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150km로 던지든 살살 던져 잡든 아웃 시키는 건 같아”
ㆍ“공 한개가 경기 살릴 수도 망칠 수도 있어”
이용균 기자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 강속구 투수였던 삼성 배영수는 팔꿈치가 한 번 완전히 고장난 뒤에야 야구를 깨달았다.
그에 비해 SK 김광현(22)은 운이 좋았다. 손등 부상에 이은 팔꿈치 통증. “아파 보니까 공 1개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선발 투수가 한 경기에 던지는 공은 100개 내외. 가끔은 실투도, 가끔은 버리는 공도 있지만 그 공 1개가 경기를 살릴 수도 망칠 수도 있다.
지난해 8월, 두산 김현수의 타구에 왼손등을 맞았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진단 결과 골절. 김광현은 “한 달 동안 깁스를 했는데, 그땐 오히려 괜찮았다. 애써 그냥 쉬는 거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깁스를 풀고 캐치볼 할 때 갑작스레 팔꿈치에 통증이 느껴졌다. 투수들의 직업병인 인대 고장. 김광현은 “솔직히 무서웠다”고 털어놓았다.
안산공고 시절 김광현은 ‘야구영재’였다. 팀 마운드를 혼자 다 책임졌다. 고3이던 2006년, 4개 대회 출전 방어율이 0.66이었다. 유일한 홈런 1개는 장충고 황인권(현 건국대 4)에게 맞았다. 그해 가을 쿠바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까지 맛봤다. 김광현은 “그때도 안 아팠던 팔꿈치였다”고 했다.
수술 대신 재활을 택했지만 공을 던지지 못하는 투수에게 남는 것은 짜증과 스트레스였다. 팀이 한국시리즈에서 KIA에 패하는 것을 지켜보기만 해야 했다. 김광현은 “KIA는 자신있었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김광현은 지난 2년간 KIA를 상대로 7승무패, 방어율 1.25를 기록 중이었다. 올 시즌에도 KIA전 2번 등판에서 무자책점으로 2승을 거뒀다.
“솔직히 마운드에 돌아오면 속 시원하게 공을 던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생각만큼 시원하지 않더라”고 말했다. 의외였다. “그냥 지난 시즌과 똑같은 기분이다. 지난해 다칠 때도 잘되고 있었다. 계속해서 그게 이어지는 기분”이란다. 그렇게 편한 기분으로 던져 거둔 시즌 초반 성적이 4승 무패에 방어율이 0.29다. 겨우 자책점 1개만 내줬다.
“그 1점으로부터 또 많이 배웠다”고 했다. 지난달 24일 롯데 조정훈과의 빛나는 투수전이었다. 2-0으로 앞선 9회초, 선두타자 김주찬에게 2루타를 맞은 게 화근이 됐다.
김광현은 “이전 3타석에서 모두 체인지업을 던져 땅볼을 유도했다. 그런데 (박)경완 선배가 또 초구에 체인지업 사인을 내더라. 속으로 ‘설마 3번 당했는데, 또 당할까’ 싶었다. 체인지업을 던지면 맞을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 의심을 품었다. 그렇게 던진 체인지업은 결국 볼이 됐다. 다음 2구째 바깥쪽 직구가 가운데로 몰렸고, 2루타를 맞았다. 주찬형은 끝까지 직구를 노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체인지업을 의심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그 공이 스트라이크가 됐다면 2루타는 없었고, 생애 2번째 완봉승을 거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시 공 1개다. 김광현은 “그 공 1개를 잘 던졌다면, 지금 방어율이 0.29가 아니라 0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공 1개는 다르면서도 같다. 투수가 공을 던지는 목적은 150㎞ 구속이 아니라 스트라이크 또는 아웃카운트를 위해서다. 김광현은 “굳이 있는 힘껏 150㎞를 던지지 않는다”고 했다. 아픔으로부터 배웠다. 공 1개는 단지 1점에 그치지 않는다. “공 1개를 잘못 던지면, 그래서 다치면 훨씬 더 많은, 수백개의 공을 못 던지게 된다”고 했다. 김광현의 올 시즌 평균구속은 140㎞ 초반이다. 김광현은 “140㎞를 던지나 150㎞를 던지나 스트라이크는 같다. 한가운데 헛스윙이 되건, 파울이 되건, 어차피 또 같은 스트라이크다”라고 했다. SK 김정준 전력분석 코치는 “올 시즌 140㎞로도 타자와 싸울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는 게 김광현의 가장 큰 성장”이라고 평가했다.
그래서 구종이 늘었다. 맞히는 능력이 뛰어난 타자에게는 150㎞ 직구를 던져 힘으로 승부한다. 제구가 쉬운 140㎞ 직구는 힘있는 타자의 약점을 파고든다. 김광현의 주무기 슬라이더는 빠른 것, 느린 것, 바깥쪽으로 많이 휘는 것, 아래로 많이 떨어지는 것 4가지로 세분됐다. 이 4가지로 스트라이크존을 4등분하면 16가지 구종이 된다. 체인지업은 좋아졌고, 커브도 던질 수 있는 수준이다. 새로 깨달은 공 1개의 중요성은 경기를 치르며 다양한 레퍼토리로 변주돼 타자들을 꼼짝 못하게 만든다. 김광현이 마운드에서 펼치는 즉흥곡은 마치 뱃사람의 정신을 빼놓는 로렐라이 언덕의 노래와도 같다.
많은 팬들이 한화 류현진과의 왼손 에이스 맞대결을 기다리고 있다. 김광현은 “감독님들이 만들어 주시면 여느 때처럼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승부는? “확실한 건 하나다. 현진형이랑 대결하면, 경기는 빨리 끝날 것”이라며 웃었다. 에이스의 최고 무기는 자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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