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균기자
불이 꺼졌다. 지난 25일 LG는 한화에 3-0으로 이겼다. 경기가 끝난 뒤 약 30분이 지났다. 유니폼을 벗고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었다. 불 꺼진 잠실구장에 그가 나타났다. 어둑어둑한 일요일 밤의 그라운드를 천천히, 그리고 묵묵히 뛰었다. 그의 러닝은 훈련이라기보다는, 참선에 가까웠다. 상의 지퍼를 목 끝까지 올린 채 수도승처럼 박박 깎은 머리만 내놓고 천천히 그라운드를 돌았다.
아주 가끔 고개를 숙였다.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내딛는 발걸음 하나하나마다 가슴속에 뭔가를 새겨놓고 있는 듯했다. 멀리서 보기에도 가끔은 한숨이 섞였다. 어쩌면 앞선 타석을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0-0으로 맞선 7회말 무사 2·3루. 그는 대기 타석에서 열심히 방망이를 휘둘렀다. 감독으로부터 “부담 갖지 말라”는 얘기를 들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그의 타석에서 ‘부담’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았다. 타격왕에 오른 그의 지난 시즌 타율은 무려 3할7푼2리였다. 역대로 그보다 더 높은 타율을 기록했던 선수는 5명밖에 없었다.
건너편 더그아웃이 바빠졌다. 투수코치가 마운드로 향했다. 불안했다. 그는 자신의 더그아웃을 쳐다보지 않았다. 애써 외면했다. 눈을 마주칠 자신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방망이 끝만 쳐다보며 스윙에 더욱 힘을 줬다. 왼손 투수로 교체됐다. 서용빈 타격코치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숙였다. 더그아웃으로 돌아왔다. 방망이를 가방에 넣었다. 이제 오늘은 더 이상 타석에 들어설 수가 없었다. 점퍼를 걸쳤다. 대타 최동수에게 상대는 고의 4구를 지시했다. 팀 타선이 터졌다. 단숨에 3점을 뽑았다. 그는 열심히 박수를 쳤다. 비록 대타로 교체됐지만 그는 주장이었다. 점수를 내고 돌아오는 선수들을 환하게 맞으며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그런데 그 웃는 입꼬리에 어쩔 수 없는 답답함이 묻어났다.
팀이 3위에 올랐다. 주장이었으므로 맨 앞에 서서 선수들을 맞았다. 이겼지만 가슴은 답답했다. 조용히 짐을 싸고 있을 때 뒤를 지나가던 봉중근이 말없이 그의 엉덩이를 토닥였다.
현재 그의 타율은 1할6푼7리. 규정타석을 채운 타자 중 꼴찌다. 매일 아침 누구보다 일찍 나와 방망이를 휘두르지만 아직 뾰족한 수를 찾지 못했다. LG 박종훈 감독은 “전날도 경기가 끝난 뒤 얘기를 좀 나누려고 찾았더니 운동장을 돌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래, 그럼 됐다. 내가 해줄 얘기보다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박용택은 능력 있는 선수다”라고 말했다.
일본 요미우리 2군 구장인 가와사키 구장에는 ‘구와타 로드’가 있다. 구와타가 팔꿈치 수술 뒤 매일 러닝을 하는 바람에 잔디가 다 말라 길이 됐다. ‘쿨가이’ 박용택은 매일 밤 잠실구장을 달린다. ‘쿨가이 로드’라 부를 수 있을까. 달리는 길 속에서 타격의 길을 찾는 중이다. 길은 길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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