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이닝 마무리 투수가 탄생한 것은 80년대 후반이다. 메이저리그 오클랜드의 토니 라루사 감독은 1988년 데니스 에커슬리를 ‘이기고 있는 경기, 마지막 이닝에만 등판 하는 투수’로 규정했다. 이른바 ‘라루사이즘’. 에커슬리는 45세이브, 팀은 104승을 거뒀다. 에커슬리는 92년 51세이브를 기록하며 사이영상과 MVP를 함께 거머쥐었다. 메이저리그에서 구원투수의 MVP는 이후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다.
LG 레다메스 리즈는 4월13일 5-5 동점이던 연장 11회초 마운드에 올랐다. 첫 타자 차일목은 2루 땅볼로 잡아냈다. 그러나 이후 ‘4·13사태’가 벌어졌다. 리즈는 ‘볼’ 16개를 연속으로 던졌다. 26일 잠실 넥센전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됐다. 7-5로 앞선 9회초 마운드에 올랐지만 또다시 볼넷 3개를 연속해서 내주며 무너졌다. 최고구속 162㎞ 강속구도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하지 못하면 별무소용이다.
심지어 최고의 마무리 투수였던 오승환도 무너졌다. 오승환은 24일 대구 롯데전에서 2-0으로 앞선 9회 마운드에 올랐다가 6점을 내주고 패전 투수가 됐다. 오승환의 패전은 1013일만의 일이었다.
마무리 투수의 조건은 여러가지가 있다. 빠른 공과 삼진 능력이 일반적인 마무리 투수의 조건. 레이 밀러 전 오클랜드 감독은 “통산 40~50세이브를 기록하기 전에는 ‘마무리’라 부를 수 없다”고 했다. 경험많은 베테랑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지의 마이클 뱀버거는 “압도적인 덩치와 그에 걸맞는 성격, 그리고 사악한 얼굴이 필수”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고양 원더스 김성근 감독은 마무리 투수의 유일한 조건으로 ‘제구력’을 꼽았다. 김 감독은 “점수를 주지 말아야 하는 상황, 리드를 지켜야 하는 상황에서 제1조건은 ‘볼넷’을 주면 절대 안된다”고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야구는 투수 놀음이지만, 야구는 투수 혼자 하는 경기가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볼넷은 투수 뒤를 지키는 7명의 야수를 허수아비로 만든다. 투수는 타자와 싸우며 공을 던지지만 투수 뒤에는 투수를 돕는 7명의 야수가 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결승전에서 정대현은 ‘빠르지 않은 공’으로 내야 땅볼을 유도했고, 병살타는 금메달을 확정짓는 플레이였다.
리즈에게 부족했던 것은 구속도, 삼진을 잡는 능력도,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 있는 배짱도 아니었다. 리즈에게 부족했던 것은 수비수 7명을 믿고 던지는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두산 마무리 프록터는 29일 잠실 KIA전에서 6세이브째를 따내며 구원 1위에 올랐다. 삼진은 없었고, 안타를 맞았지만 우익수 정수빈의 무시무시한 3루 송구가 실점을 막았다. 프록터는 정수빈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9회는 마무리 투수 혼자 짊어지는 짐이 아니다. 야구는 원래부터 9명이 함께 하는 경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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