌중간 2루타를 때렸다. 선취점이 나왔다. LG는 2회말 무사 1,2루에서 김민성의 잘 맞은 타구가 두산 선발 알칸타라 글러브에 꽂히며 병살타가 됐다. 불운이었다.
이날의 4회초는, LG에게 악몽이었다. 두산의 1루 주자들은 2루가 제 집(Home)인 것마냥 뛰고 또 뛰었다. 윌슨의 투심은 137km까지 떨어졌지만 LG 벤치는 움직이지 못했다. 윌슨은 SK 박종훈(44개), 한화 김민우(26개)에 이어 리그에서 3번째로 도루 허용이 많은 투수(20개)다. 뚝 떨어진 투심의 구속과 도루 허용이 만나 '퍼펙트 스톰'이 벌어졌다. 단기전에 능한 두산 타자들이 모든 공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2-0에서 LG 벤치는 진해수를 투입했다. 류중일 감독은 "두산전에 아주 좋은 진해수를 투입해 최소 실점으로 막으려했다"고 설명했다. 숫자는 다르다. 진해수의 올시즌 두산전 평균자책은 4.66, WHIP는 1.66이다. 구원투수의 피출루율 0.395는 '좋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진해수는 안타, 안타, 뜬공, 안타, 홈런을 맞았다. 4-0에서 정수빈의 중견수 뜬공 때 LG 중견수 홍창기의 송구는 홈(Home)에서 승부를 벌일 만 했다. 공이 너무 멀리 날아왔고, 바운드가 늦었다. 태그 위치를 미리 잡던 유강남이 대처하기 까다로웠고, 유강남은 공을 잡은 뒤 홈(Home) 플레이트 위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내 차례에 나올게 뻔한 투수를 이틀 연속 만나는 건, 가을에 익숙한 두산 타자들에게 유리한 조건이었다. 점수가 8-0이 됐을 때, 두산의 승리확률은 97.4%로 높아졌다.
모두가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두산이 발로 점수를 냈다면, LG는 야구에서 점수를 내는 지름길, 홈(Home)런으로 따라붙었다. 리그 홈런 2위 로베르토 라모스가 시동을 걸었고, 채은성이 연속타자 홈런을 때렸다. 5회에는 시리즈 내내 침묵하던 김현수가 투런 홈런을 때렸다. 잠실구장 3루 라커를 홈(Home)으로 쓰고 난 뒤 가을에 때린 첫 홈런이었다. 알칸타라가 교체됐다. 알칸타라는 지난달 30일 히어로즈 전의 압도적인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김태형 감독은 경기 뒤 "알칸타라의 목에 담이 든 상태였다"고 밝혔다. 1루쪽 홈(Home)팬들을 들뜨게 한 라모스는 이현승을 상대로 연타석 홈런을 넘겼다. 6회말, 오지환의 2타점 적시타가 나왔을 때 점수는 8-7이 돼 있었다. 잠실구장이 타올랐다. 두산이 7회초 1사 1,2루 기회를 놓쳤을 때 승리 확률은 64.3%로 줄어들었다.
이후 홈(Home)을 향한 싸움이 계속됐다. 한 점 차 였지만 한 점을 더 내는 팀이 이기는 흐름이었다. 어떻게든 홈(Home) 가까이 한 베이스 씩을 더 가야 한다. LG는 7회말 무사 1루, 채은성이 2-0 유리한 카운트에서 승부를 걸었다가 5-4-3 병살타로 물러났다. 8회말 무사 1루, 대타 박용택의 타구는 3루 더그아웃 바로 앞에서 잡혔다. 1루주자 이천웅이 2루로 뛰었고, 2루수 오재원과 충돌하는 사이 공이 뒤로 빠졌다. 이때 홈(Home)에 더 가까운 3루로 가지 못한 것은 결정적 승부처 중 하나였다. 그라운드 내 콜 플레이가 잘 이뤄지지 않았고 이천웅은 공이 빠진 사실을 늦게 알았다. 정규시즌 때는 없었던 1만 관중의 함성 때문이었을까.
이는 LG에게 9회초 또 한 번의 악몽으로 이어졌다. 두산 김재환이 볼넷을 골랐고, 대주자 이유찬으로 바뀌었다. 허경민의 희생번트 때 고우석의 1루 송구가 오른쪽으로 휘었다. 2루수 구본혁의 대처가 미흡했고, 공이 뒤로 빠졌다. 2루에서 공이 빠진 걸 확인한 이유찬이 냅다 뛰기 시작했다. 구본혁이 서둘러 따라가 던진 홈 송구도 약했다. 무엇보다 고우석-이성우 배터리가 이유찬의 홈(Home) 대시를 알지 못했다. 이천웅은 공이 빠진 걸 몰랐고, 이성우는 홈(Home)으로 뛰어들어오는 주자를 알지 못했다. 3루 코치의 지시도 무시하고 폭주한 이유찬의 닥치고 고홈(Go Home) 대시는 두산에게 최고의 결과를 안겼다. 이 날 경기를 내줬다면 3차전 홈(Home) 경기의 승패는 자신할 수 없었다.
야구는 홈(Home)을 향하고, 홈(Home)을 지키고 막는 사이의 승부다. LG 포수가 홈(Home)에서 주자를 막아 낼 2번의 기회를 살렸다면 승부는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집은 따뜻한 곳이지만, 야구의 홈(Home)은 전쟁터다.
LG의 가을야구와 함께 박용택의 19년간 이어 온 야구도 끝났다. 경기 전 "3차전이 마지막 잠실 경기이기 때문에 가족들은 토요일(7일)에 온다"고 말했지만, 바람대로 되지 않았다. 밤 11시가 넘은 시각, 박용택은 베이지색 코트를 입고 잠실구장을 나섰다. 마지막 퇴근이었다. 이제 박용택은 집으로 간다.(Go 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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