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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에 보내다

  • 박태환 외국코치 만나 ‘재기 물살’

    2010.01.26 by 야구멘터리

  • 김태균의 ‘자신감’ 기선 제압 성공

    2010.01.19 by 야구멘터리

  • 박찬호의 변신 ‘이츠 오케이’

    2009.11.24 by 야구멘터리

  • 김상현, MVP 비결은 ‘약점의 승리’

    2009.11.10 by 야구멘터리

박태환 외국코치 만나 ‘재기 물살’

ㆍ개인 전담 세계적 지도자 영입… 체계적 훈련 프로그램 기대 국제수영연맹 홈페이지에 따르면 박태환(21·단국대)의 남자 자유형 400m 세계랭킹은 14위에 머물러 있다. 1위는 독일의 파울 비더만(3분40초07). 한때 한 수 아래의 라이벌이던 중국의 장린은 3위(3분41초11)에 자리잡았다. 심지어 일본의 마쓰다 다케시(3분44초99)도 7위로 박태환의 앞에 서 있다. 중국의 쑨양(3분45초39)도 9위다. 박태환은 지난해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출전 3개 종목 모두 결선에 오르지 못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실력은 더이상 박태환의 것이 아니었다. 금메달을 땄던 400m에서는 3분46초04에 머물렀다. 베이징에서 기록했던 3분41초86에 한참 모자랐..

잡지에 보내다 2010. 1. 26. 14:46

김태균의 ‘자신감’ 기선 제압 성공

ㆍ일본 도착 언론 집중관심 받아… 타격기술 강점 지녀 쉽게 무너지지 않을 듯 두산 김동주(34)는 일본 진출을 두 차례나 노렸지만 모두 실패했다. 지바 롯데의 감독이던 바비 발렌타인 감독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소문이 흘러나왔지만 결국 김동주를 받아들인 일본 구단은 없었다. 2년 연속 실패였다. 김동주는 꾸준한 타격에 인정받을 수 있을 만큼의 장타력을 지녔다. 무엇보다 김동주는 3루수였다. 1루수나 외야수, 지명타자가 아니라 리그 최상급의 3루 수비 능력을 갖췄다. 김태균(28)은 일본보다 국내 잔류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다. 실제로 한화를 제외한 구단 가운데 한 곳은 김태균에게 깊은 관심을 드러냈다. 역대 최다 금액의 자유계약선수(FA)였던 심정수(4년 간 60억원·전 삼성)보다 더 많은 금액을 제시했..

잡지에 보내다 2010. 1. 19. 14:48

박찬호의 변신 ‘이츠 오케이’

ㆍ중간계투로 만점 활약… 월드시리즈도 4경기 등판 양키스타디움은 가득 차 있었다. 5만181명이 지르는 응원소리가 경기장을 온통 메웠다. 지난 10월31일 2009 월드시리즈 2차전. 양키스타디움의 원정팀 불펜에는 박찬호(36·필라델피아 필리스)가 몸을 풀고 있었다. 7회말. 점수는 1-2. 선발 투수 페드로 마르티네스가 제리 헤어스턴 주니어와 멜키 카브레라에게 연속 안타를 맞아 무사 1·3루 위기를 맞았다. 투수 코치가 마운드를 향했다. 불펜의 문이 열리고 박찬호가 마운드를 향해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1994년 4월8일 메이저리그 첫 데뷔 이후 16시즌을 기다려 온 순간이었다. 박찬호의 월드시리즈 첫 등판이다. 박찬호는 11월10일 서울 강남의 자신이 운영하는 피트니스 클럽에서 귀국기자회견을 열었다...

잡지에 보내다 2009. 11. 24. 14:49

김상현, MVP 비결은 ‘약점의 승리’

ㆍ자신 없던 변화구에 대한 적응력 키워 9년 만에 최고에 등극 김상현(29·KIA)을 처음 만난 것은 온 나라가 월드컵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떠 있던 2002년 5월이었다. 그해는 봄부터 날씨가 무척 무더웠다. 광주구장에 내리 쬐던 햇빛도 벌써 뜨거웠다. 김상현은 프로 3년째였지만 가뜩이나 까만 얼굴로 아직 신인티도 벗지 못한 스윙을 하고 있었다. 2000년 해태 신인 6차지명. 경영난으로 문을 닫기 직전의 해태 타이거즈가 거의 마지막 순위에서 뽑은 선수였다. 김상현은 KIA로 바뀌기 직전에 해태의 마지막 흔적을 자신의 드래프트 순위에 남겼다. 김상현의 야구 인생은 한국시리즈를 아홉 차례 우승하고도 결국 몰락한 해태를 닮아가는 듯했다. 파워만 놓고 보면 늘 ‘유망주’ 프로야구 2군 선수의 삶은 시인 기형도..

잡지에 보내다 2009. 11. 10.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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